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25)
약관 21세에 제한된 분야에서나마 뛰어난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그 후로는 무엇을 해도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세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이었다.
그의 집안은 엄청난 부자였고, 대학 시절에도 돈을 펑펑 써서 빈축을 사곤 했다. 시카고를 떠나 동부로 옮겨올 때도 사람들이 혀를 찰 만큼 호사스러운 이사를 했는데, 예를 들면 레이크포리스트에서 폴로 경기용 말을 한 떼거리나 이끌고 왔던 것이다. 나와 같은 세대의 친구가 그 정도로 부자라는 것을 나는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동부로 왔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프랑스에서 1년 동안 살았고, 그 후에는 폴로 경기가 열리고 부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떠돌아다니며 즐기고 있었다. 데이지는 전화로 이번이 마지막 이사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데이지의 속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톰은 언제까지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 것 같은, 그렇게 각지를 전전하면서 이제는 재연할 수 없는 어떤 풋볼 경기의 극적인 광란을 아쉬운 마음으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요 며칠 빅뱅의 승리와 정준영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하다. 포털 사이트와 종편 뉴스 프로그램은 클럽 버닝썬의 구체적 테이블 가격 정보와 정준영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전체를 우리에게 보여줄 전투적 기세로 고래고래 악을 쓰며 주목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악에 굴복하였다. 내가 한때나마 진심을 다해 좋아하던 그룹 빅뱅에 대한 애틋한 팬심을 거두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돌아보면 빅뱅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사고를 참 야무지게도 쳤다. 무대 위에서 대중을 확 휘어잡아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들은 자동차 사고, 대마초, 군대 등 어찌 보면 민감한 이슈만을 잘도 골라 영리하게 문제를 만들어냈고 대중을 주목시켰다. 누구한테 어디서 어떻게 배워 먹은 기술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특유의 필살기인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눙치기'를 통해 늘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새로 일을 벌였다. 대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들을 향해 소리치고 열광할 거란 걸 빤히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승리는 나와 동갑이다. 90년생 말띠, 한국 나이로 서른이다. 나는 그가 그간 벌어 들였을 그 어마어마한 수입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누구도 그의 성공적인 인생의 커리어를 부정할 수 없을 테지만, 그는 너무 일찍 돈의 맛을 보았고, 명성의 짜릿함을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나댈 수는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정장을 빼입고 멋이란 멋은 다 부리며 영어를 쓰고 열심히 회사 놀이를 하던 그를 향해 MC 전현무가 예능용으로 던졌던 의심과 빈정의 말들은 웃프고 차가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Young&Rich,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 거린다. 나이도 어린데 염병할 돈까지 많다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완벽한 컨디션, Young&Rich!
누군가에게 세상은 꽤나 만만한 곳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방탕하게 놀고 즐기다가 ‘세상은 끝내 만만한 곳이었다.’라는 기분 좋은 결론에 마침표를 하나 꽝 찍고 눈을 감은 어지간히 운 좋고 팔자 좋은 사람들도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하지만 승리는 안타깝게도 만만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 세상이 실제로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게 생겼다.
언젠가 YG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양현석은 가수로서 ‘인성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내뱉었다. 반대로 JYP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진영은 인성이 좋지 않은 친구들이 성공하도록 돕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인성도’ 갖춘 아이돌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음, 나는 말의 무서운 힘을 알 것만도 같다.
* 메인 프런트 이미지 출처(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