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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29. 2020

천천히 허비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힙합을 듣고 소설도 읽다가 이야깃거리를 던지며


인생은 짧은 것이기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내가 활동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활동적이라는 것도, 너무나 일에 골몰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고 보면, 그 역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알베르 카뮈 <안과 겉> 중에서-




자기 자신을 코너로 몰아넣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라며 청춘을 불사르는 어떤 또래들의 용기는 언제나 멋있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목에 핏대를 세우거나 눈에 핏발을 세우는 일은 내가 가장 못하는 일 중 하나이고 생리를 거스르는 일처럼 여겨진다. 3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 와서 저렇게 살아갈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예컨대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의 최신 힙합 음악을 하나하나 천천히 챙겨 듣고 가사를 해석하는 일만 해도 내 여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 말이다. 내게는 진지하게 들어야 할 힙합 음악, 편안하게 읽어야 할 소설, 기분 좋게 감상해야 할 패션 브랜드가 한 트럭이고, 그것들을 내 식대로 소화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기왕이면 천천히, 천천히 공들여가며 그것들을 음미하고 내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다.


중등학교 시절에는 쉬는 시간마다 교실 창문에 기대어 바깥을 멍하니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곤 했는데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고독 좀 씹지 말라고 잔소리하였다. 지들이 마치 아이유나 임슬옹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 주말이 되면 침대에 드러누워 온종일 힙합 음악을 듣거나 조용히 소설을 읽곤 했는데, 아빠는 내게 '남자답게 활동적으로' 싸돌아다니라고 잔소리하였다. 하지만 나의 DNA를 무시하고 아빠의 기대에 순응하기엔 어디서 보고 주워들은 게 너무 많았다.



Drive slow, homie
Drive slow, homie
You never know, homie, might meet some hoes, homie
You need to pump your brakes and drive slow, homie

-Kanye West <Drive Slow> 중에서-




천천히, 천천히 공을 들여가며 읽고 듣고 내뱉는 삶이 나는 좋다. 내 시간을 죽자고 들인 만큼 누군가의 시간을 단축시켜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예컨대 번역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친절처럼 말이다. 미국 힙합 음악에도 인문학적 통찰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자꾸 반복하여 떠들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에는 나 자신이 거기서 얻는 흥미보다도 알리사가 즐겨할 재미를 먼저 생각하여 그녀에게 도움이 되도록 여러 표시를 해두었다.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중에서-




온통 방법론과 성공담으로 뒤덮인 이 팍팍한 세상에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자꾸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치 내가 윤활유라도 되는 것처럼.


상기된 얼굴로 내 잇속만 챙기느라 혈안이 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마치 내가 법정스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에 작은 바람이나마 부지런히 만들어내고 싶다. 마치 내가 선풍기의 미풍이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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