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Jan 14. 2020

지인 추천 찬스로 마약상에서 랩스타가 된 남자

Lil Baby, 공채 말고 특채로 미국 정상급 래퍼가 되다.


Jerry
Won't you sit down?
좀 앉지 그래요?

Mr.Snooks
No, I got to hustle along in a minute.
금방 또 허슬하러 가야 돼요.

피츠제럴드 희곡 <THE VEGETABLE, OR FROM PRESIDENT TO POSTMAN> 중에서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20년 차 힙찔이(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 그 열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처음이자 마지막 희곡 <채소>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그 포문을 활짝 열어보았습니다. 금주법의 시대, 어깨에 커다란 마대를 걸치고 에틸알코올과 증류수, 아니스 씨앗 등을 들고 다니며 방문 판매 형식으로 불법 주류를 제조하던 Bootlegger밀주업자 Mr.Snooks에게 술에 취한 주인공 Jerry Frost가 자리에 앉기를 권유합니다. 그러자 Mr.Snooks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 금방 또 허슬(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일)하러 가야 돼요.

Mr.Snooks



힙합 문화를 꽤 오래 즐겨온 분들이라면 Hustle허슬 또는 Hustler허슬러와 같은 표현이 너무도 익숙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허슬'은 돈을 벌기 위해, 나아가 이상적인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신체 활동이나 정신력 따위를 의미하는데요,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를 형언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은 Hustle 또는 Hustler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 미국 힙합 씬의 부정할 수 없는 중심지 애틀랜타를 대표하는, 구체적으로 SWAT(South West Atlanta)에서 나고 자란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는 래퍼 Lil Baby릴 베이비입니다. <응답하라 1988>의 미남 배우 류준열 님과 대마초 래퍼 아이언 님, 악동뮤지션의 군필 해병 이찬혁 님, 부산 갱스터 랩의 지존 래퍼 정상수 님의 얼굴을 잘 흔들어 섞어 아프리칸 아메리카의 소울 진액을 약 다섯 큰 술 정도 더하면 래퍼 Lil Baby의 얼굴이 짜잔! 하고 탄생할 것입니다. 연금술도 아니고 얼굴 가지고 장난해서 죄송합니다



"준열이 형, 나 불렀어?" (출처: hot97)



돈 많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취지의 트윗을 써 갈겨 [부모나 친구를 잘 두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을 다시금 환기하는데 크게 기여한 위인은 최순실 선생님의 딸, 정유라 선생님이었는데요,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 'Lil Baby릴 베이비’는 '동네 친구'와 '동네 형'을 잘 둔 관계로 조금은 뒤늦게, 하지만 꽤 수월하게 힙합 씬에 안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동네 친구는 다름 아닌 애틀랜타 출신의 랩스타 'Young Thug영떡'이고, 동네 형은 Quality Control Music 레이블의 두 수장인 애틀랜타 힙합 비즈니스맨  'Coach K'와 'Pee'입니다.


래퍼 Young Thug (이미지 출처: GQ)
Coach K and Pee (이미지 출처: Billboard)


인생사에는 분명 ‘특채'라는 무대가 엄연히 존재하지 않나 싶어요. 누군가는 예능인이 되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채 개그맨 시험 준비에 매달리며 청춘의 몇 년을 바치지만, 어떤 이는 지나가는 게스트로 예능 프로그램에 딱 한 번 출연했을 뿐인데 그 순간의 재미와 호기심을 폭발시켜 일반의 입에 오르내린 공로로 특채 예능인이 되지요. 누군가는 배우가 되기 위해 청춘의 몇 년을 오디션 현장에 바칩니다. 반면 어떤 이는 친척 언니가, 형부가, 친한 친구가, 이모가, 삼촌이 연예인이고 PD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연결고리 하나로 특채 배우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언 형, 나 불렀어? (이미지 출처: Vice)



Lil Baby라는 래퍼도 실은 이러한 ‘특채’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나쁜 짓을 일삼던 어린 시절부터 어울리던 주변인들이 전부 래퍼들이었고(녹음 스튜디오에서 놀기도 했다네요), ‘네 속에 랩스타로서의 포텐셜이 있다.’라며 스튜디오 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친구(Young Thug)와 ‘네가 랩을 안 하면 대체 누가 랩을 해? 네가 겪은 길거리의 이야기, 허슬러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트랩 래퍼가 될 자격이 너는 충분하단다.’라며 동네 선배(Coach K)가 옆에서 자꾸 불을 지펴대니 랩을 안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부럽다). 심지어 그는 래퍼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금방 가라앉기 딱 좋은 이러한 특채 포지션의 선입견을 깨부수고 그는 랩스타로서 당당히 성공합니다.

 


(이미지 출처: Uproxx)


천운의 기회를 잘 살려 그것을 자신의 성공적 인생 안으로 당당히 편입시키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일 겁니다. 역사를 거듭하며 줘도 못 먹는 사람이 늘 등장하기에 이 세상 속 특채 시장의 쪽문은 오늘도 닫히는 법이 없습니다. 저는 왜 그 쪽문이 안 보일까요?


네? 특채 오디션 현장이 어디라고요? (이미지 출처: lab.fm)


릴 베이비는 주거침입죄로 소년원에 잡혀 들어갔다 나온 이력이 있고요(지겹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자퇴를 했고요(지겹네요), 드러그 딜러로 활동하면서 대마 소지, 절도 혐의 등으로 약 2년 간 감방에서 살다 나옵니다(지겹다고요). 이전에 영국 태생의 애틀랜타 래퍼 21 Savage라는 래퍼를 설명하면서 이와 비슷한 흐름의 인생 시간표를 나열한 적이 있었는데, 방금 직전 문장을 쓰면서 데자뷰 현상을 느꼈네요. 기시감이라고도 하죠. 쉽게 말해 지겹다는 얘깁니다. 스눕피의 힙합 음악 추천 속 인물 설명의 디폴트 설정으로 소년원, 고등학교 중퇴, 드러그 딜러 등의 키워드를 박아둘까 봐요.


21 Savage & Lil Baby (출처: Lil Baby's Official Facebook)



감방에서 나온 이후, Lil Baby는 2017년 4월, 한국 나이로 24살에 첫 믹스테이프 <Perfect Timing>을 발표하면서 랩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그가 감방에 있는 동안 앞서 언급한 Quality Control Music의 두 수장이자 동네 형님들이 일종의 삼고초려를 한 모양입니다.  인마, 제발   해라.  인마, 거울  봐라.  얼굴이 랩스타야. 험악하게 생긴   트랩 킹인데,   하려고 하냐?’


이 정도면 영화의 한 장면 아닙니까? 감방 그리고 삼고초려.



릴 베이비의 첫 데뷔 믹스테이프 'Perfect Timing' (이미지 출처: HIPHOPDE)


 


Lil Baby는 결국 데뷔 당해인 2017년에 4장의 믹스테이프를 발매하고, 이어지는 2018년에도 1장의 정규 앨범과 2장의 믹스테이프를 쏟아내며 힙합 세계의 진정한 허슬러로서의 성실하고 모범적인 태도와 행동을 보여줬습니다(뜬금없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 힙합 씬의 대표 허슬러는 단연 'Jay Park박재범'이라고 할 수 있겠죠, 쉬지도 않고 앨범을 내고 후배들을 발굴하니까요.). 제 기억에도 해당 시기에 래퍼 Lil Baby가 제 인스타그램의 뉴스피드를 온통 도배했던 걸로 알아요. 얼굴이 사납고 도통 호감이 안 가서 차단하려다가 참았는데, 참길 잘했어요.


릴 베이비의 랩은 뭐랄까, 모기나 파리가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떠오르게 해요. 험악한 생김새와는 정반대이죠. 전반적으로 매가리가 없는 목소리인데, 마치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하고 나서 바로 마이크 앞에 서서 차오르는 숨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랩을 쏘는 것 같아요. 또는 흡사 두 콧구멍을 틀어막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해요. 게다가 자기 목소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자꾸 바로바로 먹어 치워 버리는 바람에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이어폰 바깥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질은 결과적으로 그의 유일무이한 음악적 매력을 만들어 내죠.



Feel like I'm different, I'm one of a kind



릴 베이비는 랩을 늦게 시작한 편인데요, 그의 절친한 동료 래퍼인 Gunna로부터 랩의 기본적인 속성을 착실히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동료이자 스승인 Gunna의 랩 스타일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참고로 래퍼 Gunna와 관련한 글도 작년에 브런치에 하나 포스팅한 걸로 기억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해주세요).



Lil baby & Gunna (이미지 출처: HotNewHiphop)

 


평소에 말하듯이 노래를 하고, 평소에 말하듯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죠. 사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전문가들이나 가능한 최종 기술인데 저는 Lil Baby의 랩이 지닌 매력을 여기에서 찾습니다. 영상 인터뷰를 보아도 릴 베이비는 말주변은 없지만 조금의 꾸밈없이 자기 이야기를 자기 목소리로 편하게 늘어놓습니다. 그는 따로 가사를 노트나 스마트폰 위에 쓰지 않는다고 해요. 당장 스튜디오 부스로 들어가서 프리스타일의 형태로 비트 위에다가 자기의 생각을 마구 뱉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하나의 곡을 완성한다고 합니다.

 



Me and money havin' sex, we should get married




편모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며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벌여야만 했던 거리 위의 (불법) 생활인에서 애틀랜타를 대표하는 트랩 랩스타가 된 Lil Baby, 그의 노래와 인터뷰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꾸밈없이 자기를 표현하는 성격,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이 그의 매력이라는 걸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노래 속에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죠.



Livin' life like stars, thankin' god every day we finally winning



인생의 극단을 오고 간 '인생 2회 차'답게 은근히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은근히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있는 특채 랩스타 Lil Baby의 노래 몇 곡을 추천하며 오늘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을 마쳐볼까 합니다.


저는 새로운 래퍼를 하나 알게 되면 그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나하나 다 찾아보면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배경을 쭉 확인하고 나서 본격적인 음악 감상에 돌입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의 멜로디와 가사가 마음에 착 달라붙질 않더라고요. 누군가는 참 한가한 놈이라며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겐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박살 내는 커다란 재미와 감동 중 하나입니다. 품이 은근히 많이 드는 작업인지라 요새는 매주 화요일마다 소개하진 못하고 있지만, 이 콘텐츠를 유심히 봐주시는 몇 분의 선생님들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추천의 기준은 '스눕피가 최근에 즐겨 듣는 아티스트'입니다. 오늘의 아티스트 릴 베이비도 마찬가지로 요 며칠 갑자기 꽂혀서 다시 새롭게 듣기 시작했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