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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Feb 05. 2024

런던살이 시작

생애 첫 외국살이 도전!


어릴 때부터 나는 외국에 참 관심이 많았다. 이따금씩 TV를 돌리다 나오는 CNN 채널을 틀어놓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말을 따라해 보기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배운 알파벳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한동안 놀이처럼 빠져들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팝송에 눈을 뜨면서 영미권 문화, 특히나 엔터테인먼트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대학교 때 교환학생,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집 형편으로는 꿈도 꿀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늘,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켠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런던에 있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생활하게될 예정이다. 서울의 삶이나 이곳의 삶이나 본질은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내게 주어진 작은 방 안에서 나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내게 주어진 이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다.


조금 전 필요한 물건이 있다는 것이 떠올라 부랴부랴 집 앞 마트에 갔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이미 영업이 종료되었다며 종업원이 내 앞을 막는다. 시계를 보니 5시다. 그렇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 영국이다. 한국이었다면밤 10시에 나왔어도 내가 필요한 물건을 얼마든지 사고도 남았을텐데... 벌써 해도 거의 다 졌다. 주변에 다른 마트를 뒤늦게 찾아보려 하는데 이미 날이 깜깜해지고 있어서 그냥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마트 앞이 무척 소란스럽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큰 소리를 치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온 여자아이가 잔뜩 겁을 먹었는지 큰 소리로 울고 있다. 순간 나는 내가 도대체 왜 이 시간에 밖에 나왔을까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부터 생존에 특화된(?) 나의 뇌는 빠르게 가드를 올리고 비상모드를 발동한다. 어떻게 이 남자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동선을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를 건드리면 큰 소리로 반항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재빨리 사람들 속을 헤쳐 집으로 왔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파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내가 영국에 온 이래로 영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충고가 "1. 밤에는 절대 돌아다니지 말것, 2. 혹시 밤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면 우버를 이용할 것, 3. 낮에도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자각할 것" 이었다. 코로나 이후 런던의 물가와 렌트비가 오르고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누군가에게 분노를 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나 나 같은 아시아 여자들은 해를 가해도 좀처럼 반항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쉽게 그 화풀이 대상이 된다고 한다. 


밤에 다녀도 안전하다고 하는 한국에서도 나는 해가 진 후에 혼자 잘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편의점에 가거나, 운동을 가거나 하는 등 필요한 일들을 해야할 땐 크게 개의치 않고 저녁이나 밤에도 돌아다녔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말로, 해진 후에는 나의 안전을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처음 런던에 와서 며칠 동안 집을 구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밤에 돌아다녀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위험하니까 절대 가지 말라고 한 지역들도 돌아다녀 보았지만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었다(물론 뭔가 쎄한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지기는 했었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데고 그냥 한국처럼 다니면 되는구나, 괜히 외국이라고 긴장했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제발 조심하라고 얘기를 하니, 뒤늦게서야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마구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전에 좀 더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든, 체구가 작은 여자가 혼자 살아가려면 좀 더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럴 줄 줄알았으면 어릴 때 열심히 먹고 우유도 많이 마셔서 5cm라도 더 키를 키울걸... 아니면 한국에서 복싱을 좀 더 배워올걸... 이런 오만가지 엉뚱한 생각들이 들지만, 밤에 안나가고 평소에 안경을 쓰고 다니면서 주변을 잘 살피면 안전하게 런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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