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Raf Simons 라프 시몬스 그리고 동명의 패션 브랜드
'스키니한 남성 수트 실루엣'을 본격 소개한 선구적 패션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셀린느'의 디렉터 에디 슬리먼을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디 슬리먼이 이끌었던 2000년대 초중반의 디올 옴므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맨즈웨어 스타일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꿨으니까.
하지만 인식 상 최초라는 개념이 역사적 순서와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스키니 남성 패션의 원류를 따지고 들면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기간을 현대로 좁혀본다면 우리는 피골이 상접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에 앞서 이 사람과 먼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여성복 디자인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남성'을 위한 패션 디자인의 현대적 개념을 정립한 벨기에 출신의 천재 패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말이다.
루즈한 배기 핏 실루엣이 유행하던 세기말, 라프 시몬스는 동명 브랜드의 여섯 번째 컬렉션이었던 1998년 봄/여름 컬렉션 'Black Palms'에서 대단히 마른 남성 모델들과 함께 슈퍼 슬림 룩을 선보였다. 라프 시몬스는 당시의 스타일을 '스키니하고 길쭉한 블랙 수트'라며 회고했다.
어디 스키니 실루엣뿐이랴. 2021년에 와서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1995년에 설립한 동명의 맨즈웨어 브랜드 'Raf Simons'에서 선보인 다종다양한 스타일 역사를 쭉 훑어보고 있노라면 선구적 의미로서의 '라떼'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해 봤어? 내가 다 해 봤어.
아, 그 스타일?
내가 다 해 봤거든.
라떼는 말이야...
-킹떼형 킹프 시몬스-
하지만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지 패션 브랜드 '라프 시몬스'는 꼰대의 성격과는 거리가 한참 멀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설립 25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유스 컬처'의 생각과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패션 크리에이티브로 많은 이들은 '라프 시몬스'를 꼽을 정도이니까.
패션에 미친 어떤 젊은이들은 인터넷 위에서 철 지난 '라프 시몬스' 컬렉션 상품들을 예술 작품을 수집하듯 뒤지며 웃돈에 웃돈을 얹어 구매한다. 또한 스포츠 웨어와 디자이너 브랜드의 럭셔리 아이템을 슬기롭게 믹스 매치해 그것을 전 세계적 패션 트렌드로 이끌고 있는 미국 힙합 씬의 영 앤 리치 래퍼들도 패션 브랜드 '라프 시몬스'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으로 명성이 자자한 뉴욕 출신의 래퍼 '에이셉 라키'는 2017년에 발표한 'RAF'라는 제목의 싱글을 통해 대놓고 '라프 시몬스'를 극도로 찬양한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라프 시몬스'는 패션의 미래를 그리는 최고의 브랜드라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1968년, 벨기에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예술적인 감도를 높여줄 만한 문화 시설 하나 없이 오직 농장으로만 둘러싸인 따분한 성장 환경이었지만, 동네 유일의 레코드숍에서 밴드 음악과 전자 음악을 듣고 그 앨범 커버를 감상했던 일이 어린 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예술 활동이었다며 그는 회고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라프 시몬스' 컬렉션의 주제를 구성하고 배경 음악을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독일의 원조 테크노 팝 그룹 Kraftwerk, 영국의 록 밴드 Joy Division, Manic Street Preachers 그리고 영국의 일렉트로닉 팝 그룹 Depeche Mode의 음악은 그의 패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아티스트들이다.
그는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길 꿈꿨으나 사람들과의 소통보다는 개인적인 작업에 몰두해야 하는 업(산업 디자인)보다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 대화를 늘어놓으며 집합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형태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커리어를 변경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벨기에의 패션 디자이너 Walter van Beirendonck(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십을 진행하던 중 그는 파리 패션위크의 1990년 봄/여름 '마틴 마르지엘라'의 쇼를 직접 체험하고 '패션' 씬에 감정적으로 매료되었다(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그 길로 곧장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길에 들어선다(어떤 정규 패션 교육 과정의 도움 없이 독학으로, 실전으로 패션 씬으로 뛰어들었다).
1995년, 첫 컬렉션을 선보인 '라프 시몬스', 커리어 초반의 그는 자기 자신과 친한 친구들을 위한 옷을 만들겠다는 단순한 목적으로 남성 패션 디자인에 접근했다. 그러하니 20대의 스키니한 남성 체형에 어울리는 폭이 좁은 수트와 몸에 예쁘게 달라붙는 학교 유니폼에 가까운 새로운 개념의 남성복의 탄생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을지도 모르는 것. 그리고 벨기에 무명 스튜디오의 이 작은 발단은 이후 남성이 옷을 입는 방식과 패션 디자인이 '남성성'을 품는 방식에 새로운 힌트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옷 위에 텍스트를 새겨 넣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2004년, 그는 헤르만 헤세의 문학 작품에 꽂혀 소설 '싯다르타'의 문구를 인용해 옷 위에 텍스트로 박아 넣기도 했다), 예술가와의 협업(미국의 예술가 Sterling Ruby와 협업하여 일종의 캔버스로 자신의 옷을 활용했다) 등 그가 패션계에 불어넣은 영향은 지대하고 종류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젊음'과 '반항'이라는 레퍼런스는 25년 넘게 이어져 온 '라프 시몬스'라는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들은 그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도록 인도한 벨기에의 선배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가 오래도록 진실되게 추구해 온 개념이자 라프 시몬스 자신이 강박적으로 갈구하는 진실과 믿음이라는 개념을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세대의 가장 진보적인 행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개념(젊음과 반항)을 기반으로 그는 자유분방함을 대변하는 스트리트 스타일 그리고 정밀함을 대표하는 테일러링을 예술적으로 섞어 선보여 왔다. 요즘 시대의 유행을 무려 25년 전에 미리 예감하고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더욱이 앞서 언급했듯 그의 젊은 시절을 관통한 펑크, 그런지 록, 뉴 웨이브 음악이 만들어 낸 유스 컬처의 정신과 태도는 그의 패션 브랜드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역시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휘감는 극도의 감정적 체험은 한 사람의 커리어 나아가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게 아닐까.
1968년생 동갑내기로 라프 시몬스와 곧잘 비교되곤 하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 저명한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에 타고난 듯 녹아나는 조금 더 커머셜한 인물이라면 라프 시몬스는 '자기' 브랜드를 소유하고 의도적으로 레이블을 작은 규모로 유지하면서(경제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감각을 좇으며 일하는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작은 마음과 작은 만족의 이면에는 깊고 짙은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질 샌더(2005-2012), 디올(2012-2015), 캘빈 클라인(2016-2018), 프라다(2020-현재) 등의 빅 브랜드들과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함께 일하며 커리어의 균형점을 맞추어왔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안주하지 않았다. 관련하여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언제나 2개의 삶을 살아왔다고 밝혔다(부럽다).
특히 미니멀리즘 여성복으로 유명한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될 당시의 그는 여성복 디자인 경험이 전무해 스스로 걱정했고, 유서 깊은 프랑스의 패션 하우스 디올의 '오트 쿠튀르' 디자인을 맡게 되었을 때의 그는 그의 재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갔다는 외부의 비판과 로맨틱한 하우스 브랜드를 모던화해달라는 개인적 숙제에 대한 고민으로 크게 힘들어했으나 종국에는 모든 걱정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브랜드의 묵은 숙제를 해결해 다음 챕터를 멋지게 열어젖혔다. 지금은 조금 식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질 샌더 시절의 그가 보여준 여성적 스타일과 남성미의 퓨전은 가히 혁명적이었고, 디올 시절의 그가 보여준 전통의 브랜드 쿠튀르에 모던한 예술 감각과 익사이팅한 무드를 더한 진보적 행동은 쿠튀르의 새 미래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저는 스스로를
패션 디자이너로서
정의내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겸손좌 라프 시몬좌-
라프 시몬스는 겸손하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패션 디자이너'라고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조심스러워하고, 예술품 수집을 즐기고 시간이 나면 영화관과 미술관을 드나들며 영감을 얻고 예술적인 스타일의 옷을 디자인해 매해 선보여왔지만 긴 시간을 들여 헌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라프 시몬스는 패션에 담긴 생각과 메시지를 중시한다. 그는 패션 디자인에 있어 패턴을 만들고 바느질을 하는 것만큼이나 큰 비전을 세워 팀원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나가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멋진 옷이 아무리 많더라도 디자이너의 세계관과 가치관으로부터 감정적 울림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절대 구매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라프 시몬스는 인간적이다. 그는 패션계의 구분 짓기를 거부하고(특히 서열 관계) 패션은 모두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기 패션쇼의 관객석을 없애고 모두가 서서 쇼에 동화되도록 노력하기도 했고, 끊임없이 젊은 세대의 생각을 흡수하며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네 왔다. 그의 작품을 향한 유스 컬처의 열광적인 리액션이 엄청나게 큰 인생의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라프 시몬스는 변화를 만들었다. 그는 남자들이 옷을 입는 방식을, 남자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의 형태를 송두리째 바꿨다. 90년대 중반에 이미 유스 컬처의 급진적인 스트리트 감성을 남성복 속에 녹여냈고,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현실 속 1020세대의 꾸밈없고 거침없는 면모를 컬렉션 위에 담아냈으며 이를 통해 또래들의 열광적인 찬사를 얻어냈다. 또한 '남성성'이란 개념은 결코 한 두 가지의 고정적이고 관습화된 이미지로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을 패션을 통해 증명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 조금도 새롭지 않은 현대 남성복 패션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스타일의 많은 부분이 라프 시몬스가 지난날에 부지런히 선보인 크리에이티브 실험의 우산 아래 놓여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프런트 이미지 출처: HIGHX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