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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y 12. 2020

제이지에게 영감을 준 랩 못 하는 래퍼

요상하게 중얼거리는 모델 래퍼, 플레이보이카티


희망을 주는 사람들(희주사)

글을 못 쓰는 작가나 야구를 못하는 야구 선수처럼 형용모순의 매력을 지닌 사람은 희소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법인데, 그들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에 언제나 환영할 만하다.


래퍼 Playboi Carti플레이보이카티는 랩을 못하는 래퍼의 대표 인물이다. 지금 막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인물로는 래퍼 Lil Yachty나 Souljaboy 등이 있는데, 그들은 래퍼 지망생들에게 헛된 희망을 안겨준 공로 하나만으로도 응당 지금 그 자리에 올라 멋진 이태리제 자동차와 반짝이는 스위스산 시계를 찰만한 것이다.





Playboi Carti플레이보이카티

오랜만에 돌아온 스눕피의 힙합 이야기(구 화요 힙합 음악 추천), 오늘은 랩 못 하는 잘생기고 길쭉한 모델 래퍼 ‘플레이보이카티’의 이야기다.


플레이보이카티는 1996년 9월 13일생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탄생일이 미국 힙합의 레전설 ‘투팍 샤커’가 총기 사고로 사망한 날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는 ‘플레이보이카티’의 래퍼로서의 매력을 분명 배가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부족한 랩 실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AceShowBiz.com)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나고 자란 '플레이보이카티'는 일찍이 ‘사운드클라우드 랩 씬’에서 그야말로 ‘스타일리시’한 랩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후 숱한 아류작들을 탄생시켰는데 ‘Rap Nerd’라는 그의 별칭은 그의 음악적 스타일을 대강 짐작케 한다.


공식 믹스테이프(2017)와 정규 앨범(2018)을 발매하기 전, 그의 커리어 초창기 노래를 들어보면 아무튼 기묘한 기운이 감돈다. 그는 특정 라인을 지겹도록 반복한다거나(Broke Boi, What),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게임기를 처음 부팅할 때 나오는 효과음과 총 게임의 자동 격발 소리를 섞어 만든 비트 위에서 어딘가 모자란 친구처럼 랩을 하기도 한다(YUNGXANHO). 잘 알려진 그의 라이브 공연 영상 몇 개를 살펴보면 여러분께서도 잘 느끼실 수 있을 텐데, 그는 어린아이가 생떼를 쓰듯이 소리를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사람들도 함께 미쳐서 덩달아 날뛴다. 아무튼 그는 '애'처럼 랩 하는 래퍼인 것인데, 애 같은 가사와 애 같은 랩에 또래들이 애처럼 열광한다는 것, 그리고 그의 랩을 본보기로 삼는 애 같은 후임자들이 넘쳐난다는 건 밀레니얼 세대가(전부는 아니다) 랩으로부터 특별히 알맹이나 교훈을 찾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당장의 기분을 고양해주는 특별한 사운드와 감각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를 좇는 것일 뿐.


그는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랩을 한다. ‘이미지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각종 시끄러운 페스티벌과 호흡 빠른 유튜브 영상, 인상적인 인스타그램 사진 등에 익숙한 현대인들이라면 '이미지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miixtapechiik)

 


자기만의 독특한 랩으로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컬트적 인기의 팬덤을 형성한 '플레이보이카티'는 2017년에 첫 믹스테이프 <Playboi Carti>(2017)를 발표하고, 이어 2018년에는 정규 1집 앨범 <Die Lit>(2018)을 발표한다.


Playboi Carti(2017) & Die Lit(2018)


아! 첫 정규 앨범의 제목을 한번 보라. Die Lit! 온몸에 불을 지르고 이 순간을 화려하게 불태우다가 스러지는 예술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전문용어로는 ‘중2병’이라고도 부른다. 한 힙합 방송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어가 왜 앨범 이름을 ‘Die Lit’이라고 지었느냐고 물으니 별 시답잖은 대답을 한다. 그냥 닥치고 ‘다이 릿’인 것이다.





나는 멈블 래퍼다.

'플레이보이카티'는 대표적인 멈블 래퍼다. Mumble Rap, 말 그대로 ‘중얼거리듯이’ 랩을 한다는 것이다. 평소 중얼거리듯 말하는 사람이 주변인들에게 특별히 좋은 인상을 줄 하등의 이유가 없듯이 멈블 랩도 한때 비판의 중심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뉴욕타임스)



모지리 같은 가사와 머저리 같은 랩핑은 유려하고 철학적인 가사와 화려한 농구 드리블처럼 부드럽고 기술적인 랩핑에 익숙했던 진성 올드스쿨 힙합 팬들의 억장을 무너뜨렸다(래퍼 플레이보이카티의 곡을 진지하게 듣기 위해서는 비상 소화제나 지사제처럼 래퍼 켄드릭 라마의 앨범을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준비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멈블 랩은 이제 엄연히 힙합 장르의 굵직한 갈래가 되었고 그것을 거부하던 이들을 알 수 없는 끌어당김으로 굴복하게 만들었다. 누구라도 밀레니얼 세대의 핫한 트렌드를 한없이 부정하거나 외면하면서 살 순 있겠지만, 그렇게 외딴섬으로 떠밀리며 혀를 끌끌 차는 것보다는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패션을 함께 즐기고 공부하는 편이 젊음을 유지하는 측면에서는 여러모로 좋지 않나 싶다. '플레이보이카티'의 멈블 랩을 즐겨 듣는 50대 힙합 팬이 있다면, 정말 쿨하고 멋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더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전부 널 따를 거야!

네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운 걸 계속하라고!

너 자신이 되란 말이야!

-철학좌 플레이보이카티-






제이지의 인증 도장

언젠가 미국 힙합 씬에서 가장 돈이 많은 아저씨, 래퍼 Jay-Z제이지는 그의 13번째 정규 앨범 <4:44>(2017)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영감을 준 노래 리스트를 밝혔다. 그곳에는 마빈 게이, 밥 말리, 마이클 잭슨, 부기 다운 프로덕션 등의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노래들이 쭉 포진되어 있었는데, 정말이지 뜬금없는 노래가 한곡 미친 척하고 들어 있었다. 쉽사리 짐작하셨겠지만, '플레이보이카티’의 노래 'Magnolia’였다. 왜죠?



대부호의 핑크 수트 그리고 그의 13번째 정규 앨범 <4:44>(2017)

 


미국 힙합 씬의 대부호 제이지의 마음을 뒤흔든 멈블 래퍼 '플레이보이카티', 힙합 씬의 최고 존엄이자 최종 보스인 제이지의 인증 도장(참 잘했어요)을 받은 '플레이보이카티'는 곧이어 ‘Jimmy Kimmel Live지미 키멜 라이브’ 무대에 서게 된다. 왜죠?





그는 무대 위에서 한쪽 팔에만 리바이스 청자켓을 걸쳤다. 그리고는 흑인 모델의 포스를 풍기며 정말로 랩을 ‘못’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여지없이 박살 내주었다. '플레이보이카티'의 뒤에서 바람을 잡아주던 디제이를 무대의 주인공으로 착각할 뻔했다나? 하지만 그는 그의 잘생긴 얼굴과 새하얀 이빨, 잘 어울리는 연청 스키니진과 닥터마틴 부츠로 자기 존재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다른 의미에서의 완벽한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었달까? 아, 그는 어쩌면 전업 모델을 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I bought my mom
a crib off of mumble rap

중얼거리는 랩으로
울 엄마 집 사줬어!

-효자 플레이보이카티-






패션왕 플레이보이카티

'플레이보이카티'를 언급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패션'인데, 그는 이전 포스트를 통해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는 그의 프레너미 래퍼 '릴 우지 버트'와 쌍벽을 이루는 패션 간지를 뽐낸다. 둘 사이의 큰 차이가 하나 있다면 한 놈(릴 우지 버트)은 키가 평균 이하라는 것이고, 다른 한 놈(플레이보이카티)은 키가 평균 이상이라는 것이다.





십 대 후반, 고향 애틀랜타에서 꿈을 좇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온 '플레이보이카티'는 스파 브랜드 H&M에서 일을 하면서 부지런히 랩을 했고, 자신의 노래를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한다. 그리고 서서히 열광적인 팬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나마 스파 래퍼SPA rapper였던 셈인데(아마 그 시절 그는 2주 간격으로 쏟아지는 패션 트렌드의 급변을 온몸으로 느끼며 트렌디한 힙합 음악을 새롭게 연구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부터도 그는 빈티지 스토어를 뒤지고 다니며 남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먼저 선보이기 위해 악을 쓴 모양이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컬러풀한 스키니진을 입고 다녔다는 걸 자랑이라고 인터뷰에서 떠드는 걸 보니 패션부심이 보통은 아닌 걸로 사료된다. 그는 카니예 웨스트의 YEEZY, 드레이크의 OVO, 버질 아블로의 루이뷔통, 오프화이트 등의 룩북에 참여하거나 패션쇼 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 평소 그의 스키니한 패션 스타일을 구경하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빈티지 브랜드를 절묘하게 섞어가며 잘생긴 얼굴 아래, 마른 몸 이곳저곳에 구겨 넣는데, '모델'이 따로 없다.



 


개인적으로는 랩을 못하는 래퍼가 되느니 옷이 잘 어울리는 모델이 되는 편이 그에게 더 정직한 삶의 방식이 아닌가 싶은 괜한 걱정이 드는데, 결국 두 가지 미션을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한 그에게 인생의 그 어떠한 미션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잔챙이 같은 내가 할 말은 아니기에 입을 다물기로 한다.




나는 플레이보이다.

그의 음악적 영감의 대상, 그 첫 번째는 '여성'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이름이 '플레이보이'겠는가. 아무튼 그는 어려서부터 여성이 좋아 죽겠던 모양인데, 그의 현재 여자 친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여성 래퍼 Iggy Azelea이기 아잘리아이다.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 잘 어울리네?




그녀의 탄탄한 보이스와 탄력 있는 몸매 옆에 '플레이보이카티'의 가냘픈 목소리와 마른 몸매를 나란히 두고 있노라면 '플레이보이카티'가 이기 아잘리아에게 잡아 먹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아무튼 나는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TMI이지만, 래퍼 이기 아잘리아는 한때 미국의 래퍼 A$AP Rocky에이셉 라키와 사귄 적이 있는데, 현재의 '플레이보이카티'를 만들어 준 인생의 스승 중 한 명이 바로 래퍼 에이셉 라키이다. 아무튼 남녀관계란 좋게 얽히는 법이 없나 보다.




곧 정규 2집이 발매된답니다.

이제 곧 '플레이보이카티'의 두 번째 정규 앨범 <Whole Lotta Red>가 발매될 모양이다. 이미 앨범에 수록될 몇 곡의 노래들이 유출되어 떠돌아다니는데, 그것들이 실제로 앨범에 실리게 될지 아닐지는 대한민국에서 쭈그리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뭐 대수이겠는가. 나는 당장 내일 점심에 뭘 먹어야 할지가 더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가끔 미국의 어떤 매거진을 읽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래퍼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되게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나열하거나 그들의 트위터 메시지를 토대로 미래를 멋대로 예측하며 소란을 떠는 기사들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왠지 그런 기사들에 더 이끌린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구체적인 정보에 집착하는 삶, 몰라도 되는 이야기에 안달을 떠는 삶을 살도록 DNA가 설계된 것 같다.


그런데 힙합 음악의 가사만큼 구체적이고 자잘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장르의 노래도 드물지 않나 싶다. 래퍼가 입은 패션 브랜드, 래퍼가 새롭게 갈아 끼운 자동차 휠의 제조사, 래퍼의 가장 친한 친구의 별명, 래퍼가 사용하는 작곡 프로그램, 래퍼의 어머니가 래퍼에게 어린 시절에 들려준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 알아서 어디에 쓸래?

아무튼 내일의 점심 메뉴가 제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플레이보이카티'의 정규 2집 앨범이 곧 발매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그곳에도 조금은 정신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께 또 새로운 이야기도 들려드리죠.


스눕피의 힙합 이야기,

분발하여 곧 찾아뵙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꾸벅~



[스눕피의 추천곡]

플레이보이카티

1. @ MEH
2. Location
3. Magnolia
4. No.9
5. Poke It Out (Ft. Nicki Minaj)
6. FlatBed Freestyle
7. No Time
8. Choopa Won't Miss (Ft. Young Thug)
9. wokeuplikethis* (Ft. Lil Uzi Vert)
10. Drake 'Pain 1993' (Ft. Playboi C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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