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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19. 2018

힙합은 당신의 생각보다 착하다.

God Bless! Thank You All! Blessed!

  미국 래퍼들이 즐겨 떠들어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감사’다. 그들은 자주 신에게 감사하고, 가족과 팬들에게 감사하고, 아름다운 이 세상에 감사한다. 물론 침대 위 그녀의 팽팽한 볼기, 손에 가득 쥔 지폐 그리고 차고에 있는 롤스로이스에 대해서도 지겹게 말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전지전능한 신, 주변 사람들, 아름다운 지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은 팔로잉하지 않은 미국 래퍼 Ace Hood와 프로듀서 DJ KHALED의 인스타그램 영상과 글을 보면 둘은 늘 환희에 가득 차서 감사를 주체하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God Bless를 외치는 그들과 대조적으로 침울한 나는 그들의 계정을 ‘언팔’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래퍼들은 가족과 함께 ‘게토’를 탈출해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는 랩스타가 되기를 원한다. ‘게토’가 아닌 곳에서 태어난 래퍼도 자신의 지난했던 과거를 하나의 ‘게토’로 설정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감사’의 태도가 깃들어있다. 그들은 자주 외설적이고 공격적이며 함부로 다가가기 힘들 만큼 자극적인 모습으로 노래하지만, 실상 어떤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더 긍정적이다. 감사와 사랑을 말할 때, 그들은 마이클 볼튼의 애절함도 스윗소로우의 달콤함도 가볍게 제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힙합 음악’이 넓게 퍼지고 있다. 힙합 음원이 음원 애플리케이션의 메인 화면에서 설치며 사람들의 말랑말랑했던 귀를 어떤 식으로든 자극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얼마 전 나는 한 중학교 앞에서 남학생 서너 명이 서너 명의 여학생을 따라가며 이제는 추억이 된 노래 지코와 팔로알토의 ‘거북선’을 틀어 놓고 듣기 거북한 변성기의 소리로 구애하는 것을 보았다. 남학생들은 두 손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제스처를 반복했는데, 여학생들은 그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수줍게 웃어주었다.

  한국의 힙합이 지역화 전략을 택하면서 '못된' 것들만 받아들여 말과 탈이 많다. 고인을 욕하고, 나라의 비극적 사건을 상스럽게 활용하고, 여성을 희롱하고, 없는 살림에 돈, 돈, 돈 거리는 것이다. 우리는 왜 좋은 것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래서 나는 일리네어 레코즈의 무던한 정신을 좋아한다. 긍정하고 감사하는 삶. 가끔 지겹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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