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Jul 07. 2019

이제 막 힙합이 좋아진 어린 학생들에게 바치는 글

조올라 축하드립니다. 지상 최고의 덕질을 시작하셨군요.

예전에는 우연히라도 밖에서 힙합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힙합 장르가 대중적인 음악 테마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면 국내외 힙합 음악을 귀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흔해졌지만, 내가 처음으로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힙합'이라는 장르는 우리나라에서 완벽한 비주류 음악이었다. 하기야 음악에 주류, 비주류의 구분이 어디 따로 있겠느냐마는 아무튼 당시의 실제적인 '인식'이 그러했고, 그러한 보편적 인식에 따라서 음악 장르에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형용이 실제로 사용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이라 함은 내가 무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어디서 보고 배운 것인지) 당시 나보다 열댓 살은 많던 인생 선배들이 즐겨 입던 칼카니, FUBU, MF, 노티카 등의 브랜드 의류를 왜소하고 볼품없는 몸에 억지로 껴맞춰 입곤 했다. 그래서 사계절 내내 나는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리는 통 큰 청바지의 허리를 벨트로 확실하게 졸라매야 했고, 한여름에도 무지하게 큰 박스 티셔츠를 입고 힙합 정신을 표출하느라 땀을 질질 흘려야만 했다. 그렇게 '힙합'은 나의 생 속으로 유난스럽게 기어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는 성공한 래퍼도 아니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힙합 평론가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정말 축복받은 거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몰입의 대상 중에서 정말이지 힙합만 한 건 없거든.' 이런 식으로 한마디를 거들며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일 때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망설이곤 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타이틀' 또는 '스펙'의 측면에서 볼 때, 나는 힙합 음악과 문화를 그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전부인 일개 힙합 팬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생각을 조금 고쳐먹어 보니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현재는 밥을 벌기 위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거진 20년을 한눈팔지 않고 '힙합'을 지고지순 그 자체로 사랑한 개인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힙합 음악을 만들거나 불러서 '밥'을 벌어먹는 프로 래퍼들이나, 힙합에 대해 이런저런 글을 진지하게 작성하여 '원고료'를 챙기는 전문가들보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훨씬 열정이 가득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도대체 힙합이 무엇인지, 나는 힙합을 왜 좋아하는지, 요즘 잘 나가는 힙합은 어떤 모양인지, 예전에 잘 나가던 힙합은 또 어떤 모양이었는지, 힙합이란 놈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일상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따위에 대해서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조잘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브런치 속 작은 글들은 그 시작점이 되었다.


이 글의 제목은 <이제 막 힙합이 좋아진 어린 학생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그렇다. 나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따라서 나는 고심 끝에 영상 하나를 공개하기로 했다.

2014 8, 내가 스물다섯 대학생이었을 ,  광고회사에 소속되어 대학생 스피치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했었는데, 그때의  발표 꼭지를 담은 영상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7 전후의 시간 안에 대학생이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은 이야기를 무엇이든 꺼내 한번 말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탄생한 것이었고, 나는 그것의  꼭지를 맡아서 역시나 '힙합' 이야기했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라는 인간은 아주 질리는 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발표를 통해 자기 자신만의 강력한 취미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있어 얼마큼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데, 지금은 스타 인문학 작가로도  유명한 박웅현 선생님이 일종의 감수를 봐주었다.


나는 위 발표를 통해 이 피곤한 세상 속에서 내가 언제든 기어들어가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취미)로서 '힙합'을 말했고, 그곳을 나만의 '동굴'이라고 칭했다. 사실 내가 힙합에 빠진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보내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위 영상 내의 모든 문장들이 대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실제적이고 실용적이며 손에 잡히는 조언을 듣고 싶어 할 어떤 친구들을 위해 몇 마디 말을 더 거들어보려고 한다. 조금 웃기지만 사뭇 진지하고 정중한 태도로, 시작해보겠다.


"이제 막 힙합 음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선택한 그 고상한 취미 활동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어 발음 기호를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닐텐데(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한국의 영어 교육 뻔하지 않습니까?) 또 영어권 국가에 다녀오지도 않았을텐데 그 많은 한국 래퍼들이 왜 그렇게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건지 궁금했던 적이 없으신가요? 네, 비약하자면 그들이 영어를 잘하는 건(적어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물론 '힙합' 때문입니다. 통문장 암기니 쉐도잉이니 무의식 학습법이니 하는 영어 학습법들은 미국 힙합 음악을 즐기며 가사를 따라 외우는 여러분의 일상적인 행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음악을 즐기면서 영문을 배우고 세련되고 현대적인 영어 실력을 연마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아, 다시 얘기하자면 한국 힙합 말고 미국 힙합을 말하는 겁니다. 한국 힙합도 물론 좋지만, 아직 미국 힙합에 손을 뻗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가끔씩은 그쪽으로 눈을 돌려봐주세요. 영어 실력도 키우고, 미국 문화도 배우고, 우리나라 래퍼들의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별도의 해석이 필요한 알 수 없는 말들이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확실히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또한 여러분은 '힙합'을 통해 언어의 맛과 멋 그리고 그것의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힙합 음악만큼 '말'을 가지고 그야말로 장난을 치며 지고의 희열을 느끼고, 서로의 언어 표현을 존중하며 무려 존경까지 보내는 음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여러분은 아직 절실히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언어의 맛과 멋을 잘 알고서 잘 지어낸 나만의 색이 녹아있는 글이 하나라도 있다면, 여러분은 그 글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여러분을 쳐다봐주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이 친구 또는 선후배와의 문자 메시지 전송이든 이메일 작성이든 대학교 과제이든 자기소개서 작성이든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아포리즘에 비견될 만큼 센스 있고 힘 있는 힙합 가사는 이 세상에 넘쳐납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제발 흘려듣지 말고, 의식적으로 곱씹으며 언어 표현에 대한 감도를 쭉 높여 놓으시길 바랍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힙합은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개념과 주제 그리고 음악, 문화 등을 흔들어 섞고, 새롭게 조합하며 말 그대로 융합적이고 편집적인 사고를 통해 자기 발전하며 지금의 위치로 올라온 것입니다. (모든 샘플링 작업은 어찌되었건 '위법'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여러분이 즐겨 듣는 힙합 음악들의 그 신박한(?) 샘플링 기법을 떠올려보십시오. 또 일종의 오마주나 패러디의 형태로 다른 래퍼들의 라인을 따와서 자신의 곡에 기가 막히게 녹여내는 어떤 천부적인 놀이 감각을 생각해보세요. 더욱이 많은 래퍼들은 값비싼 하이엔드 디자이너 브랜드와 나이키 에어조던을 위시로 한 스포츠웨어를 환상적으로 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힙합을 공부하고 그것을 깊이 파고들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주 매력적인 가치 중 하나인 '편집'과 '융합'이 이끄는 인상적인 결과물을 확인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 또한 아직 어리고 인생의 반의 반도 잘 모르는 일개 범부이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미래를 설계해나가는 데 있어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힙합 문화 속에 녹아든 '경쟁'과 '쟁취' 그리고 '성공'과 '야망' 등의 테마가 청소년들에게 그 어떤 자기계발서적에서도 담지 못하는 생생하고 현실적인 인생의 지침이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요구하고 강요하는 무언가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면서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곤조(?) 있는 삶의 방식은 '눈치'와 '사회적 기준점'에 평생 시달리며 '18' 소리를 내뱉고 한숨을 쉬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마음 깊숙이 심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태여 이 지루하고 팍팍하며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이탈을 꿈꾸고 있다면 '술'이나 '담배', '오토바이'가 아닌 '힙합'으로 시선을 돌려보기를 강력히 권하는 바입니다. 장담하건대 그곳에 꽤나 괜찮은 길이 있을 겁니다."



* 프런티 이미지 출처: MY MODERN MET 'Charlie Brown Hilariously Mashed-Up with 90s Rap'






매거진의 이전글 무명에서 그래미로, R&B 가수 엘라 마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