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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21. 2020

누군가는 1세대 래퍼를 자주 그리워한다.

왜 이렇게 한국 사회는 레전드에 박하지?


쇼미더머니의 불구덩이 씬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래퍼 피타입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고기쌈을 싸며 나도 도끼의 길을 지나왔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  이렇게 한국 사회는 레전드에 박하지?”라고 덧붙였는데, 레전드에게 도움 준 게 하나 없는 박한 리스너는 죄송한 마음에 피타입 선생님의 띵곡 ‘힙합다운 힙합’을 재생했다. 중학교 2학년생의 몇 개월을 온통 휘감았던 그 곡, ‘힙합다운 힙합’.





당시의 나는 뭘 안다고 영어 가사를 오역해가며 우탱클랜이나 워렌지의 93, 94년도 앨범을 들었고, 드렁큰 타이거와 피타입을 들었다. 그게 2004년의 일이었고, 나는 질풍노도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렸다. 중학교 2학년생에게 ‘야동’의 버퍼링이 차오르길 기다리는 시간보다 ‘힙합’ 음악 감상의 시간이 더 소중했다면 믿으실까. 안 믿으면 말라지!



양심이 몸부림치는
내 안의 명령
그대 향해 열려있는
대안의 혁명

힙합다운 힙합과
비판다운 비판
새로운 기준이 되리
힙합다운 힙합

- 피타입 '힙합다운 힙합' -




2001년에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힙합’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딘 첫해였다. 특정 음악 장르에 입문하는 누구라도 그러하듯 형과 누나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걸로 기억한다. 겉멋 든 초등학교 5학년생, 나는 MF, KARL KANI, FUBU의 청바지와 박스 티셔츠를 입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녔다.



2003년 2월, 초등학교 졸업식의 현장, "마! 이게 힙합이다!"



가끔 누나의 NAUTICA 재킷을 몰래 걸치거나 POLO의 스웻셔츠를 훔쳐 입고 인천 짠 놈의 스웨그를 최대치로 부리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W Magazine)


인천의 길바닥이란 길바닥은 청바지로 죄다 쓸고 집에 돌아온 날, 바지 밑단은 걸레가 되어있기 일쑤였고 눈치 빠른 나는 어머니께 그대로 등짝을 내어줬다. 찰싹!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



찰싹!



2003년 2월에 발간된 초판 1쇄 인천 OO초등학교 졸업 앨범 속에서 나는 MF의 빨간 박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아무튼 겉멋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나와 함께 매 주말마다 인천 신세계 백화점에 가주셨다. 나는 초등학생이라서 운전을 못했고 돈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키가 조금 더 커서 또는 살이 조금 더 쪄서 신상 힙합 청바지를 입을 수 있을 거라 나는 믿었던 것이다. 새삼 아버지와 어머니께 죄송하다.


부가킹즈의 <Some of Dis>, 셔니슬로우의 <Moment of Truth>, 45RPM의 <보릿고개>, 주석의 <Lastman Standing>, 3534 윤희중의 <My Life>, 양현석의 <악마의 연기>, 디베이스의 <모든 것을 너에게> 등은 당시 내 인생의 주제곡이었다. 나는 야인시대를 보느니 차라리 힙합 음악을 더 듣기로 결심했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정열과 낭만이었다.


전설의 주석 1집, 비츠 포 다 스트릿츠!



Hiphop, 단지 어렵다던 음악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던 가락
고집 세워 나 발악도 해봤으나
결과물은 위로로 둔갑한 타인의 손가락

내 옷자락 잡아준 이들과
맞이했던 두 번째 하락

이제 우린 Hiphop 안에
타는 불길 위에 배제된 시장 안에
뼈를 묻고서 모두 함께 동고동락

-3534 윤희중 좌-



뭐 나뿐이랴. 나는 개뿔이다. 나는 만으로 서른에 불과하다. 내 윗세대 인생 선배님들의 CD 플레이어 속에서 얼마나 많은 1세대 래퍼 선생님들의 CD가 수없이 돌고 돌았을지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힙합 음악은 분명 혁명적인 시대정신을 대변했다. 뻔하지 않은 삶을 지향하는 ‘가오’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신의 공표 말이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할 때의 그 가오 말이다. 요즘 힙합은 돈도 벌고 음주운전도 하는 둥 가오마저도 확실히 잡지만 말이다.

지금은 미국 힙합이나 한국 힙합이나 가사가 좀 거시기해서 안타깝지만, 십수 년 전의 힙합 가사는 정말이지 거시기해서 실로 거시기했다. 학교의 문학 수업이 뭐 따로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역설이니 과장이니 은유니 해학이니 다 힙합 안에 들어있었다.



언제나 당신의 열정이 곧 당신의 결정.

Sean2Slow



제목에서 밝혔듯 누군가는 1세대 래퍼를 자주 그리워한다. 그 누군가의 현실이 조금 바빠 그들을 박하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누군가는 1세대 레전드 래퍼의 음악을 자주 찾아 듣는다. 추억이 깃든 아련한 기억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도 없으니까. 2020년 1월에도 누군가의 출퇴근길 속 에어팟 또는 갤럭시 버즈 속에서는 1세대 래퍼들의 구수한 랩 한 보따리가 풀어헤쳐진다. 지금이니까 구수하다고 표현하는 거지 옛날에는 상큼하고 시큼하고 달콤하며 짜릿했다는 것이 힙합학-계의 정설이고 힙합동호인-계의 야설이다.


"단 한 장면도 버릴 게 없었던 원썬 클립"


아무튼 나는 래퍼는 아니지만, 래퍼들의 랩을 먹으며 잘 자랐다. 현재 내 키가 179cm인데 조금만 더 성실히 그들의 음악을 챙겨 들었더라면 '루저'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감정이 든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미국 힙합 음악깨나 듣는다고 이렇게 까불 수나 있었을까, 힙합 문화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아무 소리나 막 늘어놓으며 팔짱이나 낄 수 있었을까.


아무튼 감사합니다. 뻔한 형용이 아니라 진짜 '인생' 취미를 만들어주셔서요. 아마 같은 시대를 함께하며 힙합 음악을 즐긴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넘겨짚어 본다.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한국 힙합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즘 한국 힙합은 잘 안 듣긴 합니다만.


-한국 고전 힙합을 듣다가 행복에 겨워 기어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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