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패션 디자이너의 지존 반열에 오른 벨기에 패션 꽃중년
사치스럽고 화려한 패션 디자인의 정수
앤트워프 식스 그리고 인디펜던트 패션 디자이너
1986년, 여섯 명의 벨기에 청년이 영국 런던으로 향합니다. 앤트워프 왕립 미술학교 출신이었던 그들은 대절한 Van을 끌고 다니며 그곳에서 일종의 게릴라 스타일의 패션쇼를 선보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등판한 전설적인 ‘Antwerp Six’ 컬렉티브의 놀라운 디자인 아이디어는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패션 디자이너가 주를 이루던 당시 패션 신에 ‘벨기에’ 패션 디자인의 새롭고 거침없는 크리에이티브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죠.
같은 학교에서 만나 디자인 공부를 함께한 그들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제가 알 바도, 알 수 있는 법도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후 나란히 각자의 레이블을 만들어 고유의 패션 디자인을 이어나갑니다.
블랙 앤 화이트와 미니멀리즘 패션을 대표했던 ‘앤 드뮐미스터’, 라프 시몬스와 크리스 반 아쉐의 패션 스승이자 반지의 제왕 ‘드워프’의 수염이 조금도 안 부러운 ‘월터 반 베이렌동크’ 등이 대표적이죠.
아, 맞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디자이너 역시 빼놓을 순 없겠는데요, ‘인디펜던트 패션 디자이너’라는 수식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벨기에의 슈퍼 젠틀-맨이자 시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울트라 엘레강스-맨 ‘Dries Van Noten 드리스 반 노튼’입니다.
'드리스 반 노튼'은 1958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태어나 패션 부티크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테일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어린 나이부터 파리와 밀라노, 피렌체 등지를 돌아다니며 컬렉션 의상을 구매하기 위한 비즈니스 트립에 그들과 함께했던 그야말로 타고난 패션 조기 유학생이었습니다.
이후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뿌리치고 그는 개인 브랜드 운영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열여덟의 나이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에 입학해 패션 디자인을 공부합니다.
이후 여러 브랜드에서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그는 1986년 동명의 패션 브랜드 'DRIES VAN NOTEN'을 론칭하게 되죠(1986년의 런던, 앤트워프 식스 패션쇼의 일환으로 그는 남성복 쇼를 처음 선보였으며 1991년 첫 번째 공식 패션쇼를 열었다).
브랜드의 시작과 동시에 그의 컬렉션 아이템은 런던과 뉴욕 등지의 바이어들로부터 빠르게 주목을 받았고, 브랜드도 덩달아 가파르게 성장합니다.
드리스 반 노튼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방문하면
지난 컬렉션 영상을
대부분 다시 볼 수 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2018년, 향수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패션 사업을 영위하는 전통 있는 스페인의 가족 패션 그룹 'Puig'에 대부분의 지분을 넘기기까지 '드리스 반 노튼'은 럭셔리 대기업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완전 독립 체제를 구축하고 자기만의 크리에이티브를 실험하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을 유지했습니다(굳이 비견하자면 레이 카와쿠보, 조르지오 아르마니, 라프 시몬스 등이 더해질 수 있겠네요).
30년이 훌쩍 넘는 패션 커리어 동안, 그는 일상과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아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풀어냈고, 프리/크루즈 컬렉션 등을 제하고 1년에 총 4회의 컬렉션(남성, 여성 컬렉션 각 2회씩)만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접근성이 쉬운 향수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해 수익을 챙기는 여타 패션 브랜드와 달리 컬렉션 옷의 비중을 90% 이상으로 유지하며 진또배기 패션 하우스로서의 본질에 충실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자적인 럭셔리 패션 브랜드 '드리스 반 노튼'의 패션 스타일은 독보적입니다.
'반 노튼 컬러'를 따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고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컬러감, 실키한 플로럴 프린트와 미스매치 프린트의 인상적인 매력, 자수와 술 장식, 시퀸, 자카드, 벨벳 등의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윤택하고 풍부하며 사치스러운 맥시멀리즘 패션, 세계 각국의 전통 수작업 방식을 통해 제작한 패브릭을 통해 드러나는 에스닉한 감각, 전체적인 쉐이프와 소재, 테일러링을 균형감 있게 조합하는 뛰어난 만듦새 등은 브랜드 론칭 이후 지면 광고를 포함한 커머셜 활동을 거의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우아하고 때로 신사적이며 예술적인 패션 그 자체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게 한 본질이자 전부로 기능했습니다.
'드리스 반 노튼'의 여러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두 가지의 단어가 눈에 걸립니다. 바로 브랜드의 Organic 오가닉한 성장과 Responsibility 책임입니다.
그는 시류에 편승하거나 거대 기업의 목소리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내 목소리를 내며 디자인 활동을 이어왔는데, 결론적으로는 '앤트워프 식스' 멤버 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이며 롱-런하는 인물이 되었죠.
관련하여 그는 말합니다. 자기는 패션 신의 시스템과 맞서지도 않았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저 자연스럽게 좋은 기회들이 연결되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오가닉하게!
앤트워프에서 태어난 것,
그곳에서 80년대에
비즈니스를 연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저 모두
오가닉하게 성장했어요.
돈이 없으니
다른 회사를 위한
상업 디자이너 활동을 했고,
그러니 나만의 컬렉션을
만들고 싶어 졌죠.
Antwerp
Management School
인터뷰 중
'드리스 반 노튼' 패션의 시그니처는 뭐니 뭐니 해도 정교한 자수와 프린트의 매력일 텐데요, 특히 자수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컬렉션 의상에 녹아들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리스 반 노튼은 브랜드 론칭 이듬해인 1987년부터 인도 캘커타의 자수 전문가, 프린팅 전문가, 비즈 공예인과 함께 일을 해오고 있는데요, 자수 디자인이 내키지 않는 시즌 컬렉션에도 그들의 잡을 지켜주기 위한 '책임감'으로 눈에 띄지 않게라도 디자인 속에 그것들을 녹여내 그들의 밥벌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애쓴다고 합니다. 멋졍;;;
그는 30년이 훌쩍 넘는 독립적인 패션 브랜드 운영 전반에 걸쳐 자기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직업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줄곧 강조해왔고, 경쟁으로 가득한 패션 신에서 자신의 브랜드가 오랜 기간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었던 주요 성공 요인을 이야기하며 20,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 온 좋은 팀과의 균형점을 이야기합니다.
'드리스 반 노튼'의 패션쇼에는 시적인 이야기가 흐르고 장소가 주는 특별한 감각이 넘쳐나 감동이 충분히 느껴집니다(2016년,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펼쳐진 2016-17 봄/여름 컬렉션의 장소 사용 허락을 득하기 위해 16년을 기다렸단다).
또한 디자이너 본인이 특정 나이대나 일정한 몸매의 아이디얼한 모델 타입과 결부되어 브랜드가 규정되는 일을 지양하고 다양한 모델을 무대 위에 세워 '모두'를 위한 패션을 보여주길 지향하기 때문에 어떤 다양성의 재미도 즐길 수 있습니다(드리스 반 노튼은 모델의 애티튜드가 없는 리얼 모델 캐스팅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고, 특히 커리어 초창기의 쇼에서 그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게다가 컬렉션 쇼는 최종 고객뿐 아니라 브랜드를 소개하는 스토어와 바이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짙어서 그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거나 로케이션의 특성에 맞게 자수의 크기까지 세밀하게 조정하는 드리스 반 노튼의 철학과 섬세한 챙김 매력 등을 염두에 두고 그의 쇼를 감상하면 그 매력이 배가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뜻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맥시멀리즘 패션의 매력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화려한 꽃과 어울리며 홈 가드닝을 즐기는 낭만적인 남자 '드리스 반 노튼'은 평소 베이직한 옷차림만을 고수한답니다. 자신을 중립에 두고 일과 비전에 더 집중하기 위함이라나요?
그는 또한 패션이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반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일상을 살아간다고도 밝혔습니다. 으아 멋진데?
30년이 넘는 독립적인 패션 커리어 동안, 드리스 반 노튼은 '구설수'에 휘말린 일이 없습니다. 그 흔해 빠진 갈등 혹은 분쟁이라든지 파산, 무책임, 방종 등의 키워드는 그의 인생과 브랜드의 역사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죠.
어떤 패션 전문가들은 'Dries Van Noten'을 단순히 패션이 아닌 어떤 정신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가 보여준 국가(벨기에) 대표급 스타일 오리지낼러티와 패션 비전 그리고 우아하고 젠틀한 디자이너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의 정중하고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의 이유를 분명히 알 것만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달까요? 아ㅎㅎ 구럴 수도 있게따...
* 따로 출처를 남기지 않은 모든 컬렉션 사진은 '드리스 반 노튼'의 공식 유튜브 채널로부터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