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자, 이제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자물쇠나 채우세요."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난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우리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군. 젊음도 자신감도 아주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헤밍웨이 <깨끗하고 밟은 곳> 중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살맛이 난다. 그렇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할 것이란 착각으로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세상이 이렇게나 잘 돌아가는 건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망설이는 사람이 여기저기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 음악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밤 작곡을 멈추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는 사람, 이 책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밤 집필을 멈추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는 사람, 이 음식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밤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는 사람 그리고 저기 저 각양각색 수많은 망설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숱한 사람들.
언젠가 오직 여배우의 얼굴을 감상하기 위해 봤던 일본 드라마 속에서 어떤 대사와 만나고 나는 주책맞게 영상을 일시 정지하고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농담이 아니다). 대사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당연한 걸 당연히 여길 수 있는 건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도처에 자극적인 것들만이 판치는 시대, 왠지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한 이야기들은 이제 내겐 큰 울림이 없다. 나는 그저 늦은 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주 미친 듯이 먹고 싶어 헐레벌떡 뛰어 들어간 카페에서 마감 정리를 하다 말고 마치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묵묵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주며 예의 그 따뜻한 미소를 날려줄 마감반 아르바이트 직원의 따뜻한 마음씨 같은 그런 어마어마한 것들에 휘둘리면서 살고 싶다. 그런 이야기들에 파묻혀서 뒤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