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Feb 21. 2020

못난 글씨로 예술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JIM JOE

뉴욕을 싸돌아다니며 낙서하는 비밀의 아티스트, 짐 조.


꼼 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가 설계한 편집샵 ‘도버 스트릿 마켓’이 2020년 쥐띠의 해를 맞이하여 재미있는 티셔츠를 하나 공개했습니다. 이름하여 ‘Cactus Plant Flea Market* Jim Joe Fear of the Rat 2020’, 티셔츠의 이름이 길기도 기네요.


(이미지 출처: shop.doverstreetmarket.com)


흰 티셔츠의 전면부 가운데에 박힌 ‘FEAR OF THE RAT 2020’이라는 문구, 마치 이제 막 데스크톱 컴퓨터에 눈을 뜬 어린 소년이 윈도우 98의 그림판 위에 볼 마우스를 이용해 되는대로 대충 글자를 끄적인듯한 모양인데요, 엉터리 같은 글씨체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디자이너 제리 로렌조의 패션 브랜드 FEAR OF GOD에 대항하기 위해 2020 경자년 특수로 만든 게릴라 브랜드가 아닐까, 엉뚱한 상상마저 부르는 FEAR OF THE RAT 2020 티셔츠의 후면부에는 서로 꼬리가 묶인 12마리의 쥐를 묘사한 그림이 프린팅 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자유를 찾아가려는 듯이 바깥쪽을 향해 몸을 펼치고 있는 그들의 몸매가 굉장히 징그럽습니다.


(이미지 출처: shop.doverstreetmarket.com)




미국 힙합을 관심 있게 즐겨온 분들이라면 아마 티셔츠 위에 쓰여 있는 ‘FEAR OF THE RAT 2020’이라는 레터링의 저 요상한 타이포그래피가 많이 익숙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앨범 커버가 아마도 맞을 겁니다.




식스 갓, 드레이크! (이미지 출처: Apple Music)



2015년 2월, 기습 공격으로 힙합 팬들에게 지고의 기쁨을 안겨준 랩스타, 팝스타, 슈퍼스타 드레이크의 명품 믹스테이프 <IF YOURE READING THIS ITS TOO LATE>의 앨범 커버입니다.


저 어설프고 답 안 나오는 엉뚱한 글씨체, 많이들 익숙하실 텐데요(소위 JIM JOE 폰트라 불리며 수많은 짤을 양산한 바 있습니다), 정작 누구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위 티셔츠의 문구와 그림, 위 앨범 커버의 문구를 작성한 인물은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JIM JOE’입니다.



JIM JOE는 ‘성별’과 ‘출신지’ 등을 포함해 자신에 대한 웬만한 정보를 전부 ‘숨김’ 처리하여 익명의 컬트 아티스트로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는데, JIM JOE가 사실은 '남자’이고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이라는 사실이 나중에는 밝혀졌어요. 누굴 속입니까.



아티스트 JIM JOE(왼쪽)와 Alyx의 메튜 윌리엄스(가운데)


그라피티 아티스트 JIM JOE는 2010년 경부터 미국 뉴욕의 길거리를 싸돌아다니며 호기심을 부르는 ‘낙서’ 수준의 여러 글귀들을 곳곳에 써 갈겨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그의 중뿔난 그라피티는 속 깊은 관조 끝에 가까스로 스며 나오는 현인의 묵직한 인생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느닷없이 반짝하며 터져 나오는 아무나의 멍멍이 소리 같기도 합니다(굳이 좋게 표현하자면 ‘돈오’라고나 할까요).





그는 스프레이 프린트와 마커를 들고 다니며 퍼블릭과 프라이빗한 장소/물건의 경계를 오가며 대중없이 낙서질을 합니다. 그가 남기는 메시지는 엉뚱하고 별 볼 일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상한 작품(?)을 두고 수군거립니다. "이게 뭐야, 썅."





JIM JOE는 오직 이메일을 통해서만 인터뷰와 협업을 진행하는 '알 수 없는' 아티스트입니다(알파벳 대문자만을 이용해 이메일을 주고받습니다).

JIM JOE가 남기는 그라피티 메시지의 매력은 JIM JOE가 어디서 자랐고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누구를 만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는 '알 수 없음'이라는 점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는 곧 JIM JOE라는 개인의 메시지를 넘어서 그/그녀/세상의 이야기로 확대되는 예술로 승화하도록 돕습니다.





JIM JOE는 자신의 쇼를 설명하는 보도 자료를 통해 자신이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렇다면 뉴욕 길거리 위에 버려진 물건, 창고 또는 건물의 외벽 등에 JIM JOE라는 태그를 찍고 엉뚱한 메시지를 못생긴 글씨체로 나열하는 JIM JOE의 행위 전반은 예술을 정의하는 건 누구이고, 무엇이 예술을 구성하는가, 더 나아가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스스로의 여정 또는 반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JIM JOE의 엉뚱한 낙서가 작품이 되어 소수의 광적인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고 심지어 미국 대중문화의 대표 격인 '빌보드 차트'를 주무르는 래퍼 드레이크의 앨범 커버에 등장하도록 만든 매력은 무얼까, 그 이유는 정말로 다양하고 복합적이겠지만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타인을 의식해 만든 결과물이 자기의 타고난 태도와 기본적인 입장을 반영하지 못할 때', 즉 태도와 결과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예술의 매력이 폭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툴다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티스트 JIM JOE의 타고난 성정과는 반대로 그가 펼치는 예술 행위(결과물)는 '반달리즘'이라고 욕을 처먹을 정도로 '외향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 두 특성이 서로 충돌하며 내는 빛을 사람들이 알아본 건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사람들은 결과만을 보며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은연중에 그것을 만든 태도를 자주 예측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여러 가지 제약들에서 생겨난다.

- 알베르 카뮈 '1933년 독서 노트' 중에서 -


 


JIM JOE를 낙서하게 만든, 아니 예술하게 만든 제약은 무엇이었을까요?


JIM JOE는 낙서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예술로 부른 걸까요? JIM JOE는 낙서를 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여주길 바랐을까요?



JIM JOE의 그라피티 메시지는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JIM JOE의 그라피티 메시지는 과연 대단한 의미라도 있는 걸까요? JIM JOE는 대단한 의미로 가득한 이 세계에 따끔하지만 엉뚱한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잔뜩 남기고 싶었던 걸까요?




나의 관심을 끌거나 흥미를 일으킨 것은 다만 단편적인 얘기들, 몸짓들, 혹은 전체와는 동떨어진 한 토막의 말, 그러한 것들이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중에서-




'예술'의 정의와 인증 그리고 경계에 대한 고민을 부른 몬트리올 출신의 뉴욕 그라피티 아티스트 JIM JOE의 이야기였습니다.





* Cactus Plant Flea Market(CPFM):
미국의 스타일 아이콘 퍼렐 윌리엄즈의 어시스턴트였던 Cynthia Lu가 전개하는 패션 브랜드


[프런트 이미지: Campaign Poster for Bernie Sanders by JIM JOE]


[내용 참고]


매거진의 이전글 패션 브랜드 Aries Arise에어리스 어라이즈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