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Scott Fitzgerald <Early Success>
미국의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그의 나이 마흔한 살에 쓴 에세이 <이른 성공>을 통해 자신의 때 이른 성공을 돌아보며 회상에 젖는다. 낭만적이고 화려했던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을 밟아본 사람이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살아나가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뒤늦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감상에 젖는 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그리고 하 많은 미련이 어려있는 그의 글 속에서 애틋한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펴내고 최내현 선생님이 옮긴 피츠제럴드의 에세이 <이른 성공>의 일부를 여기에 추려서 소개합니다. 좋은 글을 옮기고 또 소개해주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꾸벅.
"분위기를 깨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를 배워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눕피-
1937년 10월
꿈이 이르게 실현되면 그에 따른 보너스와 짐이 함께 생겨난다. 때 이른 성공을 맛본 사람은 거의 맹목적으로 운명의 힘을 믿게 되는데, 이는 의지력과는 정반대 되는 개념이다. 그 최악의 형태가 나폴레옹식의 망상이다. 일찍 꽃핀 젊은이는 하늘이 나를 빛낼 운명을 내렸기 때문에 자신이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서른이 되어서야 올라선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 운명에 대한 균형된 생각을 가지게 되고, 마흔이 되어서야 그곳에 이른 자는 개인의 의지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각각의 태도가 만들어내는 차이는 후일 풍랑을 만나게 되면 드러난다.
이른 성공의 보상은, 삶이 로맨틱하다는 확신이다. 좋은 표현으로는 젊게 살 수 있게 된다. 사랑과 돈이라는 우선적 목표가 쉽게 이루어지고 유명세가 당연시되자, 나는 꽤 오랜 기간을 영원한 해변의 축제를 찾으며 낭비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 낭비를 후회하진 않는다. 언젠가 이십 대 중반에 석양이 질 무렵 코르니슈 도로를 운전해 가고 있었는데, 저 아래 바다에 프렌치 리비에라 전체가 반짝였다. 앞쪽 저 멀리에 몬테 카를로가 보였고, 성수기가 지나 이제 노름을 하는 귀족들도 없고 필립스 오펜하임은 나와 같은 호텔에서 하루 종일 잠옷 차림으로 지내는 뚱뚱한 아저씨에 불과했지만, 몬테카를로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참을 수 없이 매력적이어서 나는 차를 멈추고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내가 보고 있던 건 몬테 카를로가 아니었다. 골판지 붙은 발바닥으로 뉴욕 거리를 걸어 다니던 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더 이상 꿈이 없는 나에게 짧은 한 순간이나마 청년의 꿈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뉴욕의 어느 가을 아침, 혹은 너무나 조용해서 이웃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캐롤라이나의 어느 봄날 밤, 나는 살금살금 그 청년에게 다가가곤 한다. 하지만 나와 그 청년이 다시 하나가 되는 일은, 충족된 미래와 동경의 과거가 하나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합쳐지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스콧 피츠제럴드 <이른 성공> 중에서
* 프런트 이미지 출처: nytimes
* 본문 이미지 출처: TomTom
* 본문 내용 출처: 북스피어 출판사 <재즈 시대의 메아리>, 최내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