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24)
어떤 사나이가 고통을 당하여 거듭되는 불행을 겪는다. 그는 그 불행들을 참고 자기의 운명 속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에 모든 것이 허망해진다. 몹시 좋아하던 한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그에게 아주 무심한 어조로 별 뜻 없이 이야기를 한다. 집으로 돌아오자 사나이는 자살을 한다. 사람들은 무슨 말 못 할 고민거리나 남모를 비극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원인이라는 게 꼭 필요하다면, 한 친구가 그에게 무심한 어조로 별 뜻 없이 말을 했기 때문에 그는 자살한 것이다.
알베르 카뮈 <안과 겉> 중에서
중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로부터 '부정적이다', '비판적이다'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치기 어린 마음에 나는 그것을 '멋'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차츰 '어른의 눈'을 뜨면서 보니 나는 그것이 '멋'이 아닌 ‘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정적이라거나 비판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판단'하는 것을 즐기는 부류의 인간일 공산이 크다. 나 역시 지독할 정도로 상대가 무엇이든 또 누구든 성실하게 판단하고 무던하게 평가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못된 버릇의 치명적인 단점은 성장 없이 제자리에 머무르는 나를 지켜봐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정말 쓰잘머리 없이 남에게 안 줘도 되는 상처를 준다는 점에 있다.
군에서 제대한 이십 대 초반, 카뮈의 저 구절을 읽고 나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별 뜻 없이 쓰레기처럼 툭툭 던졌던 수많은 판단의 말들이 더없이 부끄럽고 한심스러워서.
어쩌면 인생의 지혜란 덜 판단하고 더 존중하는, 덜 비판하고 더 배우려는 자세를 오래도록 견지하며 깨닫는 순간들이 모여 생기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런트 이미지 출처(independent.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