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RHUDE 그리고 창업자 Rhuigi의 아메리칸드림.
어렸을 때 저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나라 미국의 길바닥엔 실제로 ‘젖과 꿀’이 철철 흘러넘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그만큼 저는 세상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는 순진한 어린이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잔뜩 망가져 속물이 되었지만요.
제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온몸으로 느껴본 첫 시기는 사촌 형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대략 이십오륙 년 전이었고, 장소는 인천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NBA를 좋아하던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물 크기의 ‘마이클 조던’ 포스터와 함께 이름도 모르는 까만 형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무릎에 두 손을 올린 채 지쳐있거나 갖은 인상을 다 쓰며 하늘을 나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들이 온 벽면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휘둥그레. 또 그곳엔 미니 농구 골대가 있었고, 농구 선수들의 피규어와 스포츠 잡지가 있었습니다. 토종 한국인인 제가 마주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첫인상은 이렇듯 ‘NBA’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패션 브랜드에 대한 첫인상 역시 ‘NBA’와 얽힙니다. 정확히 말하면 훕-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패션이었습니다. 그가 툭하면 이 브랜드의 옷을 입고 나와 귀찮게 ‘구글링’을 불렀거든요. 미국 래퍼들의 패션만큼이나 미국 농구 선수들의 패션 또한 훔쳐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중력을 거스르며 자란 거대한 신장과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쫀쫀한 근육을 가진 그들은 뭘 걸쳐도 ‘자기주장’이 확실해서 좋습니다.
오늘은 르브론 제임스가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 RHUDE루드 그리고 창업자 Rhuigi Villaseñor루이지 빌리시뇨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볼까 합니다. 성공한 인물의 인터뷰 기사를 한 10개쯤 찾아 읽으면 괜찮은 단편 소설 1권을 읽었을 때의 그 묵직한 감동과 맞먹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좋은 건 나눠야죠.
RHUDE의 창업자 Rhuigi는 필리핀 마닐라 태생인데,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부모님이 그를 11살 때 미국으로 보내버립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스 바이브를 체득하고 정체성의 혼란기에 미국 LA에 도착해 문화 충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영어도 모르고 미국 문화도 몰라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그는 ‘그림’과 ‘패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디자이너로서의 그릇을 키웁니다.
에어 조던과 베이프 티셔츠를 사모으는 건 제게 게임과 같았어요. 이기려고 노력했죠. 쿨한 애들 중 하나가 되려면 그들의 스타일 언어를 이해해야 했어요.
대학에서는 ‘미술사’를 공부하며 ‘큐레이터’가 되길 원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곧장 ‘돈’을 벌어야 했고 그 수단은 ‘옷’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Taz Arnold가 설립한 TI$A에서 무급 인턴(열정 페이) 생활을 보내고 내친김에 현재 Moschino의 남성복 디자인을 이끄는 Shaun Samson 밑에서 일을 배운 그는 본격적으로 ‘패션’ 세계에 뛰어듭니다.
우린 센트럴 세인트 마틴이나 파슨스 출신은 아니지만, LA의 자유로운 감각이 있어요.
사실 Rhuigi의 어머니는 재단사, 아버지는 세계를 돌아다니는 건축가였다고 하는데, 그는 어머니로부터는 옷을 만드는 일의 재미와 방법을, GUCCI 스타일을 뽐내던 아버지로부터는 스타일과 멋을 보고 배웠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교복과 연극 코스튬을 만들어주곤 하셨어요. 그게 패션에 대한 열정의 시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당신이 만든 옷을 입은 우릴 보면서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는 또렷이 기억해요. 그건 분명히 절 움직이게 했죠.
어린 시절,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국으로 터를 옮겨 개-고생을 하고, 집안 형편 탓으로 ‘큐레이터’로의 꿈을 접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티셔츠를 만들어 팔던 그는 결국 해냅니다.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트 앤 패션 부문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리스트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일단 축하합니다.
그 언젠가 캐나다 래퍼 드레이크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히트곡을 통해 “zero to one hunnit, ni**a real quick’, ‘started from the bottom, now we here’라며 바닥에서부터 일군 자신의 성공을 멋지게 자축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어 한 자 몰라 학교에서 ‘you know’만을 연발하고 여동생과 방을 함께 쓰며 힘들게 자랐다는 필리핀 이민자 출신 Rhuigi Villasenor야말로 ‘0 to 100’, ‘Rags to Riches’, ‘Started from the bottom’이라는 성공 개념에 더욱더 찰싹 달라붙는 최적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브랜드 RHUDE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Rhuigi는 이미 티셔츠를 만들어 팔았는데, 그가 제작한 티셔츠 1장이 Rhuigi의 인생을 바닥에서 꼭대기로 끌어올려 줍니다. 2013년의 BET AWARDS에서 슈퍼 랩스타 Kendrick Lamar가 그가 만든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라 상을 두 개나 타게 된 겁니다. 일단 축하합니다.
먼저 Kendrick Lamar의 스타일리스트가 그의 티셔츠에 관심을 보였고, 옷을 만들 돈이 없는 그에게 Kendrick Lamar는 1억 원을 부칩니다(헉). 빨간 티 하나, 검은 티 하나를 부탁하며(허걱). Kendrick Lamar가 방송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과 동시에 한없이 조용하던 그의 Paypal 계좌에는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실력과 운이 합쳐지는 순간이 이토록 멋있을 수 있다니요. ‘개인의 스토리’란 것도 인격이 있어서 타고난 ‘팔자’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언젠가 대한민국의 가수 신해철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강연을 통해 ‘지금부터 인생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주겠다. 성공은 운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언젠가 필자의 부모님께서는 시험을 말아먹은 중등학교 시절의 필자를 향해 ‘찍기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주겠다. 찍기 운도 실력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운’을 운운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필자를 원천 봉쇄하신 바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맞는 말’이 왜 이렇게도 많은 건지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2014년, 패션 브랜드 RHUDE는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합니다. 영단어 ‘RUDE’에 자신의 패밀리 네임인 접두어 ‘RH-‘를 붙여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고(가족에 대한 영광의 표현이랍니다), ‘스트리트 웨어’와 ‘빈티지’를 Rhuigi 식으로 재해석하여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모터스포츠 그래픽의 재현, 말보로 커버를 끌어온 디자인, 턱시도와 스트리트 트랙 팬츠를 조합해 만든 Traxedo 팬츠 등이 대표적인데, Rhuigi는 자기의 인생 체험이 곧 패션 디자인에 그대로 녹아든다고 이야기합니다.
RHUDE는 나의 꿈, 열정 그리고 인생 경험의 확장이다.
예컨대 말보로 커버 디자인 차용의 경우, 어린 시절 마닐라 길거리 위에서 또래들이 돈을 벌기 위해 ‘담배’를 팔던 허슬의 경험을 지켜본 개인의 체험, 또한 훗날 미국에서 목도한 ‘컨슈머리즘’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체험을 글로 풀어쓰는 ‘작가’와 옷으로 이야기하는 ‘디자이너’를 나란히 두고 비유하는 그의 설명처럼 말이죠.
Rhuigi는 상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또한 인간은 어떻게 옷과 연결되는가,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의 패션/경영 철학은 곧 '인간'과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학습하는 일련의 과정인 셈입니다. 단지 옷 '그 자체'를 만들기 위해 옷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말이죠.
Rhuigi 본인은 RHUDE가 셀럽 후광 효과에 기대는 것을 그리 좋게만 보진 않는 듯 하지만, RHUDE는 분명 셀럽 효과를 톡톡히 본 브랜드입니다. 앞서 언급한 래퍼 켄드릭 라마부터 여러 NBA 스타들, 가수 위켄드, 모델 벨라 하디드, 저스틴 비버, 제이지, 에이셉 라키 등의 스타들이 RHUDE를 입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돼 오곤 했습니다. 어딜 그렇게들 돌아다니십니까?
특히 켄드릭 라마의 경우에는 ‘RHUDE’라는 브랜드의 첫걸음을 화려하게 수놓은 것도 모자라 힙합 씬, 나아가 미국 대중음악 카테고리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2018 퓰리쳐 상’ 수상의 순간, 드리스 반 노튼 셔츠, 나이키 에어 맥스와 함께 RHUDE의 시그니쳐 아이템인 ‘Traxedo’ 팬츠를 착용함으로써 대단히 역사적인 순간 속에서 그의 하반신만큼의 기쁨이나마 브랜드 ‘RHUDE’와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일단 축하합니다.
아메리칸드림 Rhuigi의 허슬은 멈출 줄 모릅니다. 그는 스포츠 웨어 PUMA, VANS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스포츠 웨어와 캘리포니아 빈티지/럭셔리 스트리트와의 만남을 성사시켰고, 미국의 디자이너 James Perse와 함께 가구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RHUDE의 2020 F/W 파리 컬렉션을 통해 여성복 디자이너로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음엔 무엇에 도전할 건가요?
자동차? 여성복? 신발? 끝이 없어요.
오늘의 글을 작성하기 위해 Rhuigi와 RHUDE라는 키워드가 포함되는 글이란 글은 싹 다 긁어 읽어보았습니다. 지루한 구글링 과정 끝에 얻은 교훈은 뭐 그렇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가는 개인의 열정은 끝내 의미 있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 무언가를 성취하기에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조건은 그 자체로 힘겨운 것이지만 매력적인 후일담이 될 수 있기에 일단 끝을 보고 주둥아리를 열어야 한다는 것. 어쨌거나 인생이란 결국 '열린 결말'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네요.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으시고 아메리칸드림으로 자수성가를 일군 Rhuigi의 멋진 에너지나마 얻어 가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에게 따로 허락을 받진 않았는데, 제 마음대로 그의 에너지를 대신 전달한 이 글이 혹시 나중에 그에게 발각되더라도 용서해줄 거라 믿습니다.
[프런트 이미지 출처: Complex]
[내용 참고 및 이미지 출처]
https://www.forbes.com/sites/tomward/2019/01/07/rhuigi-villasenors-rhude-awakening/#28c853f33588
https://www.gq.com/story/rhude-rhuigi-villasenor-interview
https://www.ssense.com/en-us/editorial/fashion/thats-so-rhude-meet-rhuigi-villasenor
https://www.esquire.com/style/mens-fashion/a28184489/rhude-rhuigi-villasenor-interview-designer-brand-profile/
https://coolhunting.com/style/interview-rhude-rhuigi-villasenor-furniture/
https://www.highsnobiety.com/2017/04/19/rhude-clothing-interview/
https://shoplessons.com/pages/meet-the-designer-series-1-rhuigi-rhude
https://www.hfa.ucsb.edu/news-entries/2018/6/7/id92894b1y60ky0zl5nf09m1v6jywa
https://www.goat.com/greatest/rhuigi-villasenor
https://www.nicekicks.com/how-rhuigi-villasenor-rhules-street-style/
http://hero-magazine.com/article/123423/rhude/
https://statusmagonline.com/rhuigi-villasenors-streetwear-label-rhude-comes-home-to-manila
https://www.endclothing.com/gb/features/rhuigi-villasenor-on-creating-new-vintage-with-puma
https://milk.xyz/articles/meet-rhuigi-villasenor-the-new-face-of-menswear/
https://www.vogue.com/slideshow/rhude-fall-2020-menswear
https://hypebeast.com/2020/1/rhude-fw20-paris-fashion-week-show-backstage-rhuigi-villasenor
https://www.flaunt.com/content/rhude-fw-2020
https://hypebeast.com/2020/1/rhude-fw20-paris-fashion-week-show-backstage-rhuigi-villasenor
https://coolhunting.com/style/interview-rhude-rhuigi-villasenor-furni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