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18)
이별은 하나의 상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을 새로운 만남을 위한 또 다른 시작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옳은 것이지만, 이별의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인천 신세계 백화점에 놀이기구와 오락실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인천 신세계 백화점에는 무려 바이킹과 DDR이 있었다. 구월동의 한복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그 짜릿했던 감각을 여기에서 글로 소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나의 오랜 친구 중 하나는 신세계 백화점 인천점의 바이킹을 타다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쌍수를 들고 엉엉 울며 바이킹 작동을 멈춰달라며 소리를 질렀는데, 그 사건은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곤 한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숱한 인천 사람들(Incheoners)에게 익숙한 약속 장소 중 하나는 ‘신세계(백화점) 앞’이었다. 그러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몇 번 출구 앞에서 볼 거냐며 구체적으로 물어오는 친구가 또 우리에겐 하나씩 있었고, 그러면 또 늘상 방문하면서도 출구 번호 하나 못 외우는 나의 멍청함과 마주할 수도 있었다.
인천 사람이라면 신세계 백화점 인천점과 얽힌 추억 하나 없을 리 만무하다. 엄마와 아빠한테 옷을 사달라며 울고 불고 악도 썼을 것이고,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울고 웃고 뛰어다니며 지랄 발광을 떨었을 수도 있겠으며, 소중히 아끼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사며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인생의 한 챕터가 이렇게 싹둑 잘려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설명할 길 없는 아주 묘한 기분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그건 아마 군에서 제대하던 날이었다. 집으로 가는 인천행 지하철을 기다리며 차가운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내게 비추던 9월 말의 그 따스한 햇살 그리고 '싹둑'. 그렇게 나의 2년은 무심히 잘려나갔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문을 닫고 롯데백화점 인천점이 들어섰다. 뭐 이 사건을 통해 내 삶이 솔직히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다시 한번 이렇게 싹둑 잘려나가는 것만 같은 이 이상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건 내 기분 탓일까, 내 오버 리액션 탓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영향력이라는 것은 다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절대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 그 고집스럽고 생명력으로 가득한 자기 존재감과 같다고.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 인천 사람들에게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미친 영향력이란 도대체가 얼마만큼인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구월동 한복판에 신세계 대신 롯데가 왔지만 인천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 더욱이 그 기억과 추억 속엔 우리들의 소중한 관계가 잔뜩 얽혀 있을 테니까.
모든 Incheoner들의 기억과 추억에 부디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