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Dec 24. 2019

힙합 씬의 패션왕, 락스타 '릴 우지 버트'

랩스타<락스타<패셔니스타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로 찾아온 스눕피입니다. 관심사가 워낙 잡다하다 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도 다종하여 힙합 콘텐츠 포스팅의 텀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힙합 이야기를 듣기 위해 [스눕피의 브런치]를 구독하는 선생님들께서는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스눕피의 브런치가 일종의 잡지처럼 기능했으면 합니다. '잡지'라는 명사의 '잡'이 '섞다', '뒤얽히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주제에 갇히기보다는 여러 잡스러운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주는 메신저가 되었으면 하는 거죠. 나중에는 [SNOOPY]라는 제호로 실물 잡지를 하나 만들어 이곳에 담긴 이야기들을 싹 다 몰아넣고 좋은 질감의 종이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는 미국 힙합 씬의 No Stylist이자 Fashion King이자 작은 고추이자 아이돌이자 아이콘인 필라델피아 출신의 단신 래퍼 Lil Uzi Vert 우지 버트입니다.


(출처: True Urban Culture)


릴 우지 버트는 1994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락과 힙합 음악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어린 래퍼는 다른 뭇 래퍼들의 성장 배경과 비슷하게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랩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는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국 나이로 스물하나에 발표한 첫 EP [Purple Thoughtz Vol.1]과 이후 발표한 믹스테이프들이 해를 거듭하며 여러 메인스트림 래퍼들과 프로듀서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면서 힙합 씬의 스타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셀러브리티를 이야기할 때 '미워할 수 없는'이라는 형용만큼 훌륭한 수식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유 없이 싫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호전의 시대에 도대체가 미워할 수가 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니요. 그런데 정말이지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 릴 우지 버트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랩 오리지낼러티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타고난 귀여움으로 쉽게 미워할 수가 없는 인간의 경지에 오른 래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태여 미워하고 싶으시면 그리하세요. 깊은 유감을 표할 뿐입니다.



'Futsal Shuffle 2020'

대체 릴 우지 버트가 어떤 인간이냐고요? 그의 가장 최근 행보로부터 힌트를 얻어보기로 하죠. 릴 우지 버트는 지난 12월 12일 싱글곡 'Futsal Shuffle 2020'를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그간 지나칠 정도로 발매를 연기하며 팬들의 짜증을 돋운 그의 정규 2집 앨범 'Eternal Atake'의 수록 예정곡입니다(여전히 앨범 발매일은 미정입니다).


(출처: Stereogum.com)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앨범 커버 아트, 전혀 예상치 못한 사운드,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사(대체 어떤 여자일까?), 별안간 튀어나오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장애물을 헤치고 일어나 많은 돈을 만져본 자의 즐거운(?) 자신감 등이 이번 싱글곡의 두드러지는 특질일 것입니다. 그리고 위 곡을 통해 단편적으로 드러난 이 특질들을 조금 더 넓게 펴서 죽 이어 붙이면 아티스트 '릴 우지 버트'의 래퍼로서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il Uzi Vert's Official Youtube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첫째, 애니메이션으로 자기 음악의 비주얼적 측면을 예쁘게 브랜딩했고, 둘째, 독특한 사운드로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했으며, 셋째, 세대의 감정을 담아낸 호기심을 부르는 가사-이것은 그가 몸소 대중화한 Emo Rap과 연결이 될 텐데, 바로 다음 챕터에서 짧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로 노래에 사연을 담았고, 넷째, 패션 브랜드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미친 사랑으로 랩보다 패션을 더 사랑하는 아티스트라는 개인 브랜드로 자기의 반쪽을 내어줬으며, 다섯째,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일했던 짜치는 과거가 무색하게 그는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스포츠 스타 중 하나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중고 부가티 차량을 약 20억에 사들여 타고 다닐 정도로 넉넉한 살림을 꾸리고 있는 랩스타인 것이죠.


Lil Uzi Vert X Bugatti (출처: reddit.com)


더욱이 이번 싱글 'Futsal Shuffle 2020'를 발표하며 릴 우지 버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의 화려한 발재간 영상을 포스팅하여 새로운 셔플 댄스의 재기를 예고했고 어린 친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풋살 셔플 챌린지라고 불러야 좋을까요?



그는 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빼앗습니다. 지나치게 법석을 떨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조금도 밉지 않은 귀여운 표정을 한 채 말이죠.



락-스타 그리고 이모 랩Emo Rap-스타

릴 우지 버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영감의 대상으로 미국의 펑크락 아티스트 GG Allin, 락스타 Marilyn Manson, 락밴드 Paramore의 리드 보컬리스트 Hayley Williams 등을 꼽은 바 있습니다. 유명한 이야기죠. 동료 래퍼 Playboy Carti의 곡 'wokeuplikethis*'에서는 대놓고 'I'm a rockstar'라는 인트로 벌스를 늘어놓으며 자신을 락스타로서 포지셔닝하기도 했습니다.


마, 내가 락스타다! (출처: Pinterest)


우리가 흔히 팝송이라고 일컫는 음악과 우리가 흔히 힙합이라고 부르는 음악 사이의 간극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제 팝은 곧 힙합이 되었고 힙합은 곧 팝이 되었죠. 이러한 지점에서 '노래'와 '랩'을 구분하려는 1차원적인 시도 또한 시의적절하지 못합니다. 이제 노래는 랩이 되었고 랩은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죠.

릴 우지 버트의 특정 노래와 무대를 두고 "이건 힙합 또는 랩에 가까워" 또는 "이건 락에 가깝지"와 같은 피상적 판단은 요즘 세대의 힙합 뮤직을 수용하는 적절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릴 우지 버트와 함께 Emo Rap 씬을 대표하는 동료 래퍼 Trippie Redd의 'Leray'와 XXXTENTACION의 'Numb'을 음원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지금 한 번 들어보시죠.



여러분이 흔히 즐겨 듣던 힙합 또는 랩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위 두 곡이 얼마나 가지고 있다고 느끼실지 궁금하군요. 다시 반복하지만 이제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음악적 스타일을 근거로 단순히 힙합과 랩을 구분하고 정의 내리려는 시도는 무력합니다.



I don't really care if you cry
On the real you should've never lied
Should've saw the way she looked me in my eyes
She said baby I am not afraid to, die
Push me to the edge
All my friends are dead

-Lil Uzi Vert 'XO TOUR Llif3' 중에서-



미국 하이틴 무비 속 방황하는 십 대의 명대사스러운(?) 릴 우지 버트의 저 징징대는 가사와 찡찡대는 목소리를 보시죠. 미국의 고전 힙합(?) 씬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던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젠 용납의 수준을 넘어 빌보드 차트를 주무르며 힙합 씬의 큰 갈래가 되었습니다.

미국 힙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Emo Rap이모 랩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 출신의 아티스트 Yung Lean이나 차례대로 숨을 거두며 힙합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준 래퍼 Lil Peep, XXXTENTACION, JuiceWRLD 그리고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 Lil Uzi Vert 등이 이모 랩 씬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인데요, 자살, 우울, 공허, 약물 등의 주제에 대한 집착,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나 실연 등으로부터 빚어진 급변하는 내면 상태 등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리스너와 소통하는 이모 랩은 사실 80년대의 Emo-core(Emotional Hardcore) 락 밴드의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실패한 로맨스, 인간관계, 불안, 자살 등에 대해 자기 고백적이고 자기표현에 솔직했던 이모코어 락 밴드의 음악적 특질이 2010년대로 흘러들어와 날이 갈수록 냉랭하고 무심해지는 시대적 배경과 결부된 개인적 시련과 방황을 타개할 음악적 시도를 찾아 헤매던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래퍼들의 가슴속으로 꽂혀 들어간 것이죠. 이모 랩은 음원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활발히 유통되고 소통하였기 때문에 사운드클라우드 랩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랩보다 패션이 더 좋다는 이상한 래퍼

래퍼 릴 우지 버트가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위에서 그의 #ootd(outfit of the day)를 알리는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마치 패션 스토어에서 제품 상세 이미지를 보여주듯이 자신의 아웃핏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드러냅니다. 이 브랜드에 주목하라! 이 색감에 주목하라! 이 소재에 주목하라! 이 조합에 주목하라! 약 1,100만 명의 팔로워들을 향해 그는 은근하면서도 끈질긴 주문을 넣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선생님, 친절한 주문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할 돈이 없어요. 하나 사주든가요.


SUPREME, 로렉스, 나이키 1일 홍보대사 '릴 우지 버트'



루이비통, 고야드, 롤스로이스, 로렉스 1일 홍보대사 '릴 우지 버트'



미국 하이엔드 스트리트 패션의 대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선생님은 언젠가 패션에 미친 릴 우지 버트 선생님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릴 우지 버트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는 크리에이티브의 또 다른 레벨입니다.
제게 릴 우지 버트는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물감을 기성품 브랜드로 대체했을 뿐이죠.

-버질 아블로-


솔직한 진심을 말하자면 난 패션을 음악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데 사실 패션에는 시간을 들이거든요.

-릴 우지 버트-



외면을 가꿀 시간에 내면을 성찰하라는 도처의 말씀, 제가 가장 싫어하는 잔소리 중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도 예쁘게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특별한 목적 없이 태어난 인간이 세상에 줄 수 있는 훌륭한 가치 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면만 성찰하다가 스스로 지쳐 폭삭 늙어버린 사람은 보는 이를 지치게 합니다. 반면 자기의 외형을 멋지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이 뿜어내는 쾌한 멋과 기운은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합니다.


릴 우지 버트는 왜소한 몸집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여성용 옷을 즐겨입었다고 합니다. (105.3 The Beat)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릴 우지 버트의 패션 집착과 스타일 강박을 사랑합니다. 그는 약 1,1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지닌 탑 연예인이고, 그러한 영향력을 토대로 자기를 멋지게 꾸미고 가꾸는 일이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는 놀이인지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Lil Uzi Vert의 인스타그램 페이지, NO STYLIST, Asian on the inside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타고난 감정 연기자

하나의 색으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릴 우지 버트의 앨범을 통으로 가만히 듣고 있거나, 비밀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듯 수줍게 미소 짓거나 진지하게 인터뷰어를 노려보는 그의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 이 사람은 타고난 감정 연기자로구나." 


Lil Uzi Vert X Nardwuar

그는 랩이라는 게임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가 그 위에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특히 1020세대) 여러 종류의 감정을 담아서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선수라는 것. 의도적으로 발음을 뭉개는 Mumble Rapping멈블 래핑으로 중얼거리고 꿍얼거릴 때에도, 머신 건을 싸지르듯이 속사포로 라인을 쏘아댈 때에도, 멜로디컬한 노랫말로 천국을 이야기할 때에도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매력적으로 보일 것인지를 알고 그에 맞게 자신의 감정을 잘 연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렉트로닉, 팝, 락 뮤직 등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위에서 그는 다양한 방식의 목소리 연기로 자신이 느끼는 다채로운 색깔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죠.



결과로 증명한 진짜 락스타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인 2016년 2월, HOT 97의 릴 우지 버트 인터뷰는 흥미롭습니다. 올드 힙합에 젖은 두 인터뷰어가 릴 우지 버트를 향해 비아냥의 총구를 겨눕니다. 예의상 꾹꾹 진심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속에선 "네가 뭔데 그따위 음악을 가지고 힙합한다고 까불면서 힙합을 더럽히는 거야?"라는 마음이 지배적인 듯 보입니다.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 정말이지 다 드러나더군요. 릴 우지 버트는 "나는 락스타가 될 거다.", "오늘 밤 내 공연에 한 번 와 봐라."라는 말로 응수하지만, 힙합 꼰대인 그들은 풋내기 멈블 래퍼를 그야말로 '개무시'해버립니다. 킥킥대면서 말이죠.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도 영원하다."

HOT 97의 인터뷰어들이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의 저 명문장을 가슴속에 품은, 예의를 갖춘 사람들이었더라면 뒤늦은 이불킥을 할 일은 없었을 텐데요.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지금 릴 우지 버트의 부가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은 지금 진짜 락스타가 되어 미국 힙합 씬을 쥐락펴락하는 릴 우지 버트의 영향력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시대는 변하고 세대는 교체되는 법입니다. 모두 조심합시다!



스눕피가 추천하는 여덟 곡

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 이제는 대중없이 막 나갑니다. 예전에는 두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각 아티스트의 추천곡 하나씩을 추천하곤 했는데, 이제는 매주 아주 마음대로 막 나갑니다.

이번 주에는 요즘 제가 즐겨 듣는 릴 우지 버트의 노래 여덟 곡을 꼽아 봤습니다. 여러분, 기왕이면 시간을 내어 릴 우지 버트의 정규 데뷔 앨범 [Luv Is Rage 2]를 한 번 쭉 들어보세요. 중간에 끄고 싶어도 꾹 참고 한 번만 전체 앨범을 돌려보세요. 며칠이 지나면 몇 곡이 생각나 다시 찾아들게 될 것이고, 또다시 며칠이 지나면 또 다른 몇 곡이 생각나 또다시 찾아 듣게 될 겁니다. 물론 장담은 못합니다. 중요한 건 앨범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처음 몇 곡을 잘 참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옛 유행가로부터 힙합을 끌어내는 96년생 백인 래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