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노래냐?"
Gunna의 노래 'Speed it up' 그리고 힙합의 현재
지금 생각해봐도 참 신기한 일이다. 방에서 나 홀로 미국 힙합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즐기던 중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불쑥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방을 스윽 둘러보시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파이오니아 복합 플레이어 스피커에서는 어쩌자고 기다렸다는 듯 SEX라든지 F*CK이라든지 하는 선정적인 단어들만이 흘러나왔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자는 척을 하거나 뭔가에 몰두해있는 척을 하며 민망한 상황을 외면해보려 대단히 애를 썼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겠다 싶을 때는 부모님께 공연히 말을 걸고는 했다.
침대에 발라당 누워 SEX, F*CK, SH*IT 따위로 점철된 음악을 들으며 실실 대는 사춘기 아들을 내려다보던 부모님의 그 따뜻한 시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눈빛이 꿈엔들 잊힐리야.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시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께서는 문을 닫고 나가시기 전에 내게 늘 한 소리를 던지고 가셨다.
"이걸 노래라고 듣고 있냐?"
최근 미국 힙합 씬에서 Gunna라는 래퍼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동료 래퍼들뿐만 아니라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의 수장 버질 아블로까지 SNS를 통해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는 1993년생 래퍼 Gunna는 지난달 2월 22일 데뷔 스튜디오 앨범인 'Drip or Drown 2'를 발매했는데, 나는 해당 앨범의 수록곡을 순서대로 쭉 듣다가 'Speed it up'이라는 노래의 가사와 만나고 그야말로 머리가 멍해져 버렸다. 뭐...... 뭐...... 뭐지?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내게 지겹도록 내뱉던 그 소리를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난 이걸 노래라고 듣고 있나?”
Gunna's <Drip or Drown 2>주어와 동사로 구성된 기본적인 문장조차 쉽게 찾을 수 없는 노래 'Speed it Up', 노래는 영어에 서툰 한국인이 자신이 아는 영어 단어들을 어렵사리 조합해 마구잡이로 뱉어내는 듯한 느낌을 줄 뿐이었다.
한국말로 이 노래를 의역한다면 이 정도 느낌이 될 수 있을까.
잠만, 잠만, 잠만
가즈아, 가즈아, 가즈아!
성공 고파, 고파, 고파!
깨부숴, 깨부숴!
돈, 돈
대학, 똑똑해
벤틀리, 샀어
비행기, 내꺼
내 삶, 쩔어
가즈아, 가즈아, 가즈아!
성공 고파, 고파, 고파!
잠만, 잠만, 잠만
이 노래는 과연 호안 미로, 피카소와 같은 전설적인 미술가들이 작품 활동 말년에 이르러 보여준 '의도된 단순성'처럼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주기 위해 계산된 스물다섯 흑인 청년의 영리한 전략인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가사 수준을 의도적으로 바닥까지 낮춰 “이렇게 대충 노래해도 내가 좀 잘 나가. 이 바닥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브로”라는 메시지를 랩스타 워너비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걸까.
최근 들어 미국의 힙합 트렌드와 관련한 회의적인 의견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단순하고 무의미한 가사의 무한 반복, 노래를 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확인할 길이 요원한 기어들어가는 래퍼들의 래핑(웅얼거림), 노래의 전반을 화려하게 수놓는 오토튠의 향연까지.
감각적이고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멜로디와 비트 위에 'Skrrt'이나 'Ice', 'Drip', ‘Money’ 등의 추임새를 집어넣고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이름과 자신이 소유한 자동차 모델명을 여러 번 나열하기만 하면 하나의 곡이 완성되는 작금의 힙합 트렌드 속에서 음악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와 ‘의미’를 찾고자 하는 힙합팬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박살나버린다. 와장창! 쿠당탕! 쿠다다당탕탕!
사실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그것이 힙합 음악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확실한 규정이나 모범 답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힙합 음악은 매일 그 스타일을 바꿔가며 빠르게 변모한다. 시대적 흐름(트렌드)이라는 거시적 요인과 개개인의 취향이라는 미시적인 조건이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힙합 음악 주위를 감싸며 양립할 뿐이다.
그렇기에 래퍼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방식대로 마음껏 펼쳐 늘어놓으면 그만이고, 랩을 듣는 리스너들은 자기의 마음속으로 착 들어와 감동을 주는 음악은 수용하고 도통 흥미가 일지 않는 음악은 저 멀리 제쳐두면 그만인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했나? 그런데 정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Gunna의 'Speed it up'이라는 이 심플하기 그지없는 음악을 듣고 인생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경험을 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을 비웃거나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인 거다.
힙합 음악을 오랫동안 즐겨온 나의 솔직한 감상평을 이야기하자면 ‘Speed it up’과 같은 최신 힙합곡들은 플레이하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노래임에는 분명하지만, 또 멍한대로 그것을 자꾸만 찾아 듣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콘텐츠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시 이유 없는 인기란 없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정말 더 유치하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아주 아주 유치하고 정말 정말 단순하며 진짜 진짜 멍청한 이야기가 진짜 진짜 먹힌다는 것, 이건 진짜 진짜다. 걔네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니까!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Run that back, Turbo)
Speed it up, speed it up
Eat it up, eat it up
Eat it up, speed it up
Speed it up (Hold on, hold on)
Beat it up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hold on,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Speed it up, high, speed it up
Scotty Hotty (Scotty 2 Hotty)
Charlie Wally (Charlie Wally)
Cheddar, cottage (Got cheddar and cottage)
Good brain, college (Good brain)
Her frame, body (Her frame)
Mulsanne, bought it (Mulsanne)
My plane, private (Private)
Diamond chain, wallets (Wallets)
No shame, I got it (I got it)
Couple plain watches (Watches)
I lay in Versace (Versace)
The hate, can't stop it
Speed it up, speed it up
Eat it up, eat it up
Eat it up, speed it up
Speed it up (Hold on, hold on)
Beat it up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hold on,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Speed it up, high, speed it up
Godly, baby
Katie, coupe, Mercedes
Wheezy, wavy, eyes lazy (Huh?)
My life's crazy (It's crazy)
A price, pay me (Pay me)
My eyes, HD (HD)
My eyes, 3D (3D)
I'm high, geeking (Geeked)
I lied at the precinct (At the precinct)
I didn't sign a 360 (A 360)
I got mine, not greedy (Not greedy)
I'm in the ride, speedin'
Speed it up, speed it up
Eat it up, eat it up
Eat it up, speed it up
Speed it up (Hold on, hold on)
Beat it up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hold on, hold on, hold on)
Speed it up (Hold on)
Speed it up, high, speed it up
Speed it up by Gun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