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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r 02. 2019

유명해지고 싶다면 박차고 나와서 뭔가를 해봐.

Lil Pump은 아무 말이나 막 내뱉은 대가로 '돈'을 벌어 간다.


"에이머리."

케리가 더 이상 못 참고 끼어들었다.

"넌 똑같은 곳을 마냥 빙빙 돌고 있어. 유명해지고 싶다면 박차고 나와서 뭔가를 해봐.

그게 아니라면 그냥 느긋하게 있어."


피츠제럴드 <낙원의 이편> 중에서



누군들 성공적 반전이 있는 짜릿한 인생을 바라지 않을까. 모두의 편견 섞인 예상을 뒤엎고 보란 듯이 꼭대기에 올라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BIG엿을 먹이는 건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서 침이 다 나온다. 질질질.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를 부단히 살아 나가는 우리에게 '내가 번 돈'으로 나의 위치를 똑똑이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거나 반대로 말문을 탁 막아버리는 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며 꿈꿔 본 그림이 아닐까.


여기 Lil Pump릴 펌이라는 미국 래퍼가 있다. 2000년도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 래퍼인 그는 Gucci Gang이라는 노래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라이프스타일을 자랑하며 못 배운 졸부의 매서움이 어떤 건지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구찌 갱, 구찌 갱, 구찌 갱, 구찌 갱, 구찌 갱, 구찌 갱! 나 새 체인에 천만 원 썼어.”




Gucci Gang을 필두로 한 그의 노래 속 가사들은 딱히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의미한 노랫말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이끌려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순한 가사의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릴 펌의 별 볼 일 없는 노래에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관심을 가진다. 롤랑 바르트 정도의 석학이 등판한다면 모를까 릴 펌의 노래는 그 어떤 진지한 해석과 평가를 애당초 차단한다. 아니, 불허한다.


Lil Pump릴 펌의 Mugshot머그샷


술, 담배, 약, 싸움 등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던 난봉꾼 릴 펌은 일찌감치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되는데, 이후 입학한 대안 학교에서도 강퇴(?)를 당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막장 Teenager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막장 인생이라도 역시 다 같은 막장은 아니다. 무언가에 꽂혀 미칠 줄 아는 막장 인생은 이도 저도 아닌 막장 인생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다. 릴 펌의 옆에는 '힙합' 그리고 '랩'이 있었다.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인 Smokepurpp와 함께 릴 펌은 프리스타일을 시작으로 Soundcloud를 통해 랩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운드 클라우드에 발표한 곡 몇 개와 뮤직비디오가 연이은 히트를 때리며 릴 펌은 힙합 씬의 루키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Gucci Gang이라는 곡의 거국적 대박과 함께 미국 힙합 씬의 아이코닉한 신예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유튜브를 통해 릴 펌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자. 그가 확실히 ‘정상’은 아니란 것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뷰 도중 동문서답을 하는 건 기본적인 수준이고, 갑자기 치킨을 먹거나 아무 의미 없는 추임새를 던지며 혼자 실실 대기도 한다. 특히 랩 씬의 대선배이자 미국 힙합 씬에서 유재석이나 손석희 정도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 J.Cole과의 인터뷰 영상은 정수와도 같은데, 다 마신 음료를 자꾸 홀짝이며 마치 친구들로부터 욕을 처음 배운 11살 어린아이처럼 수준 낮은 어휘와 문장을 나열하기 바쁘다(혹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고장 난 건가? J.Cole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음, 하지만 래퍼는 노래로 모든 걸 말한다(인터뷰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얼마 전 발매된 그의 신보 Harverd Dropout의 타이틀 곡 ‘Be Like Me’와 또 다른 수록곡 ‘Drop Out’ 속 이런 가사를 보라.



‘You can talk sh*t about me everyday,

But I’m still rich at the end of the day.’

맨날 나에 대해 X같이 떠들어도 돼.

난 결국 부자니까.


‘I’m a millionaire,

But I don’t know how to read.’

난 밀리어네어야.

근데 읽을 줄도 모르지.


'Be Like Me' by Lil Pump

from <Harverd Dropout>


‘Harverd Dropout bit*h,

Ooh yeah,

Ooh, Dropped out then I got rich,

Dropped out then I put a Patek.’

하버드 중퇴!

때려치우고 난 부자가 됐어.

때려치우고 난 파텍(명품 시계 파텍 필립)을 찼지.


‘Dropped out for my teacher,

Cause she ain’t sh*t’

선생 때문에 때려치웠어.

그 X은 병X이니까.


'Drop Out' by Lil Pump

from <Harverd Dropout>



릴 펌의 처세를 보고 있으면 개인의 가장 큰 약점이 사실은 최고의 강점으로 승화할 수도 있다는 인생사의 전략전술을 배울 수가 있다.

그는 세상이 원하는 말씀보다 자기가 던지고 싶은 아무 말을 마구 던진다. 진정한 트래쉬 토커인 셈인데, 그렇게 아무 말이나 막 던지며 마구잡이로 사는 듯 보이는 2000년생 난봉쟁이 릴 펌을 향한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의 축적은 '돈'이 되어 릴 펌의 통장으로 꽂혀 들어간다.

사실 릴 펌의 가사와 행동거지를 보고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것은 제정신이 박힌 나 같은 보통내기들에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브랜딩 차원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특수한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처세를 유심히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떤 비밀한 가치 하나쯤은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릴 펌과 같은 '인물'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어떤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 전형적이고 따분하며 진지하고 늘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은 지나치게 반복되며 평생 우리 주변을 싸고 돌기 때문에 이 세상에 특별한 감동이나 교훈을 주지 못한다(슬프게도 나 역시 그 집합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느덧 십 년이 훌쩍 지났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공부 강박증'과 '성실 강박증'과 '평범 강박증'은 여전히 건재한 듯싶지만, 대한민국에도 이제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사회 다방면으로 퍼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고 심지어 그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수직적으로 줄을 세우는 일에서 수평적인 맥락에서의 배려와 인정 그리고 공존의 가치가 힘을 발하고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확실히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릴 펌과 같은 별난 인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러니까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고 멋대로 판단하는 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는 것.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말썽꾸러기 난봉꾼 릴 펌이 저렇게나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며 지미 키멜 라이브 쇼 무대에서 주접을 떨 거라고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과연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https://youtu.be/X1VAIGkKf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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