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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26. 2019

옛 유행가로부터 힙합을 끌어내는 96년생 백인 래퍼

고전 샘플링의 귀재, 독창적인 백인 래퍼 Yung Gravy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스눕피입니다.


오늘은 20년 차 힙찔이(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 그 열네 번째 시간입니다. 솔직히 관련 글이 한 스무 꼭지 정도는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고작 열네 꼭지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제게 약충이었습니다. 약간 충격이요. 음,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더 분발을 해야 할 텐데 타고난 게으름을 이길 방책이 없으니 큰일입니다. 아무쪼록 더 힘내 보겠습니다. 누가 보면 한 수천 명이 제 글의 업로드를 기다리는 줄 알겠어요. 하지만 단 한 분의 구독자라도 제겐 소중하다는 사실, 다시 한번 강조드리는 바입니다.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좀 닥치고) 오늘의 추천곡을 바로 소개합니다.


오늘의 스눕피'S PICK은 미네소타주 로체스터 출신의 1996년생 머리숱 많은 백인 래퍼, 'Yung Gravy'<Whip A Tesla> 그리고 <Mr. Clean>입니다.


(출처: DJBooth)



Old Town Road에 감히 도전장을? 여기 아류 딱지 가져가세요.


2018년 12월부터 빌보드 차트를 지겹도록 뜨겁게 달궈 온 신예 래퍼 Lil Nas X의 'Old Town Road'는 서로 다른 두 장르, 컨트리와 힙합이 매력적으로 융합하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한 의미 있는 싱글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가 그렇듯 '혼자 다 해 먹는' 행위는 정말로 지루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 'Old Town Road'의 우산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대한민국의 서른 살 남자는 몇 개월 전 우연히 유튜브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 Yung Gravy와 시카고 출신의 트랩 래퍼 Chief Keef가 함께한 'Tampa Bay Bustdown'과의 깜짝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컨트리X힙합의 또 다른 가능성 (출처: hotnewhiphop.com)


전 세계를 강타한 'Old Town Road'가 컨트리X힙합 음악의 인식 상 '최초'의 지위를 공고히 가져간 이상, 이후 발매한 컨트리 힙합 음악 'Tampa Bay Bustdown'은 사실 탄생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하다는 인증서 중 하나인 '아류' 스티커를 붙이고 세상에 고개를 내민 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편견이 어김없이 더해진 저의 첫 감상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으이규, 이것들이 시류 편승해서 함 해볼라꼬!" 하지만 제 인생을 돌아보면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첫 만남은 반전하여 자주 새롭고 감동적인 재회로 이어지더군요. 두어 달이 지나 Yung Gravy의 앨범 <Sensational>을 만나게 된 것이죠. "아, 얘가 그때 걔였어?" 나중에 알고 보니 앨범의 발매 순서는 반대였더라고요.






명곡의 재탄생


Yung Gravy, 외형적인 모습만 놓고 보면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고루한 촌뜨기 미국인 친구로 등장할 것만 같은 얼굴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 외모와 달리 꽤나 독창적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Teddy Pendergrass와 Motown 아티스트들의 옛 알앤비, 소울 뮤직을 흡수하며 자랐다는 밀레니얼 래퍼 Yung Gravy, 이렇게 즐겨 듣고 자란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 그가 선보이는 음악의 두드러지는 특질은 역시 '오래된 유행가'를 샘플링하여 트랩 비트와 잘 섞어내는 점에 있습니다.



(출처: Giphy.com)



The Chordettes의 <Mr.Sandman>(1954), Spinners의 <I'll be around>(1972), The O'Jays의 <Back Stabbers>(1972), Maxine Nightingale의 <Right back where we started from>(1975), Bill Conti의 <Gonna Fly Now>(1977) 등이 트랩 비트와 합일하여 맛깔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그 위에서 성우 같은 Yung Gravy의 부드러운 중저음 래핑은 그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고전 명곡이란 사실 잘 살리기보다는 잘 망치기가 더 쉬운 음악입니다. 우리 모두의 신, 카니예 웨스트 정도 되어야 명곡의 눈물 나는 재해석을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Yung Gravy도 만만치 않습니다. 잘 살립니다. 정말 잘 살립니다. 눈물이 납니다.




영화 <록키>의 주제곡 <Gonna Fly Now>를 샘플링한 Yung Gravy의 <Ice Cream Truck> (출처: Genius / Hollywoodreporter)






분명한 지향점


한 사람이 가진 호불호의 대상은 시간을 두고 층층이 쌓여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스타일'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두고 평가해도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사람 평가'라지만, '호불호'가 분명한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예외가 적용됩니다.



어떤 음악이 영감을 주었나요?
오래된 명곡들이요.

영떡이 왜 좋아요?
그냥 그 사람은 천재예요.

드레이크 or 제이콜?
둘 다 별로예요.

맥 밀러 or 트래비스 스캇?
트래비스 스캇이요.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는?
마이클 부블레요.

- 2018년 8월 Power 106 Los Angeles 인터뷰 중에서 -



Yung Gravy는 어떤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행자의 양자택일 질문 공습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드레이크와 제이콜? 둘 다 별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마이클 부블레! 라고 대답하더군요.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의 두 왕자를 대놓고 거부할 줄 아는 청개구리 같은 용기, 캐나다의 팝 재즈 보컬리스트 '마이클 부블레'를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가수로 꼽는 의외성, Young Thug과 Travis Scott이라는 스타일리시한 힙합 캐릭터를 선호하는 뚜렷한 취향, 밀레니얼 래퍼임에도 불구하고 영감의 원천으로 모타운의 소울 음악과 오래된 명곡들을 꼽는 반전 매력까지.



(출처: Chasing The Light Art)




뭔가 빠져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내가 듣고 싶어 하던 음악은 들어보질 못했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기로 했어요.

- Republic Records 아티스트 소개 중에서 -




오래된 명곡을 들으며 자랐고, 드레이크와 제이콜은 둘 다 별로라고 생각하며, 마이클 부블레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고, 영떡과 트래비스 스캇을 좋아하는 미네소타 출신의 백인 밀레니얼 래퍼로부터 힙합의 전형성 내지는 일반성을 기대하는 건 몹쓸 일입니다. 그는 그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직접 만들어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알렉사, 테슬라에 몇 명이나 태울 수 있지?



Hey Alexa, hey Alexa, How many b**ches can we fit in the Tesla?




오늘의 첫 번째 추천곡 <Whip a Tesla>는 제목 그대로 테슬라(구체적으로 모델 X)를 몰고 다니는 Yung Gravy와 피처링에 참여한 아티스트 bbno$의 스웨그 넘치는 리치한 라이프스타일을 재미있게 그려냅니다. Yung Gravy가 테슬라 모델X와 연동된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 'Alexa'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헤이, 알렉사, 테슬라에 bi**ches 몇 명이나 태울 수 있을까?"



(출처: Twitter)



Whip electric, pockets lookin' hectic
전기차 몰아, 돈 버느라 정신없어
Butterfly doors when I let your b**ch exit
네 여자 내보낼 땐 버터플라이 도어로
Look majestic, move onto my next bitch
그리고는 당당하게 다음 여자에게로
She look 42, man, I think I'm dyslexic
  이 여자 마흔둘* 처럼 보여, 나 난독인가 봐.
(*실은 24살이겠죠.)

Yung Gravy <Whip a Tesla> 중에서




별 볼일 없는 가사입니다. 썩 유쾌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이 노래는 가사만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어폰을 끼고 큰 소리로 들어보아야 그 진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노래의 짜임새가 너무 좋구요, 피처링에 참여한 bbno$와 Yung Gravy의 음색 조합도 환상적입니다. 앞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는데요, Yung Gravy는 Oldies를 샘플링하여 활용하는 것만큼이나 요즘 시대가 원하는 스타일의 비트와 꽤나 미래적으로 느껴지는 사운드 위에서 랩 플레이하기를 즐기기도 한답니다.





미스터 샌드맨? 미스터 클린!


힙합 음악의 랩 가사를 설명하는 일이란 자주 곤란합니다. 노래 소개를 하려면 가사 소개가 빠질 수 없을 텐데, 가사들이 엉큼하기 짝이 없으니 말이죠. 저는 확실히 선정적인 가사들에 무뎌졌는데, 모든 사람이 다 저처럼 변태는 아니니까요.

<Mr. Clean>에서 Yung Gravy는 다양한 미국의 클렌징 용품 브랜드를 나열하면서 자신을 그것들처럼 Clean한 남자, 미스터 클린으로 비유합니다. 자기애에 휩싸인 그가 말하는 Mr. Clean은 깔끔하고 나이스한 남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엄마와 여자 친구를 노리는 나쁜 새끼이기도 합니다. 이런 나쁜 새끼. 하지만 모순과 역설의 언어유희는 역시 가장 재미있는 힙합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하죠. 사실 곡 속에선 또 다른 의미에서의 미스터 클린의 존재가 등장하지만, 설명하기가 거시기해서 생략합니다.


(출처: Genius)


 곡을 여는 동시에 전체 테마를 책임지는 샘플  Mr.Sandman The Chordettes 불러 1950년대에 대단한 인기를 구가한 미국의 고전 인기곡입니다.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마법의 모래를 뿌려 좋은 꿈을 꾸게  준다는 유럽 신화  요정 샌드맨, 원곡에서는 샌드맨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하며 마법을 부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있도록 부탁합니다.  지점을 활용하여 Yung Gravy 자신을  이상적인 남자 'Mr. Clean'으로 상정하고  게임을 진행합니다. 아이고, 이런 문학적인 남자!





약점이 많은 남자, 차근차근 올라 온 남자, 응당 더 많은 인기를 누려야 할 남자


위스콘신 대학교 메디슨 캠퍼스 졸업, 백인, 미네소타주 출신, Yung Gravy는 사실 래퍼로서 최악의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부터 차근차근 인지도를 넓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타 프로듀서 겸 래퍼 Juicy J, 이 시대 가장 뜨거운 현역 래퍼 중 하나인 Lil Baby도 멋지게 지원 사격을 해주었죠.

저는 개성 있는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지루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Yung Gravy는 언더와 오버의 맛을 동시에 만들어낼 줄 압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조금도 지루하거나 처지지 않아요. 저는 이 지점에서 그를 높이 삽니다.




I'm the youngest Minnesotan makin' movement

Yung Gravy <Pizzazz> 중에서




그가 지금보다 더 떴으면 좋겠어요. 본문의 어딘가에서 언급했듯이 혼자만 다 해 먹는 인생이란 재미가 없으니까요. 저는 포스트 말론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그가 가진 거국적 인기의 일정 지분을 Yung Gravy와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야 더 멋진 백인 래퍼들이 더 많이 등장할 테니까요.


Yung Gravy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의 프로필에 쓰여 있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Music for your dad, mother, & sister"

- Yung Gravy 공식 인스타그램 프로필 메시지 -




이토록 길고 영양가 없는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 열다섯 번째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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