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27)
한때 맥도날드의 모닝 메뉴인 치킨 치즈 머핀(현재 단종)에 꽂혀 정신을 못 차렸던 적이 있다. 치킨 패티와 치즈 각 1장씩을 따뜻한 잉글리시 머핀 사이에 꽂아 넣고 마요네즈를 처바른 극히 단순한 음식인데, 세트로 주문하면 함께 딸려 나오는 해쉬 브라운 감자튀김과 함께 그것을 한입 깨물어 잡수는 순간이면 나는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고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커피 대신 주문한 차가운 우유까지 한 모금 연타로 때려주면 이 세상은 정말이지 참으로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확신마저 내릴 수 있었다.
세상살이의 가치를 감히 맥도날드 머핀 따위를 경유해 확인하는 건 삶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나는 그렇게 십여 분이나마 인생의 걱정을 완전히 잊게 만들어주는 몰입의 대상으로서의 맥도날드 치킨 치즈 머핀 세트를 찬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자기만의 뚜렷한 행복의 조건을 확실히 정립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임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음, 그러니까 내 말은 명분이 없는 하찮은 일일지라도 또 남보기에 그럴싸한 취미 생활이나 습관이 아니어도 그것을 자기의 마음에 꼭 품고 손에 꽉 쥐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바깥에 행복의 점들을 잔뜩 찍어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이는 점잖고 잘난 체만 일삼는 사람들보다 더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는 거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한 사람의 인생을 수많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정의한다면 드문드문 찾아오는 거창하고도 묵직한 인생의 선택이 가져오는 가끔의 행복보다 누군가엔 다소 사소하고 시시하며 심지어 멍청한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때그때의 작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더없이 소중한 선택적 행동이 선물하는 소소한 행복이 한 사람의 그릇을 더 부드럽고 예쁘게 빚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마치 폭포수처럼 미친 듯이 다종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대세 플랫폼 유튜브 속에서 이제 거창하고 진지하며 심각한 아이디어의 콘텐츠는 종적을 감추고 있다. 대신 개인의 지극히 사소한 일상과 더없이 디테일한 취향이 수평적으로 나열되며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과 인생의 '재미'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 정립을 요한다. 그것들은 분명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고, 진지하지 않기에 도리어 진지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무튼 나는 참으로 변변찮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나 자신의 행복 조건을 아주 뚜렷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적어도 스스로 죄송하지는 않다. 맥모닝 하나에 방방 뛰고, 수십 년 전 발매된 미국의 힙합 앨범을 '초판' 버전이라는 이유로 정가의 곱절에 웃돈까지 더해 줘 가며 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얼굴이나 문장 그리고 책 커버 이미지가 박힌 노트, 티셔츠, 에코백, 머그컵, 열쇠고리 등의 한정판 굿즈를 가까스로 손에 넣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흐뭇해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어째 어지간히도 철딱서니가 없는 어른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