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힙합 그리고 디제이 스크루의 찹드 앤 스크루드 뮤직
지역 구분하며 힙합 공부하던 꼬꼬마 시절엔 모름지기 <동부 힙합>을 지고로 쳤다. 다음으론 <서부 힙합>을 즐겨 들었고, 시간이 남을 때 귓속에 욱여넣듯 듣던 것이 더티 사우스 <남부 힙합>이었다.
쉽게 판단하기 좋아하던 중등학교 때의 나로서는 일단 줄 좀 세워 고급 취향의 점을 찍는 일이 다급했다.
이쯤, 아니, 저 위쯤이면 내 듣는 귀의 인증 점수로 적절하겠지? 꾹 점을 찍어보니 꼭대기엔 이스트코스트 힙합 씬의 <우탱 클랜>이 있었다.
서른이 넘고는 정작 학창 시절에 설렁 맛만 보던 90년대와 00년대의 <휴스턴 힙합(남부 힙합)>이 너무 좋아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좋은 쪽으로 확대 해석하기>의 관점에 따르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편협한 힙합 마니아가 되지 않기 위해 균형을 맞추고 싶은 나의 불안한 마음이 뒤늦게 터진 탓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 십 대를 꽉 채운 '힙합 향학열', 그것의 반의 반의 반 정도를 떼어 와 계열과 영향을 따져가면서 공부하듯이 행복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블로그 포스팅 말미에 힙합 음악을 추천하면서 휴스턴의 대표 래퍼는 <트래비스 스캇>이 아니라 <릴 키키>라면서 주접을 떨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고 말이다.
이제는 구름 위에 있는 천상계 랩스타 <드레이크>의 몸속을 흐르는 힙합 블러드의 반절 이상은 '휴스턴'이 수혈한 것이다.
힙합 스타로서의 탤런트를 자신의 고향 캐나다의 <토론토>보다 먼저 알아봐 준 건 미국의 <휴스턴>이었다.
드레이크는 2008년 휴스턴 출신의 음악 제작자 'Jas Prince 자스 프린스'의 소개로 그의 인생 멘토 <릴 웨인>을 만났다.
그리고 이듬해 '자스 프린스'와 '릴 웨인'은 드레이크의 첫 메이저 공연이었던 <휴스턴 웨어하우스 라이브>를 ‘이경영’마냥 진행시켰고, 얼마 후 드레이크는 릴 웨인의 <영 머니 엔터테인먼트>에 개같이 입성했다.
한편 2009년, 엔트리 힙합퍼 드레이크는 그의 커리어 비약을 가져온 세 번째 믹스테이프 <So Far Gone>의 수록곡 'Novemeber 18th'를 통해 H-Town 휴스턴을 공식 샤라웃했다.
이 곡은 <Chopped & Screwed> 힙합 스타일의 길을 닦은 휴스턴의 레전드 프로듀서 <DJ Screw>의 미쳐 돌아버린 비트(June 27th)를 업사이클링한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스크루 뮤직과 스크루 업 클릭*을 사랑하는지 알아요?
휴스턴의 힙합 음악은 내 인생 그 자체라고요.
섹시하고 느긋한 이게 힙합이죠!
저는 그 감정을 느끼려고 살아요.”
*Screwed Up Click(S.U.C)
DJ 스크루가 결성한 휴스턴 랩 콜렉티브로 릴 키키, 빅 포키, 팻 팻 등이 참여함.
90년대에 들어 DJ 스크루의 턴테이블 피치 컨트롤과 함께 귀신처럼 느리고 뭉개지며 툭툭 잘린 <찹드 앤 스크루드> 뮤직(이하 스크루드 뮤직)은 휴스턴 래퍼들을 하나로 결집했다.
스크루드 뮤직은 정량 이상의 코데인 시럽(감기약)과 탄산음료 등을 함께 섞은 Lean(린)을 마시며 DJ 스크루의 비트 위에서 밤새워 프리스타일 랩하고 환각하던 일부 휴스턴 래퍼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엮여서, 느리게 흘러가며 빙글거리는 눈 앞의 마약 작용을 대변하는 주제곡처럼 비치기도 했는데,
정작 DJ 스크루는 ‘찹드 앤 스크루드' 뮤직 스타일의 고안 배경을 “마리화나의 작용 그리고 가사를 좀 더 명확히 듣기 위함”이었다고 몇 없는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한편 DJ 스크루 본인은 2000년 11월 '린' 과다 복용으로 스물아홉의 나이로 사망했다.
DJ 스크루의 기깔 난 믹스테이프를 구매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그의 집 앞에 장사진을 쳤고, 그가 고안한 스크루 비트 위에서 랩하고 놀던 Lil Keke, Z-Ro, Paul Wall, Slim Thug, Lil Flip, Mike Jones 그리고 위대한 UGK 등의 아티스트가 선보인 예술 작품은 미국 전역에 <휴스턴 힙합 스타일>을 유의미하게 각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들만의 리그, 그 판이 보다 넓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영향은 힙합의 영역을 거뜬히 넘어 다방면의 음악 장르로 여전히 유효히 전승되고 있다.
어느덧 미국 힙합의 주변부를 배회하는 서당개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안전하고 확실하게 와닿지를 않아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용기의 그릇이 자꾸만 작아진다.
그리고 한때나마 매주 힙합 신보를 추천하던 나로서는 정말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요즘 Z세대 미국 힙합은 영 재미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도통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아서 억지로 듣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것을 고백하겠다.
더구나 머리의 한계로 자꾸 까먹거나 새 사실의 발견으로 매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고전 힙합은 매일, 매주, 매달, 매해 공부할 것 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없이 겸손해진다.
하지만 <뿌리>를 잊지 않는 래퍼들의 의리 있는 인생 자세나 시류에 편승하며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징할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곤조 있게 밀고 나가는 세련된 <일관성>과 같은 개인 성공 방정식의 필수 요소를 잊을만하면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음악 감상> 그 이상의 덕을 쌓는 기분이 든다.
힙합아, 항상 고맙다.
애향심으로 가득한 휴스턴 출신의 래퍼 <릴 키키>는 “인생에는 부침이 있겠지만, 늘 고향이 내 뒤에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갑작스럽게 사망한 휴스턴 출신의 또 다른 래퍼이자 '릴 키키'와 '스크루드 업 클릭' 콜렉티브의 멤버로 활약한 <빅 포키>를 추모하던 휴스턴 힙합 씬의 전설 UGK의 <번 비>는 “고향에서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래퍼”였다면서 그를 “미워하긴 어렵고, 사랑하긴 쉬운” 사람이었다며 추앙했다.
아무튼 그들은 결코 고향을 잊는 법이 없다.
나는 저들의 저 오글거리고 불타는 애향심을 사랑한다. 그들은 도시를 '대표'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대중 전시했기에 '진정성' 있게 마이크 앞에 서서 진짜 '나'와 '도시'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들려줄 수 있었다.
사실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지 '고향'이라는 <무조건 내 편>이 있다는 건 정말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어느 새부터 힙합이 안 멋지게 된 것은 힙합의 근본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단지 랩 스킬이나 패션 스타일 그리고 겉멋에만 매몰된 래퍼들과 그들을 따르는 친구들이 만든 음악 속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를 단 하나도 찾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늘 그랬듯 추천 노래 모음집을 하나 삽입하고 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미국 서던 힙합을 가장 똑똑하게 이해하고, 한국 힙합씬을 새로운 업 스테이지로 안내했으며, K-힙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고 증명한, 부정할 수 없는 역대 최고의 코리안 랩스타 <Dok2 도끼>의 최애곡 하나도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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