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윌리엄스의 1017 ALYX 알릭스 9SM
어떤 책에서 그런 문장을 읽었습니다. '미래로 가는 문은 하나가 아니다.' 또 어떤 영화에선가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번듯한 것만이 힘은 아니다.'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 패션 브랜드 1017 ALYX 9SM의 창립자 '매튜 윌리엄스 Matthew Williams'의 인생과 커리어를 파고들다가 문득 저 두 문장이 떠올라버렸습니다. 왜일까요?
작년 6월, 프랑스의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 '지방시 GIVENCHY'는 브랜드의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을 아티스틱 디렉터로 알릭스의 '매튜 윌리엄스'를 임명했습니다.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등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부터 현재 버버리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리카르도 티시(지방시에 전위적인 디자인과 스트리트적 요소를 한껏 가미해 젊은 패션 피플을 열광케 했었죠)와 랄프 로렌, 구찌, 끌로에 등의 브랜드를 담당했던 클레어 웨이트 켈러 등의 동시대 스타 디자이너들이 거쳐간 무게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정규 패션 교육 과정의 도움 없이 작은 컨템퍼러리 데님 브랜드의 대학 중퇴 인턴사원으로 패션 커리어를 시작해 세계적인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일곱 번째 아트 디렉터이자 최초의 미국인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그의 강력한 무기는 단연 다양한 스테이지를 넘나들며 '스트리트'에서 키워낸 실전 압축 근육이었죠(실압근을 당해낼 자 누구인가!).
패션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을 취하는 일만큼이나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동시대인이 열광하는 가치)를 끄집어내 패션에 잇대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2018년의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에 스트리트 패션의 감성을 덧입혀 '대박'을 터뜨렸고, 그로부터 2년 후 그와 막역한 친구 사이인 매튜 윌리엄스는 지방시에 새 시대의 모더니티를 수혈했습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창의성이란 언뜻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세 가지 개념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요.
2015년,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 '1017 ALYX 9SM'을 설립합니다. 그의 생년월일 '1017'과 첫째 딸의 이름 'Alyx' 그리고 브랜드의 첫 주소지였던 미국 뉴욕의 '9 St. Mark’s Place'를 나란히 연결한 네이밍이었죠(별거 없었군). 처음에는 여성 라인만을 취급했으나 2년 후부터는 남성복까지 건들면서 브랜드의 저변을 확장하게 됩니다.
디테일이 날카롭게 살아있어 매끈하게 떨어지는 럭셔리 테일러링, 캘리포니아의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랩뮤직으로부터의 영감으로 빚어낸 스트리트 웨어의 루즈한 감성, 제품의 형태와 기능에 충실한 테크 웨어/밀리터리 웨어 메이커의 신흥 강자로서의 면모, 미니멀한 디자인을 강조하면서 신체를 타이트하게 감싸는 본디지 패션 제안 등 매튜 윌리엄스의 알릭스는 지난 6년간 고유의 패션 세계관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왔습니다.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의 피스모 비치 인근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스케이트보드 서브컬처, 미국의 서부 힙합 랩뮤직 등에 심취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그러한 성장 환경이 '예술' 그리고 '패션'에 대한 최초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강력한 요인이 됐다고 말합니다. 특히 여러 미국 대도시의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담아낸 비디오 속에서 만난 개성 있는 패션 스타일을 구경하던 일은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은 체험이 된 듯한데, 이후 그는 그의 축구 코치가 운영하던 작은 패션 브랜드에서 잡일을 도맡으며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로 '학교'가 아닌 체험 삶의 '현장'에서 패션 커리어를 쌓아 올리게 되죠.
알릭스의 매튜 윌리엄스를 이해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아니,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 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슈퍼스타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팝 스타 레이디 가가입니다.
패션만큼이나 음악에도 조예가 깊던 매튜 윌리엄스는 LA와 뉴욕의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던 도중 이들과의 인연을 만들게 되는데, 그는 레이디 가가의 크리에이티브 팀 'Haus of Gaga'의 첫 번째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정식 론칭에는 실패한 카니예 웨스트의 첫 번째 패션 브랜드 'Pastelle 파스텔'과 그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DONDA 돈다'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패션과 디자인 철학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둘이 전 세계 패션 신에 불러온 어마어마한 변화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예술 행위 전반을 서포트한 매튜 윌리엄스의 크리에이티브가 새삼 더 위대해 보여요. 다양한 방면으로의 관심과 실행 그리고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셈인데,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어울리는 자에겐 행운이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제게 멘토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저를
발견하고 믿어주었으니까요.
제 개인적 능력 이상으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주었어요.
알릭스의 매튜 윌리엄스는 패션 철학이 참 좋은 사람이라 자꾸 끌리는 맛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어 패션 크리에이티브에 녹여내면서 동시대인들과 교류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고, 사람들이 옷을 덜 사는 대신 더 나은 제품을 사길 진심으로 바라며, 제품의 품질과 가격의 최적화를 위해 이탈리아의 Ferrara로 브랜드의 본거지를 옮겨 공장과 직접 소통하며 불필요한 비용과 수고를 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패션의 미래를 그리고 싶다고 하네요).
결국 오래 살아남는
고품질의 옷을 만든다는 건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이죠.
럭셔리 제품을 사면서
비싼 돈을 지불한다는 건
건강한 제품 생산 근무 환경에
값을 내는 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생산형 인물입니다.
저는 원재료 그리고
제조자를 신경 써요.
공급자를 직접 찾아가서 배우고
최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지구와 자연으로부터 탄생하는 아름다운 옷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상처를 주지 않고 최대한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자연보호'에 대한 비전을 브랜드 운영 과정의 곳곳에 심어 넣습니다(환경을 생각하는 건 엘리트적 의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우선순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ALYX의 시작점부터 강조해왔죠). 또한 새 시대의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기계나 컴퓨터가 찍어내는 디자인이 아닌 인간의 손길을 거쳐 감정과 영혼이 담긴 옷을 만드는 일의 미학적 관점에 깊이 심취해 있습니다.
우리는 업사이클 코튼과
리사이클 낚싯줄을 활용하고,
CO2 가스를 활용한
지속 가능한 염색 프로세스를 통해
가죽에 색을 입힙니다.
2021년, 패션 신을 장악한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이 아닐까 싶어요.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매해 반복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코로나가 불러온 의식 개선과 현실 직시 때문인지 올해는 버즈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시류에 편승해 한몫 챙겨보려는 그린 워싱 기업이 점점 더 극성을 부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이런 때에는 줄곧 한 목소리를 내는, 철학이 있고 그것의 일관성을 갖춘 디자이너와 브랜드에 더 이끌리게 돼요(알릭스처럼).
알릭스를 시작할 때부터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죠.
저는 그것들을 포용해왔습니다.
우리 브랜드는
혁신이 아니라 진화합니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알릭스의 매튜 윌리엄스는 '옷'을 만드는 일에 정말 진심인 듯합니다.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오늘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옷,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옷, 소재 취급과 생산 방식에 심혈을 기울이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개인적 이야기와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 충돌하지 않는 지점을 찾아 슬기롭게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
디자이너들의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테이스트 메이커 매튜 윌리엄스는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옷을 만들어 '취향'을 선도하고,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는 이들로 하여금 '나다운' 감각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최소의 브랜딩만으로 자기만의 입지를 탄탄히 다진 개인/브랜드의 공통점은 결국 본질에 충실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알릭스의 매튜 윌리엄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