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기분이 삼삼하거든요.
모든 오해와 실수,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의 답답함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의 방황도 충분한 시간의 끝에선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번엔 다를 것 같은 절박함도 새살 오르듯 밀고 나오는 정직한 진실의 시간 앞에서 전부 엄살이 됐다.
시간은 많은 걸 흐려지게 하지만, 어떤 건 시간 속에서 분명해진다. 사랑과 믿음이 그렇다. 사랑하고 믿는다는 말은 아무나 아무 때나 쓸 수 있다. 사라지는 인연이 되느냐 타오르는 연인이 되느냐는 그래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부르는 차이다.
몇 주 전 친구가 선물한 최진영 작가의 단편 소설 <오로라>를 어제야 읽었다. 항균 온수 세탁 30분, 고온 건조 30분, 도합 1시간, 주말 늦은 오후의 코인 빨래방, 거센 물소리 속에서 건조한 문장에 흠뻑 젖어들었다.
제주에 도착한 주인공은 35살의 겨울을 홀로 보낸다. 겁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안 하던 짓을 한다. 지금의 나와 같은 처지. 자꾸만 울리는 누군가의 벨소리를 무시하며 마음의 돌을 쌓는다. 전원을 끌 수도, 번호를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건, 아니, 그러지 않은 건 그리움 혹은 관심 때문에. 위스키 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캐럴 덕분에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깨닫는 그 무감각까지 요즘의 나와 닮은 것 같아서 참 슬펐다.
처음엔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이 소설 제목인 줄 알았다. 바보처럼.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사랑을 감출 수 없어요.
뭘 감추고 들키고 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점점 더 그런다. 그러니까 다가올 서른여섯에는 조금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살아 보기로 한다.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건강한 연말 보내세요.
패션, 힙합 포스트 다시 많이 쓸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옷깃을 여밀 때면 생각나는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