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힐만 듣던 칸예, 위대한 자기 고백의 연결 고리
시대의 현자(광인) ‘Kanye West 카니예 웨스트'는 약 14년 전에 ‘우리 모두에겐 우리 자신만의 배출구’가 있다고 말했다.
칸예는 남들과는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왜 힙합이 꼭 불굴의 정신과 완강한 남성성만을 표출해야 하는지 불만인 사람이었기에 대신 상처받은 남자의 마음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름의 역사와 함께 주류가 된 갱스터 랩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면서 말이다.
1급 지성의 조건이란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도
제대로 기능할 줄
아는 능력이다.
- 스콧 피츠제럴드
칸예는 자신의 데뷔 앨범 <The College Dropout>(2004)을 제작하는 동안 ‘Lauryn Hill 로린 힐’의 역작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1998)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로린 힐'의 데뷔 앨범은 그의 창작에 무한한 영감을 준 선배의 족보였던 셈이다.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은 뉴저지주 출신의 힙합 트리오 Fugees 푸지스의 프런트 우먼 ‘로린 힐’의 솔로 데뷔 앨범이다.
공개와 동시에 평단의 찬사를 받은 이 앨범은 이듬해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려 5관왕을 했다.
앨범 제작 당시 23살에 불과하던 ‘로린 힐’은 심지어 임신 중이었는데,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예민하던 당시의 [모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었고, 자기 신뢰와 의지적 결정으로 강행한 불타는 창작이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며 회고했다.
참고로 그때 태어난 첫 아이(자이언)의 아빠는 ‘밥 말리’의 아들 ‘로한 말리’였고, 푸지스의 또 다른 멤버이자 ‘로린 힐’과 염문설이 나돈 ‘와이클리프 장’은 진짜 아빠는 과연 누구인가의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로린 힐 매니지먼트 크루의 일부는 그녀에게 임신 중절을 권하기도 했다.
언젠간
너도 이해할 거야,
자이언
<To Zion> 중에서
그녀는 이 세상이 가하는 육중한 압박의 한가운데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어린 흑인 여성(유명 아티스트의 지위는 독이다)으로서의 취약성을 진정성 있게 스스로 보듬고 돌아보며, 자신의 무뎌지고 상처받은 감각을 하나하나 되살리면서 앨범을 만들었다.
그녀는 훗날 '그때그때' 느껴지는 실망과 아픔, 배움과 회복 등 모든 개인의 감정에 진솔하게 반응하며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마다 계속 앨범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난 그 아이의
값진 생의 기회를 알아봤어.
그런데 모두가 내게
똑바로 잘 생각해 보라더라.
"커리어를 봐."라거나
"로린, 머리로 생각 좀 해."라면서
나는 대신에 내 마음을
따르기로 결심했어.
<To Zion> 중에서
자기 신념의 고백으로 엮은 77분 길이의 역작(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이 부른 또 하나의 위대한 자기 고백, 그리고 그것이 만든 새로운 역작(The College Dropout),
칸예는 원래 데뷔 앨범의 수록곡 <All Falls Down>의 코러스에 로린 힐의 MTV 언플러그드 앨범의 트랙 <The Mystery of Iniquity>의 일부를 샘플링하려고 했다. 하지만 샘플 클리어에 실패하여 시카고 출신의 여성 보컬 '실리나 존슨'의 버전을 삽입하게 된다.
그리고 2021년 8월, 칸예는 마침내 그의 정규 10집 앨범 <DONDA 돈다>의 10번 트랙에서 '로린 힐'의 솔로 데뷔 앨범의 슈퍼 히트송 <Doo Wop(That Thing)>을 성공적으로 샘플링한다. 로맨틱한 거야? 잘할 거야.
칸예다운 노래 제목 <Believe What I Say 내 말을 믿어봐>과 함께 말이다.
라이프스타일이
널 망치게 두지 마.
마지막으로
사랑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알기나 해 들?
나만의 빛을
좇아가는 마지막 불꽃,
사랑을 추구하는
마지막 열정.
네가 몰라도 되는 일들에
마음을 쓰지 마.
<Believe What I Say> 중에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본인을 어떻게 데려다 놓을 건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일,
개성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문하며 나만의 방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보다 더 크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칸예는 로린 힐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흠뻑 취해 창의의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이번엔 자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내뱉으며 나만의 진솔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힙합의 대세와 역사를 거스르는 전에 없던 독창적인 스타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소개한 칸예다운 노래 가사의 조언을 따른다면) 몰라도 되는 일들에 신경을 끄고, 내 마음이 가리키는 빛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따르는 일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룩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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