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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05. 2020

힙합 매거진에 소홀했습니다.

간만에 소개합니다. '돈 톨리버' 그리고 '파티넥스트도어'입니다.


너무 소홀했습니다.

한동안 ‘스눕피의 힙합 이야기’ 매거진에 소홀했습니다. 마지막 글을 쓰고 한 달도 더 지났어요. 작년 여름, 편한 마음으로 미국 힙합 음악 두어 곡씩 소개해보자는 단순한 목적으로 시작했는데('20년 차 힙찔이'라는 기정사실에 근거한 포지션을 잡고 매주 화요일마다 노래를 추천하는 형식이었죠),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참 이상한 게 글을 쓸 때마다 어깨에 힘을 주게 만들어서 최초의 목적에 부합하는 글쓰기를 진행하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종종 걸리곤 하는 ‘서울 크림 파스타 맛집 BEST 5’나 ‘인천 봄 나들이 데이트 코스 BEST 7’과 같은 콘텐츠를 나열하듯이 앨범 커버 한 장 삭 올리고 글 몇 줄 틱 써서 툭 하고 발행하면 그만일텐데, 본래 설명충적인 기질을 타고나서 그런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따라서 오늘 이 시간에는 최초의 목적을 상기하며 힘도 좀 빼고 편한 마음으로 노래 추천을 한번 해볼 생각입니다.


그럼 오늘 추천하고 싶은 노래 두 곡, 바로 소개할게요. 오늘의 추천곡은 미국 휴스턴 출신의 래퍼 ‘Don Toliver돈 톨리버’의 ‘Wasted’ 그리고 캐나다 출신의 래퍼 ‘PARTYNEXTDOOR파티넥스트도어’의 ‘SPLIT DECISION’입니다. 두 노래 모두 발매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신보의 수록곡입니다.



래퍼 Don Toliver(좌)와 PARTYNEXTDOOR(우) / 이미지 출처: Texas Montly(좌), Stereogum(우)

 


이 두 래퍼는 공통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요, 그것은 곧 이 두 래퍼가 현재 힙합 씬을 대표하는 두 대물, 아니 거물인 Travis Scott트래비스 스캇과 Drake드레이크가 각기 직접 발탁한 후배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힙합 스쿨 후학 양성의 개념이랄까요. 더욱이 이 사이좋은 선후배들은 동향입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지연이랄까요. 아마도 휴스턴 연합, 토론토 연합 정도가 될 겁니다. 돈 톨리버는 트래비스 스캇이 설립한 Cactus Jack Records라는 소속사에, 파티넥스트도어는 드레이크가 설립한 OVO Sound라는 소속사에 각각 들어가 앉아있습니다. 특히, 파티넥스트도어의 경우에는 OVO Sound의 첫 번째 계약 가수이기도 합니다.


래퍼 P.N.D와 그의 스승 Drake,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랍니다.


래퍼 Don Toliver와 그의 스승 Travis Scott, 제발 고개를 드세요.




정말이지 간만에 추천합니다.


오늘의 추천곡 ‘Wasted’와 ‘SPLIT DECISION’, 사실 다른 가수의 노래로 착각하기 딱 좋은 곡입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그들의 두 스승님이요.

 


가사에서 누가 보이는데?
목소리에서 누가 들리는데?
비트에서 누가 겹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으로 밥 벌어먹고사는 아티스트들에게 이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지식을 나누고 배우고 공유하는 인간으로부터 남다른 ‘오리지낼러티’를 바라는 일은 애초에 당치도 않은 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고유성’을 운운하며 아티스트의 자존심을 긁는 리스너는 되지 말자구요.



저는 드레이크 형이랑
터놓고 음악을 공유해요.
특히 우리 형이
프로젝트에 돌입했을 때요.

- PARTYNEXTDOOR 뉴욕타임스 인터뷰(2016.08) 중에서 -



래퍼 돈 톨리버와 파티넥스트도어는 알앤비 음악으로부터 대단히 많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인데요, 그래서인지 그들은 노래하듯이 랩하고, 랩하듯이 노래합니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이제 힙합 씬의 평범한 특징이 되었죠.

돈 톨리버는 Bobby Womack바비 워맥, Teddy Pendergrass테디 펜더그래스, Stevie Wonder스티비 원더 등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파티넥스트도어는 애초에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알앤비 트랙을 작곡하며 그의 음악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기본적으로 알앤비의 감성을 탑재한 인물들이라서 돈 톨리버는 생 목소리로 사람을 휘어잡고, 파티넥스트도어는 천부적인 노래 무드 설정으로 사람을 휘어잡습니다. 들어보시면 아실 겁니다(들어보면 당연히 알겠지). 돈 톨리버는 끝내주게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걸 무기로 '자기 개성'을 확실하게 각인합니다. 물론 다 된 짜파게티에 올리브유를 뿌리듯이 그의 목소리에 오토튠을 입혀서 그러한 강점이 더 두드러지긴 합니다만, 본판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본판이 부족하면 그것이 더 좋게 변할 건덕지도 없다는 게 제 짧은 생각입니다. 돈 톨리버를 대중에 널리 알린 곡인 'CAN'T SAY'나 'No Idea' 같은 곡에서 터져 나오는 그 짱짱한 목소리를 한번 듣고 나면 그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룹 10CM의 권정열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또는 오토튠의 장인, 래퍼 T-Pain처럼 사람의 신경을 정신없이 막 긁는 겁니다. 더욱이 돈 톨리버는 최근 미국 힙합 학교의 대선배 '에미넴'의 간택에 걸려들어 에미넴의 11번째 정규앨범 18번 트랙 'No Regrets'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에미넴이 선택한 남자, 돈 톨리버, 일단 축하합니다.


한편 '파티넥스트도어'의 앨범은 그의 스승 드레이크와 OVO SOUND 사단의 음악이 대체적으로 그러하듯 지독하게 감성적입니다. 또 특유의 음울함이 트랙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마치 다른 세상과 시간대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사실 파티넥스트도어는 래퍼이기 이전에 대단히 실력 있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한데요, Rihanna리아나의 신나는 메가 히트곡 <Work> 그리고 Drake드레이크의 감각적인 랩송 <Preach> 또한 모두 그의 손 끝에서 탄생한 노래입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오늘의 추천곡'입니다.


먼저 Don Toliver의 정규 데뷔 앨범 <Heaven Or Hell>의 5번 트랙 'Wasted'는 편하게 듣기 좋은 부드러운 멜로디의 랩송입니다. 이 곡은 여름 드라이브 송으로 제격일듯합니다만, 날 좋은 4월, 공적 마스크 속에 숨어서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며 듣기에도 괜찮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들썩들썩.



Don Toliver <Heaven Or Hell>



이 곡은 노래 이곳저곳에 그의 스승 트래비스 스캇의 지문이 묻어있는데요, 노래 속에 트래비스 스캇의 시그니처 샤우팅인 "It's Lit!"이나 "Ya" 정도의 추임새만 더해지면 과연 누구 노랜지 분간이 잘 안 될 겁니다(약간의 과장을 허용해주세요).

올드스쿨 힙합의 특정 키워드를 생각나게 하는 인상적인 표현이 이 곡의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여 개인적으로는 더욱더 흥미롭게 들었어요. 예컨대 최초의 힙합곡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The Sugarhill Gang슈가힐갱의 노래 'Rapper's Delight'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Smoker's Delight'라는 표현이라든가, Wu-Tang Clan우탱클랜의 멤버 Ol' Dirty Bastard올더티배스터드의 시그니처 라인인 "Shimmy Shimmy Ya"를 떠오르게 하는 'I had to do a shimmy shimmy out it'과 같은 표현 말이죠. 그나저나 설명이 참 잡스럽네요. 이것저것 다 떠나서 'Wasted'라는 곡, 정말 좋은 기운이 전해지는 씩씩하고 멜로딕한 랩송이니 한번 들어봐 주세요. 강력히 추천합니다.


다음으로 PARTYNEXTDOOR의 'SPLIT DECISION'입니다. 이 곡은 약 3년 만에 발표한 그의 네 번째 정규 앨범 <PARTYMOBILE>의 4번째 트랙인데요, 앞서 추천해드린 돈 톨리버의 곡과는 전반적인 무드가 정반대에 놓여있습니다.



PARTYNEXTDOOR <PARTYMOBILE>



노래의 시작부터 끝까지 음침하고 우울하며 몽환적인 비트가 흐르고, 바람을 피운 남자 주인공이 사과를 하기 위해 그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다신 그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믿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거나, 술을 한 잔 털어 넣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앞서 파티넥스트도어를 소개하며 제가 '천부적인 무드 설정 능력'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그는 사람의 감정을 묘하게 이리저리 끌어당기며 공간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몰래 지쳐 잠이 들었는데, 퍼뜩 일어나 보니 귓속에선 지치지 않고 어떤 가수가 이야기를 조잘거리고 있고 그 와중에 그 가수의 그 음악이 꽤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여러분이 파티넥스트도어의 노래와 만난다면 여러분은 분명 그에게 완전히 푹 빠지게 될 겁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분명한 느낌이 있는데, 제가 천호식품 회장님은 아니지만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죽겠네요. 아무튼 옆집파티의  'SPLIT DECISION' 한번 꼭 들어보세요. 노래 정말 괜찮습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노래 추천을 마칠게요.

앞으로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연히라도 [스눕피의 브런치]에 발자국을 남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곁다리 추천곡

PARTYNEXTDOOR
1. LOYAL(Feat. Drake)
2. THE NEWS
3. Come And See Me(Feat.Drake)
4. Right Now
5. Break From Toronto

Don Toliver
1. Backend
2. After Party
3. Cardigan
4. No Idea
5. Video Girl



[번외]

래퍼란 자기 이야기를 '찐'하게 쌓는 사람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읽은 구본형 박사님 책의 한 대목인데, 문장이 좋아 메모장에 남겨두었다가 뜬금없이 꺼내봅니다. 저는 위 메시지의 측면에서 ‘래퍼’들이 부러워요. 그들은 때로 ‘가짜’를 연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진짜’ 내 이야기를 좋은 멜로디 속에 집어넣어 '자기'를 거듭 증명하고 자기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가니까요. '자기 서사'가 확실한 것이죠.

저는 사람들이 가끔 손가락질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래퍼들의 자신감 넘치는 스웨그의 원인을 여기에서 찾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 흔적을 남기며 개인의 역사를 ‘앨범’ 단위로 증명합니다. 또는 ‘싱글’ 단위로요.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밀착형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마치 자기 인생처럼 몰두합니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래퍼 쌈디가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라고 부르짖을 때, 그의 팬들은 마치 그들의 삼촌 이름도 정진철이고 직업도 패션 디자이너인 것처럼 목놓아 그의 벌스를 따라 부릅니다(쌈디의 팬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일인데요, 저의 삼촌 이름은 김원식이고 직업은 은행원이었습니다). 이토록 근거가 충분한 자신에 대한 떳떳함은 적어도 허공으로 흩어지는 삽질이 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그들이 도저히 평범할 수 없는 이유의 큰 부분이자 하늘을 찌를듯 솟구치는 자신감의 원천이 아닐까 싶어요.




[프런트 이미지 출처: Artist Publishing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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