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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Feb 11. 2024

런던에서 맞는 설날

아직은 적응중인 런던의 세번째 주말


올해 설날은 런던에서 지내게 되었다. 런던에선 설날의 흔적을 전혀 찾을수 없을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며칠전부터 내가 자주 가는 마트 한켠에 "Lunar New Year" 칸이 따로 마련된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여기에도 음력 설을 따로 쇠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지난 한주는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몸살이 났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보겠다고 무거운 책들과 노트북까지 넣어서 왔다갔다 하다보니 더 기운을 뺀것 같다. 게다가 음식 탓도 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때 들어오다보니 두어번의 아침을 빼고는 거의 집에서 밥을 제대로 해먹지 못했다.


수요일쯤부터는 아침도 아예 회사에서 해결했는데, 그러다보니 몸에 잘 맞지 않는 음식들의 향연으로 내 뱃속이 그리 편치 못했던것 같다. 나중엔 생강이 들어갔다는 스프도 시도해보았는데, 맛은 있었지만 여전히 얼큰한 국물이 그리운 식사였다. 아무래도 나는 외국 식생활에 적응하기에는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았나보다.


사실 처음엔 모든게 다 맛있었다. 영국 음식 맛없다더니, 생각보다 괜찮잖아? 하면서 뭐든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계속 뭔가 뒷맛이 씁쓸하고 개운하지 않은 것이, 여기에선 잘 찾기 힘든 얼큰하고 매운 국물이 당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먹었던 점심메뉴들


일주일간 지켜보니, 런던의 직장인들은 식사 시간을 따로 두고 챙기지 않는 것 같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간단한 샌드위치, 크로아상, 스프 등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더라도 사무실에 가져와서 먹으면서 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선 늘 "점심에 뭘 먹어야 나의 위장이 흡족해질까?"하고 고민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큰 즐거움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음식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내가 차린 아침식사들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는 것 외에 또 한가지 정말 인상깊었던 점은, 이 사람들이 좀처럼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런던에 온 이후로 비가 오지 않은 날이 거의 손에 꼽힐 정도였는데, 런던 사람들은 웬만한 비는 우산을 쓰지 않고 후드를 뒤집어 쓰거나 아니면 그냥 비를 맞으며 가는게 보통이었다.


이 사람들, 대머리 되는게 무섭지 않은건가 처음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고작 3주 사이 나도 이젠 비가 오면 옷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쓰거나, 비를 좀 맞더라도 그게 대수롭지 않아졌다. 워낙 비가 오다가 말다가 오락가락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적응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나이 먹어서 머리카락이 얇아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괜히 어설프게 런던 사람들 흉내낸다고 내 머리숱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들지 말고 우산을 사수해야지.



일주일 내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또 저녁 약속에 갔다가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경험들을 하면서 런던 시내를 혼자, 게다가 늦은 저녁 시간에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 복잡한 Tube의 체계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되었다. 물론, 목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District Line을 잘못 타서 엉뚱한 곳으로 잠깐 가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결국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남들은 이십대 초반쯤 어학연수나 유럽여행 하면서 하는 경험들을 나는 그 두배의 나이가 되어서야 허둥거리며 하고 있는 느낌도 든다. 내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그것도 낯선 외국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와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경험을 하고 있기에, 모든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런던의 내 방에 자리하게 된 쿠쿠


그리고 세번주말이다. 밥이 너무 그립다. 나의 위장이 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영국에 올 때, 나는 작은 캐리어 2개, 큰 캐리어 3개, 이민가방 1개를 들고 왔다. 내가 이렇게 가방을 많이 가져왔다고 하니, 한 미국인 친구가 내게 "네가 무슨 패리스힐튼이야?"라고 물어봤다.


사실 막상 가방을 열고 보니 그렇게 많이 가져온 것도 아닌것 같은데... 나는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사물함에 절대 책을 넣지 않고 꼭 가방에 모든 책을 다 담아가지고 다니는 이상한 아이였다. 가방 안에 모든 잡동사니를 넣어다녀야 안심이 되어서 학교 다닐때나,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이나, 또 어디를 가나 늘 온갖 물건을 다 채워다닌다. 그래서 작은 가방보다는 큰 보부상 가방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번에 영국에 올 때도 워낙 많은 물건을 넣고 오다보니, 중간에 화장품과 김치를 공항에 버리고 와야했던 쓰라린 사건도 있었고, 집에서 공항으로, 공항에서 다시 숙소로 왔다갔다 하면서 짐 때문에 꽤 많이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와중에 쿠쿠를 가져온것 만큼은 그 중에서도 정말 잘한 일이다 싶다.


이번 주말엔 맛있는 쌀밥을 먹으며 런던에서의 설날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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