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실을 확인하게 하는 새로운 습관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니 무언가를 막 쏟아내고 싶은 욕구가 너무 심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대변이 급하게 마려운 나머지 거꾸로 매달린 반쪽짜리 페트병 속에 넉넉히 박힌 검은 비닐봉지를 두어 장 잽싸게 뜯어 손에 꽉 쥐고 당장이라도 그것을 배출할 태세를 갖추는 창백한 탑승객처럼 말이다. 그것이 2018년 10월의 일이었고,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의 전부였다. 그리고 약 1년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2009년부터 일기장이며 다이어리며 노트북이며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나 혼자만 만족하는 쓰레기 같은 글들을 마구 싸질러온 바 있지만, 그것을 공개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아무리 소소한 글이라도 ‘공개 블로그’라는 낙장불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성격 상 사람들의 평가에 위축될 것이 빤해 보였고, 학창 시절에 ‘기왕이면 닥치고 조용히 살자’라며 스스로 쓸데없는 다짐을 한 이상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뭐 대단한 약속이라고).
1분이면 개인 페이지를 개설하고 5분이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해 포스팅할 수 있는 블로그가 뭐라고 무려 다짐까지 했는지. 돌아보면 웃기고 병신 같은 일이다.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사람들은 흔히
작가가 되기도 한다네.
저는 그런 재능이 없습니다.
그럼 뭘 하고 싶은가?
그냥 빈둥거리고 싶습니다.
서머싯 몸 <면도날>
미국의 힙합 음악을 사랑하지만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이나 머스타드처럼 노래를 만들 줄 아는 것도 아니고,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지만 옷을 만들 능력도 없고 닥치는 대로 살 돈도 가오도 없으니 온라인 매거진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루 종일 뒤적거리다가 상상 속에서나 한 열댓 벌 씩 구매하며 자위할 뿐이고, 대문호들의 소설 속 문장 하나하나를 소중히 대하며 한 장 한 장 아껴 읽고 감동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을 쓸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답이야 뻔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감상을 구구절절 읊거나 친절하게 설명하는 일 그리고 때때로 에세이나 성실히 써보는 일 밖에 더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 정도의 목적의식을 가지고(나름의 운영 방침을 다잡고) 브런치 운영을 시작했다.
때로 타인들의 문장 속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은 꼭 무엇을 훔치다가 들킨 어린아이의 심정이다.
김현 <행복한 책 읽기>
브런치를 운영하고 약 1년이 지나자 마치 평일 오전 11시의 마을버스나 일요일 오후 10시 40분의 스타벅스처럼 늘 조용하기만 하던 나의 브런치에 방문객이 늘기 시작했고, 몇 개 플랫폼의 콘텐츠 담당자님들께서 기고와 콘텐츠 제휴 요청을 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포털 사이트의 메인이나 페이스북 페이지 등지에 내 글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를 빳빳이 들게 되었고, 이름도 모르는 어떤 선생님들의 개인 블로그나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 위에 내 글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인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 눈으로 확인할 때면 김현 평론가님의 일기 속 문장처럼 '꼭 무언가를 훔치다가 들킨 어린아이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블로그를 열과 성을 다해 운영하는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의 구실을 의식하는 때라야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생 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나는 브런치(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나의 '구실'을 조금씩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쓸데없이 고민이 많던 대학 시절의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도대체 무얼까를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내게 '좋아하는 것'이 뚜렷해서 좋겠다며 부러워했고 나 또한 그것을 은근한 긍지로 삼으며 살았지만, 그러한 나의 골몰이 결국 세상에 그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슨 소용이냐며 뒤돌아서 슬퍼하기도 했던 것이다. 갑자기 아픈 기억이 하나 떠오르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라가 본 한 대기업의 최종 면접장에서 어떤 임원 한 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던 내게 "내가 걱정되는 것은 당신이 소위 말해 마니악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팩트로 나의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 내주었다.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 신이 나서 줄줄 늘어놓는 순진한 멍청이를 좋아할 대기업이 이 세상에 도대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참.
아무튼 나는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구체적인 이야기와 그것에 대한 나의 소소한 생각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공유'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는 '언제 적' 블로그에 '하수'처럼 흥분하느냐며 내 뒤통수에 꿀밤 몇 대를 갈기고 싶으실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뒷북치는 일에 능한 나로서는 오늘의 이러한 깨달음이 가장 빠른 깨달음임을 고백한다.
이런저런 습관, 관습, 법칙 등 자네가 그 필요성도 인정하지 못하고 벗어나버린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삶에 있어 하나의 틀이 되는 거야.
생 텍쥐페리 <남방 우편기>
솔직히 말하면 요즘처럼 주말이 기다려진 적이 없다. 예전의 내게 주말이란 '힙합 음악'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 또는 '소설'을 여유롭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시간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행동이 더해졌다. 그것들에 관해 조용히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는 시간. 생 텍쥐페리 선생님의 <남방 우편기> 속의 문장을 빌려와 표현하자면 서른이 넘어 새롭게 만든 블로그 글쓰기라는 나의 습관이 내 삶에 있어서 하나의 틀이 된 것이다.
몇 년쯤 공부를 하며 보낸다고 해서 그것이 조국에 대한 배신이 되는 일일까?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게도 미국에 기여할 만한 무언가가 생길지도 몰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 말이야.
서머싯 몸 <면도날>
몇 천명 나아가 만 명 이상의 구독자 수를 확보한 브런치 선생님들에 비하면 내 글의 영향력이란 기실 쥐뿔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어떤 글 속에서 밝혔듯이 나는 내 취향과 취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마구 늘어놓는 행동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이상한 종류의 사람이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에 엉뚱하게도 희열을 느낀다. 서머싯 몸 선생님의 소설 속 문장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몇 년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월을 보낸다고 해서 그것이 조국에 대한 배신도 아닐 테고,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게도 대한민국에 기여할 만한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 무언가 말이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블로그를 조금 더 빨리 시작할 걸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