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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y 05. 2020

얼굴에 연필 문신을 한 패션 인플루언서

Kerwin Frost커윈 프로스트,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문화적 욕구는 솟구치는데 그것이 꽤나 막연한 상태, 그렇다고 내친김에 문화 학습을 통해 내면세계를 차근차근 만들자니 또 되게 귀찮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렇게 우리는 ‘겉멋’에 빠지고야 마는데, 이때 '나'를 위시로 한 ‘겉멋’으로 물든 이들이 죽자고 기대는 것은 ‘브랜드’다. 막연한데 귀찮기까지 한 내 비참한 현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주는 일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런데 골치가 아픈 것은 이러한 못된 습관이 불치라는 것이고, 더 슬픈 것은 쉽게 못 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겉멋 들고 브랜드에 취한 사람도 초등학생이 대강 묶은 신발끈처럼 금세 술술 잘 풀리면 그나마 트렌드 세터나 테이스트 메이커가 되어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이고, 나처럼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데 혼자 신나서 까불면 그저 통장 잔고나 축내는 철없는 ‘어른이’가 되는 것이다. 누군들 쉽게 인정하고 싶겠느냐마는 인생이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정확히 같은 일에 비슷한 수준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는 삶의 대조는 언제나 서글프다, 아니, 적응이 안 된다. 아무튼 전자의 대표주자는 오늘 소개할 인물이고, 후자의 대표 인물은 필자다. 한심하다.


얼마 , 잠이 도통   침대 위에서 이케아 국민 스탠드 불을 켰다 껐다 궁상을 떨며(나이가 서른한 살인데) 미국 래퍼들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다가 ‘Kerwin Frost커윈 프로스트라는 인물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1995년생 할렘 뉴요커인데, 직업이 다양하다. 그의 정체성은 코미디언, 인플루언서, 디제이, 인터뷰어, 스타일 아이콘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배우 잭 블랙Jack Black, 래퍼 래퀀Raekwon, 가수 위켄드The Weeknd를 흔들어 잘 섞어 빚어낸 외모를 특징으로 한다.


Kerwin Frost (이미지 출처: Hypebeast)


할렘가에서 그야말로 거지처럼 나고 자란 커윈 프로스트는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한다는 지학志學의 나이에 ‘겉멋’에 취해 자신의 얼굴 오른편에 연필 모양의 문신을 때려 넣었다. 또한 약관弱冠도 되지 못한 열여섯의 나이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뉴욕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스토어 등을 기웃거리며 ‘패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다. 그때 어울리던 그의 절친이 요즘 굉장히 잘 나가는 모델이자 인플루언서 Luka Sabbat루카 사벳이다.


Luka Sabbat(좌) 그리고 Kerwin Frost(우) (이미지 출처: Saintwoods)


커윈 프로스트, 그는 '인플루언서’들의 ‘인플루언서’라고 불린단다. 아, 인플루언서도 모자라서 인플루언서들이 인정하는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도대체 어떤 매력을 타고나야 하는 것일까? 나 같은 외톨이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당신이 가난하다면,
옆사람을 웃기는 일을
정말 잘해야 하죠.



커윈 프로스트의 잡지 인터뷰 한 자락인데, 그야말로 생활의 달인이 전하는 생활 철학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뉴욕 할렘에서 어렵게 자란 그는 선택의 여지없이 ‘근검절약’의 정신을 실천해야 했기에 ‘빈티지 샵’에서 놀며 ‘패션’과 ‘브랜드’를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습관은 곧 열정이 되어 현재는 ‘빈티지 스타일’이 커윈 프로스트의 시그니쳐 스타일이 되었다. 역시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무엇이 되더라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인플루언서'라는 이 실체 없는 개념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내 삶의 백과사전,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비밀스럽게 소곤거릴 필요가 있는 일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그에 관해 소곤거리는 것은 그가 그만큼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글쎄, 저 외모에 '낭만적인' 억측은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인플루언서 커윈 프로스트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얼굴 한 편에 연필 모양의 문신을 기다랗게 박고 각종 스트리트 브랜드의 신상품 발매 현장마다 친구들과 기웃거리며 새벽부터 죽 치고 있었단다. 그러하니 분명 '그들' 사이에서 비밀스러운 소곤거림을 잔뜩 불렀을 것이고.



(이미지 출처: IMDb)



대충 그림을 그려보자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챙겨본 선생님들께서는 단번에 이해가 되실 텐데, 떼거지로 군집한 아마추어 참가자들 사이에 유명 프로 래퍼가 같은 참가자 신분으로 별안간 등장하고 해당 래퍼를 흘깃흘깃 쳐다보던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수군거리는 장면 말이다.


"와, 쩔어, 스눕피가 쇼미에 나온 거야?! 십할, 스눕피는 반칙이잖아."



Craig Green과 Jeremy Scott을 좋아한다는 Kerwin Frost (이미지 출처: Vogue / GQ)


커윈 프로스트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Spaghetti Boys스파게티 보이즈'라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을 만들어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헤론 프레스톤 등과 협업하기도 했고(현재는 그룹이 해체한 모양이네요), 현재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KFT(Kerwin Frost Talks)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제가 처음에 이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이 사실 이 프로그램 때문이었어요). 래퍼 포스트 말론, 에이셉 라키 등의 A급 게스트들을 모시고 아주 편한 분위기에서 웃고 떠드는 컨셉인데, 보고 크게 남는 건 없지만 미국 힙합 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서는 시간이 남을 때 한 번쯤 살펴보는 것도 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남는' 것만 보며 삽니까! 시간 낭비도 좀 해야죠.



스파게티 보이즈 X 나이키 (이미지 출처: Nike)






아, 그나저나 여기서부터 말투 좀 바꿔보겠습니다.


커윈 프로스트의 매거진 인터뷰를 쭉 살펴보는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메시지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가 열여섯의 나이에 Vfiles라는 패션 레이블에서 인턴을 하고 난 이후 갖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난 패션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걸까?
패션계의 일부가 되고 싶은 걸까?



다른 하나는 패션, 코미디, 컨설팅, 디제잉 등 여러 방면을 기웃거리며 까부는 커윈 프로스트의 정체성과 관련해 그가 스스로 밝힌 의견입니다.


나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싶진 않아요. 그러면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 자신을 의심하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새로운 걸 추진하려 들지 않을 거예요.



커윈 프로스트의 첫 번째 메시지는 '순서'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무엇에 관해 진득하게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고, 그 충동에 충실히 굴복해 세상 밖으로 뛰어나가 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운명적인 교량이 사방으로 설치되어 '그것'의 일부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것이죠. 너무 순진한 발상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관련하여 언젠가 인상적인 블로그 포스트를 본 적이 있어요. 요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때문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였죠. 글쓰기가 마냥 좋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흔들리는 하수들을 위한 너무 괜찮은 위로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형, 메시지 좀 좋은데? 메시지가 좋으면 무조건 형인 거야.


커윈 프로스트의 두 번째 메시지는 아마도 많은 어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지하게 많은 현대인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너무 한두 개의 점으로만 설명하려고 들면 안 되는데, 선을 긋고 한계를 짓는 타성 때문에 지루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부터도 고쳐야 할 문제인데, 올해 안에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한 번 벌여볼 생각입니다(응원해주세요). 요즈음의 화두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2020년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화두이기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응원하겠습니다). 특히 또래들을 만나면 다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유튜브 시작하겠다는 말은 조금 지겨워서 화가 날 정도이구요.



이 형, 우산 미쳤는데? 우산이 미쳤으면 무조건 형인 거야.



오늘은 커윈 프로스트라는 할렘 출신의 인플루언서를 말도 안 되게 한번 소개해보았습니다. 혼자 재미 보는 일도 좋지만, 기왕이면 재밌는 이야기는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이런 쓸데없는 글은 대체 왜 쓰는 거야?"라며 혹자는 끌끌대실 지 모르겠지만(다행히 아직 브런치에서 악플은 못 받아봤어요), 글쎄요, 제 대답은 그래요, 그냥 쓰는 겁니다!


소중한 구독자 선생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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