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만 보고 더는 안 본 사람 찾습니다.
중년의 무한도전(이제는 무한도전도 폐지가 된 지 한참이라 이런 형용이 적절하진 않다), 아재 시청률 1위에 빛나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자연인),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의 프로그램. 나는 요즘 자기 전 '나는 자연인이다'의 옛 에피소드를 1편씩 보고 잔다. 무슨 자장가도 아니고. 역시 늦바람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사실 자연인은 매섭게 추운 한겨울, 어느 작고 허름한 건물 화장실의 찬물 같은 프로그램이다. 틀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주의를 가지고 채널이 돌아가는 일에 집중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자연인 에피소드를 놓쳐온 셈인가. 무심코 TV를 틀면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자연인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시청 못했다는 것은 마치 크리스마스 무렵 TV를 통해 영화 <나 홀로 집에>를 직접 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람의 무감각과 닮아 있다. 나는 정말 무감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늦바람으로 나의 밤잠 설치게 하는 프로그램 자연인의 매력은 뭘까. 한 번만 보고 에라이! 관둘 수 없는 프로그램의 고유 매력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오늘은 그것에 관한 내 생각을 짧게 던져 보려고 한다.
자연인의 컨셉은 간단하다. 개그맨 윤택과 이승윤이 홀로 사는 자연인을 만나 이틀 동안 함께 자연을 체험하는 것이다. 맞다. 그래, 그렇다, 우리가 늘 투덜대듯 인기 프로그램은 늘 별 볼 일 없고 별 거 없다. 그런데 그게 정말 힘든 건가보다. PD는 프로그램 하나 대박 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고, 우리는 볼 거 하나 없다고 툴툴대는 것이다('대박'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삐딱한 자세로 '별 거 없네'라며 한 줄로 까내릴 힘이 시청자에겐 있으니까). 그럼에도 자연인은 대박이 났고 무탈하게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
음, 자연인의 성공 비결을 나는 다섯 가지 정도로 가볍게 추리고 싶다.
첫째, 사연이다.
자연인은 사연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헤밍웨이가 언젠가 일렀듯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의 소설 작품과 같다. 즉, 사연 많다는 말이다. 우리는 사연이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끌린다. 저 속을 들여다보면, 저 안을 파헤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으니까 그렇다. 대개 질병,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한 우환 또는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 등이 자연으로 몸과 마음을 맡긴 이유의 주를 이루는데,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삶이란 것은 참 극적인 면이 많구나, 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둘째, 자연이다.
우리는 자연이 그리운 인간이다. 인간의 피에는 분명 자연이 거칠게 흐른다. 자연과 벗하며 따고, 캐고, 잡고, 태우고, 심고, 자고 또 노니는 자연인의 삶에 우리는 강하게 감정 이입하는 것이다. 개그맨 이승윤과 윤택은 늘 묻는다.
"아버님, 이건 뭐예요?"
"형님, 이건 뭐죠?"
우리는 자연에서 왔지만, 자연을 제일 모른다. 그렇기에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것이 또 자연이다. 나도 프로그램을 보며 산에서 나는 다종 다양한 식물에 놀라곤 한다. 자연은 정말 신비로운 것이다.
셋째, 식사다.
버섯과 채소가 주를 이루는 단출한 식단이지만, 각자만의 요리 노하우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무척 재미있다. 발효액, 꿀, 들기름 따위는 자연인의 식단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보통의 경우, 자연인은 이틀째 저녁에 윤택과 이승윤을 위해 나름의 만찬을 준비하는데, 그것은 보통 갓 잡은 닭과 민물고기 요리다. 고기가 등장하고 확 바뀌는 윤택과 이승윤의 표정은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겠다.
넷째, 교감이다.
자연인의 진행자는 둘이다. 개그맨 윤택과 이승윤. 이 둘은 사람을 대하는 일을 잘한다. 그것도 아주 잘한다. 자연 속에서의 오랜 생활로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고 어색한 자연인과 어제 만난 동생처럼 또 아들처럼 잘 섞인다. 멋쩍게 웃고 실실 대다가 또 진지하게 끄덕이고 함께 눈물 흘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PD의 캐스팅이 아주 유효했던 것이다.
다섯째, 예측 가능성이다.
자연인 에피소드의 흐름은 대개 비슷하다. 어색한 만남, 집 구경, 일, 점식식사, 산 타기, 저녁식사 그리고 중간중간 사연 접수까지. 이러한 예측 가능성은 시청자를 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예측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지겹다'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매력이다. 다양한 사연으로 무장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자연인의 끝 모를 매력이 프로그램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힘이다.
자연인을 보고 있으면 나도 자연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어 진다. 도시 생활도 물론 훌륭하지만, 한 번쯤은 자연에 흠뻑 취해보고 싶은 것이다. 프로그램 속 많은 자연인들이 몸소 보여주지 않는가. 불치병을 낫게 하고, 암을 치료하고, 마음의 병을 가라앉히고, 인생을 멋지게 재정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나도 자연이 궁금하다.
쓸데없는 말_1
내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맨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은 막을 내린 무한도전의 에피소드 <우린 자연인이다> 덕분이었다. 하와수 콤비(정준하와 박명수)가 어느 산골에서 '무밥'을 만들어 먹으며 티격태격할 때 나는 아주 미친 듯이 웃어버렸고, 그때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혹시 무한도전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다시 보고 싶다면 <우린 자연인이다>를 추천한다. 특히 무밥 씬은 정말 최고다.
쓸데없는 말_2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이 과거 화려하고 성공적이었던 도시 생활을 회상하며 단골 멘트로 던지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었는지에 대한 것인데, 다들 감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실제로 정말 그랬던 건지 알 길이 없지만, '억'소리가 너무 자주 난다. 뭐, 사실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