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를 밝히자면
글쓰기를 좋아하고 오래 즐겨온 사람으로서 이제 막 글쓰기에 취미를 붙여보려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쓰기 연습 방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긴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름 난 소설가나 에세이스트의 책 두세 권을 골라 책 속의 모든 문장을 모조리 외워버릴 기세로 반복하여 읽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호흡과 글 버릇을 흉내 내 써보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작가의 글을 고스란히 베껴 쓰는 것도 물론 좋지만, 기왕이면 나의 글을 써나가면서 중간중간 그들의 작문 스타일을 내 생각 위에 이리저리 입혀보며 새로이 다듬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내가 쓴 글을 내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다가 조금이라도 어색한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뜯고 늘어지며 진저리가 날 정도로 함께하는 단계도 꼭 필요할 것이다. 마치 계속되는 모기의 습격에 잔뜩 짜증을 내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는 걸 묘책이라고 짜내어 발악하였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살짝 벌어진 이불 틈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 나와 끝 모를 동거에 돌입하려는 한여름밤 모기의 치근덕거림처럼.
무조건 짧게, 말하듯이, 초등학생도 알아듣기 쉽게 글을 쓰라는 어떤 전문가들의 조언은 꽤 지겹고 좀 무책임하며 이젠 지친다. 하기야 글 잘 써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이 글쓰기의 비밀을 공개할 턱이 있겠는가. 마치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한 어떤 양념 갈비 맛집 사장님께서 특제 양념 소스를 만드는 과정 전체를 대체로 투명하게 공개하면서도 소스 만들기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극소량 첨가되는 정체불명 흰 가루의 원재료를 절대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처럼.
<스눕피의 브런치>는 대중없어서 다음에 어떤 글이 올라올지 예측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불친절한 블로그다. 그 불친절함이 어느 정도냐면 마치 대단한 맛집이라는 지인의 추천에 새벽부터 줄을 서서 식당 안에 간신히 입성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음식 주문을 하고자 한 손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는데, 어련히 차례대로 주문을 받을터이니 당장 그 손을 내리고 입도 다물라며 인상을 팍 쓴 채 무안을 주는 지독하리만큼 불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고약한 눈빛처럼.
미국 힙합 얘기나 들어보려는 심산으로 구독했더니 갑자기 이상한 패션 브랜드를 소개해서 사람의 짜증을 확 돋우고, 일상 에세이를 성실히 포스팅하길래 노력이 가상해서 구독해줬더니 도통 관심 없는 100년 전 소설가의 편지나 번역하고 앉아서 사람 약을 올리는 것이다. 마치 '인기 스낵 모음'이라는 카피에 혹해 커다란 대형 슈퍼마켓에서 럭키 박스를 하나 사서 뚜껑을 열어봤는데, 이게 웬걸 평소에 믿고 거르는 과자들만 잔뜩 때려 넣은 상품이었다는 걸 발견하고는 '아, 그러니까 이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잔반 처리를 영리하게 진행하려는 한 제과 기업의 허튼수작이었구나!'라고 속으로 되뇌다가 느끼는 낭패감처럼.
개인적으로도 이 브런치를 막가는 블로그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스눕피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는 현실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존재 가치가 밑바닥처럼 느껴져 잔뜩 풀이 죽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의 늦은 하굣길에 좋아하는 치킨과 햄버거를 사놓았다며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다급하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내오는 학부형의 한결같은 기다림과 사랑처럼.
이 시대엔 별의별 방법론이 참 많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블로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싶다면 무조건 1가지 주제에만 집중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면서 본인의 OO년차 블로그 운영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큰 목소리로 설명하는 어떤 파워블로거 선생님의 동영상 한 편을 보다가는 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마치 오렌지향 해열제 시럽을 먹고 곤히 잠들었으나 어쩔 수 없이 계속 새어 나오는 식은땀에 덮고 있던 두꺼운 이불을 세게 걷어차며 인상을 찌푸리는 지독한 감기에 걸린 한겨울의 불쌍한 어린아이처럼.
요즘엔 개인 브랜드가 각광을 받는 시대인지라 ‘창직’이 자연스러운 듯하다. 자기 자신을 ‘밀레니얼 트렌드 비주얼라이저’라든가 ‘로컬 트립 어드바이저’라든가 ‘유러피안 재즈 콘텐츠 큐레이터’ 등으로 불러달라면서 이름만 들어서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도통 예측할 수 없는 직업을 하나 만들어 그에 맞게 자신의 인생을 새로이 설계해나가는 식이다. 마치 연초에 대형 서점의 매대란 매대는 모조리 접수하며 그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는 <트렌드 코리아 2021>의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트렌드 모음처럼.
이러한 창직자들의 강력한 자기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나 같이 사리에 어두운 사람은 팍 주눅이 들어 벌벌 떨게 된다. 마치 100m 달리기의 출발선에 선 채 호루라기 소리를 기다리며 앞으로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소심한 남자 중학생의 부들거리는 두 다리처럼.
나도 한창 개인 브랜딩을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부족한 깜냥에 직업을 만드는 건 잠정 보류하였고 대신 마치 작위를 내리듯 스스로에게 별칭 내지는 필명을 하나 선물하였다. 이름하여 '쪼다’인데,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명사의 뜻도 포함하면서 나의 관심사를 남들에게 자꾸만 주입하면서 귀찮게 굴고 힘이 닿는 한 자꾸 쪼아대면서(?) 언젠가 내 팬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표현이다. 한마디로 무식하고 미련하며 무례한 개인 브랜딩인 것인데, 내 주변인들을 은연중에 내 스타일로 물들이며 살아온 것이 약 31년이기에 언젠가는 터질 거라 굳게 믿고 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여학생들의 손톱을 단 하루도 멀쩡히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손톱이란 손톱은 보이는 대로 죄다 빨갛게 물들이던 봉숭아가 지닌 신비로운 천연 원리처럼.
예전에 내 글이 어떤 플랫폼에 실렸을 때,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렸었다. <아무 내용이 없는데 유익한 글>이라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래, 내가 바라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구나!
앞으로도 대중없겠으나 그럼에도 최대로 유익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려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