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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11. 2019

서른에게 보내는 쉰의 가장 세련된 인생 조언

월간 윤종신 '멋'을 듣다가 왈카닥 눈물을

월간 윤종신 2019년 3월호 '멋' 뮤직 비디오 / 출처: SMTOWN Youtube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수 윤종신을 천재라고 칭송하는 짧은 글을 하나 올렸었다. 요는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잘 표현해 전달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그는 기회를 잘 포착해 자신의 머릿속에 든 던질만한 이야기를 꺼내어 구체적인 언어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는 것이었다.


1990년, 한국 나이로 서른을 까먹은 내가 태어난 해에 윤종신은 그룹 015B의 보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기본적인 성정은 나이 든 인생 선배들이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몸소 터득한 인생의 비밀한 지혜가 구체적인 말과 글의 형태로 그들의 입 밖으로 터져 나오거나 손 끝에서 스며 나올 때면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꼭꼭 씹어먹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선배 말씀 맹신형 후배 마인드에 가깝다. 그렇기에 내가 태어나 엄마의 젖을 빨며 이제 막 세상을 발견하기 시작했을 때, 세상에 뛰어들어 그것을 공부하기 시작한 쉰 살 아저씨와 나와의 좁힐 수 없는 그 아득한 인생의 거리는 단순히 그를 노래를 들려주는 아티스트를 넘어서 인생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으로 여기고자 하는 나의 마음에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얼마 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봄의 기운을 만끽하다가 흥을 돋우고 싶어 음원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무심코 월간 윤종신의 최신 에피소드 19년 3월호 '멋'을 재생했다. 사실 매월 발행하는 월간 윤종신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찾아 듣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대중가요 리스너의 한 명으로서 내가 몸소 행하는 하나의 거룩한(?) 의식이다.

하여튼 나는 그의 노래 '멋'을 듣다가 울었다. 젠장, 고요하게 고이는 염병할 눈물. 그렁그렁 고이는 궁상맞은 서른의 눈물을 어찌할 건가.


시대의 목소리를 정확히 읽어내는 1등급 눈치와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 상대의 마음 깊은 곳에 정확하게 안착시키는 능란한 워드 플레이는 무딘 감성도 팔딱 다시 뛰게 한다. 아, 윤종신! 그의 노래, 특히, 노랫말에 주저앉아 굴복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힘든 건 다 알아

멋져지긴 정말 힘든 세상인 걸

하지만 그 실속이란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멋, 그거 다 부질없다 한 소리 해도

Hey, 아직 그들 말 다 따를 필요 없어

나중에 찾아올 회색빛 그 멋은 지금부터 쌓여

갑자기 그때 가서 서둘러 낸 건 티가 나지



윤종신은 '쉰 살이 서른 살에게 건네는 조언'이라는 열린 과제 아래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쏟아질 듯 진부한 그 뻔한 이야기들, 즉, 예상 가능한 그 전형성을 매력적으로 벗어난다. What to say와 How to say, 모두를 챙기기 위한 숱한 고민 끝에 터져 나왔을 쉰 아재의 그야말로 세련된 조언.



치사해 지지마

또 안 볼 사람처럼 하지 마

다 또 만나 기억해

지금의 나를 모두 기억해

이 시간들이, 이 순간들이 모여 가져다줄 추억 그리고 멋, 그게 다지

그게 다지


글쓰기를 오래도록 즐겨 오며 절감한 것은 너무 감정에 치우치거나 멋을 부리려고 잔뜩 힘을 주다가 보면 목적성을 잃고 저 멀리 날아가는 생각과 문장을 다시 붙드느라 2배의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윤종신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기본적으로 작사 작업이란 글쓰기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음악 작업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해왔는데, 그러한 생각을 감안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남다르게 적절한 멋과 감정을 섞어 던진다. 구체적인 뉘앙스를 구분한다면 내 기준에서 그는 작사가보다 작가에 더 가깝다.


너무 찌들지 마

별 큰 차이 없어

그 빛나는 걸 포기하지 마

다시 안 올 그대의 서른 출발해봐

짜치게 살지 마

나중에 안 그런 척 살지 마


너무 멀리 보지 마

지금의 빛나는 그대를 봐 거울을 봐

사랑해 망설이지 말고 더 사랑해

이 시간들이 이 순간들이 모여

가져다줄 추억 그리고 멋 그게 다지

그게 다지

그게 다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친절하게 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이를 하나하나 까먹으며 깨닫고 있다. 특히 위아래가 자주 그리고 손쉽게 나누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속칭 아랫사람을 대할 때 충고나 조언이랍시고 때로 폭력적이거나 하나 마나 한 말을 툭 던지고 후회 한 번씩 안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찌들지 말고, 너무 멀리 보지 말고, 치사해지지 말고, 지금부터 멋을 챙기라는 쉰 살 아재 윤종신의 진심은 솔직히 말해 서른 언저리의 우리가 보고 자란 기성세대의 슬픈 현실, 다시 말해 생의 무게에 찌들어 늘 지치고, 살아남기 위해 치사해져야 하며, 멋 따윈 챙길 여유도 없는 상황과 대비되어 도리어 슬프게 다가왔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떠올라서, 비슷한 생의 굴레 위에서 정신없이 다시 뛰어야만 하는 우리들의 처지가 생각나서.


그래서 나는 윤종신의 '조언'이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내 눈물의 출처는 아마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멋'을 챙기며 살아가라는 조언을 던져준 어른은 흔치 않았으니까. 아니, 솔직히 이제껏 없었으니까. 지금 이 시간들과 순간들이 모여 쌓이는 추억과 멋, 그게 전부라며 나의 현재를 위로해주는 어른 윤종신이 나는 너무나 고맙다.


감사해요. 윤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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