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주보다 낯선>

짧지만 좋, 아니, 짧으니까 좋, 아니, 그냥 좋았다.

by 스눕피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다. 자신의 본성적이고 본능적인 이기심을 구태여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마음에 여유 하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떠밀면 된다. 부처의 중요한 가르침처럼 내가 처한 상황이 나의 마음을 구속하고, 구속된 마음은 보다 더 잘아지고, 그렇게 잘아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좁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닌 남을 돌보고, 응원하고, 칭찬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비록 B.F.F(Best Friend Forever)일지라도.

음, 이런 생각은 너무 세속적이고 편협한 것일지 모르겠는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통장 잔고를 0원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개인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주던 외부의 점들, 예컨대 학력, 거주지, 직장, 연봉 따위의 조건을 모두 지워버린다면 인품이란 것도 생태나 동태처럼 반토막, 열 토막 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영화 <경주보다 낯선>은 배우 지망생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인 솔뫼와 상희의 오디션과 함께 시작해 둘의 경주 여행, 엇갈린 결과, 미묘한 감정, 뜻밖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발견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며 마무리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휘감았던 것은 '지금 당장 친구 새끼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다.'는 감정과 '그래, 인간이 원래 좀 이기적이지.'라는 단순 무식한 깨달음의 감정이었다. 솔뫼와 상희가 합쳐져서 자아내는 어떤 분위기나 둘이 나누는 대화의 디테일이 그냥 '나'와 '친구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랬고, 언젠가 절친한 친구에게 찾아온 기쁜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지는 못하고, 겉으로 '척'만 했던 옹졸하고 비겁했던 과거의 '나'와 재회한 것 같아서 그랬다.

나는 평생 '영화'보다는 '책'이나 '음악'이라는 메신저와 더 친하게 지내왔고, 대다수의 한국인처럼 '영화'를 즐겨 보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한 편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몰입하고, 생각하고, 교훈을 얻으려고 쪼다같이 발악한다. 전형적인 하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이창동 감독과 도올 선생의 영화 '버닝' 대담을 본 적이 있다. 대담 속에서 이창동 감독은 '버닝'을 제작할 때 염두에 둔 것을 말하며 대충 이런 얘기를 했었다.

'영화 속에 빠져 들어가 하나가 되어 체험하는 일, 그리고 영화 밖으로 빠져 나와 나를 성찰하는 일, 이 두 가지를 고민했다.'


어제 BTV를 켜서 '무료' 영화 코너에 들어가 이것저것 재핑 하다가 러닝 타임이 '짧아서' 선택했던 영화 한 편이 어찌 이리 마음속에 맴도는 것인지......

이창동 감독의 말마따나 내가 영화 <경주보다 낯선>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영화 밖으로 빠져나와 나를 '성찰'해서 일까. 아니면, 이창동 감독을 흉내 내는 남창희의 얼굴이 나를 자꾸 괴롭혀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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