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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27. 2019

브랜딩을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지만, 노상 소설만 읽었습니다.

인간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품위는 실은 날 때부터 사람 나름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인간이 태어나서 곧바로 타고난 목표를 향해 돌진하여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처참한 일일까요. 비단 인간뿐이 아닙니다. 인간의 자리에 그 무엇을 대입해도 마찬가지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브랜딩은 절실합니다. 브랜드로 새 삶을 시작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요.

언젠가 화가 호안 미로는 질감이 전부다,라고 말했습니다. 호안 미로는 저를 헷갈리게 했습니다. 손으로 또 눈으로 느껴지는 처음 느낌 그대로가 전부라니! 하지만 그는 친절하게 덧붙였습니다. 질감이 전부다. 그리고 질감은 출발점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무엇도 타고난 기질이나 본질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정해야만 하는 시작점입니다. 쓰레기 다루듯 그것을 집어치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타고난 본질과 기질의 좋은 점을 챙기면서 새로운 비전을 감지하는 자기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시디즈라는 브랜드가 TV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더니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라며 당당히 선포했을 때, 저는 의자에 무려 인생을 끌어들이는 그 황당무계한 자신감에 코웃음 쳤습니다. 의자는 그냥 의자일 뿐이고, 의자는 그까짓 거 뭐 대충 앉는 거니까요(2019년인데 장동민 유행어는 좀 심했나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차츰차츰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건네는 일관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의자가 어쩌면 인생을 진짜 바꿀지도 모르겠다는 내면의 의심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젠장.


잘 들어봐. 너 하루 종일 뭐해? 일하지? 공부하지? 어디서? 의자에 앉아 있잖아! 의자를 바꾸면 너의 하루가 안락해져. 하루가 완전히 바뀐다니까. 그 하루가 쌓여봐. 인생이 바뀌지! 의자가 되게 중요하다니까! 못 믿겠어? 의자가 너의 연봉을 바꿔준다니까. 믿어봐.
 

아니나 다를까 시디즈는 타고난 의자의 숙명과 사람들의 몹쓸 대우를 이겨내고 매출을 8배 늘렸습니다. 성공을 향한 빅 토크의 힘이었을까요. 광고 속 빅 토크는 브랜드를 탄탄히 했고, 정체가 분명해진 브랜드는 다시 매출 점핑을 이끌었습니다.



시디즈 광고,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출처: 매일경제)


이번에는 릭 로스라는 미국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치킨 윙과 탄산음료를 그렇게도 좋아하던 래퍼 릭 로스는 작년에 고도 비만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픽 쓰러졌습니다. 아무래도 그대로 죽는 건 무서웠던 모양인지 그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뱃살과 가슴살을 쭉 빼서 돌아왔습니다. 역시 예전만 못하더군요. 각설하겠습니다. 하여튼 그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실하게 구축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영리한 래퍼였습니다. 미국 힙합 씬에서 특유의 터프한 보이스로 자신을 Drug Dealer와 Boss에 비유하며 많은 사랑(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전직은 Drug Dealer와 Boss를 때려잡는 교도관이었습니다. 그의 전직이 공개되었고,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그의 명성은 건재했습니다. 그는 이미 강력한 자신만의 브랜드를 데리고 대중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갔고, 인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그는 거기에 자신의 이미지를 퐁당 던져놓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으니까요.


Rapper Rick Ross (출처: Billboard)


욕쟁이, 약쟁이, 색정광, 양아치 등 미국 힙합 씬에서 거칠고 나쁜 남자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독차지하고 있던 2chainz라는 래퍼도 마찬가지입니다.

괴한의 습격에 미친 듯이 도망치는 현실 속 2chainz의 굴욕적인 실상이 CCTV를 통해 공개되었으나, 그가 성공적으로 쌓은 일련의 개성적 제스처를 무너뜨릴 순 없었습니다. 잘 구축된 성공적 제스처, 브랜드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군요.


Rapper 2chainz with GQ





하나의 창으로 보면 실제보다 훨씬 더 근사해 보이는 게 인생이다, 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머리로만 알고 있고 표현할 줄 모르는 자신의 매력은 매력이 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까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를 잘 설명하기 위해 자신과 굴튀김을 나란히 병치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굴튀김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기를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나란 사람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하나의 창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창으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브랜드가 한 가지 이미지나 아이디어를 점유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주고 싶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현재를 편집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그 옛날 미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은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고 말했지요. 제가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하며 절감한 것 또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늘 지루하고 평범한 스타일만을 지향하던 제게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패션 브랜드 PYREXOFF WHITE는 신선한 채소만큼이나 싱싱한 충격이었습니다. 고작 몇십 달러 짜리 챔피온의 후드티와 폴로의 셔츠를 구매해 그 위에 레터링 프린트를 하나 박아 놓고는 10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아먹는 PYREX의 그 담대한 수작에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브랜드라고 부르며 열광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나이키의 대표 슈즈 몇 개를 골라 애꿎은 신발을 이리저리 분해하여 케이블 타이를 묶고 Helvetica 문구를 적어 넣은 버질 아블로가 이끄는 OFF WHITE의 실험은 나이키라는 거대 브랜드에 창의와 역동 그리고 다양성의 정신을 새로이 이식했습니다.



Ralph Lauren Rugby X PYREX (출처: Grailed)


NIKE X OFFWHITE (출처: Runner's World)


개성이 없는 브랜드라는 말이 말이 되는 말인지, 말 같지도 않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대단히 슬프게도 개성 없는 브랜드라는 친구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명멸하고 있습니다. 슬프지만 팩트입니다. 하지만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지만, 창의는 인간의 영역이니까요. 당신의 브랜드에 확실한 개성을 부여하기 원한다면 부디 비비고 섞고 흔들어주세요. 대편집의 시대잖아요.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보다 더 나은 책을 쓰거나, 더 나은 설교를 하거나, 더 나은 쥐덫을 만든다면, 그가 숲 속에 집을 짓더라도 세상은 그의 문 쪽으로 잘 알려진 길을 낼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감각의 역치 값이 날로 높아만 갑니다. 사람들은 더 많고 더 폭넓은 경험으로 똑똑해졌습니다. 이제 브랜드는 똑똑한 사람들의 명확한 요구에 적확하고 풍부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에머슨의 ‘더 나은 쥐덫’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된 감 이 있긴 하지만, 브랜드와 브랜딩 그리고 마케팅의 비밀한 핵심을 가장 강렬하게 찌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머슨이 말하는 더 나은 책, 더 나은 설교, 더 나은 쥐덫은 결국 익숙한 브랜딩의 지평을 넘어서 기존의 틀을 넘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브랜딩은 더 나은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한 깃발 꽂기 게임과도 같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은’이라는 형용을 고정적인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됩니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포지션을 유연하게 계속 강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대상과 거래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좋은 첫 번째 대상과 거래를 튼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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