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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코가 눈을 찌르게

멕시코의 Pointy Boots, 과라체로 부츠 이야기

by 스눕피


스눕피의 패션 에세이


약 15년 전,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가죽 공장이 즐비한 멕시코 북동부의 아주 작은 도시 ‘마테우알라(Matehuala)’의 가죽 수선공에게 자신의 카우보이 부츠 수선을 맡겼다.


요청 사항은 간단했다.


“부츠의 앞코를 터무니없이 높이 말아 올려주세요. 눈을 찌를 정도의 수준으로 연장해 주시기만 하면 돼요.”


잠시 후, 남자는 스팽글이 촘촘히 박힌, 소용돌이처럼 과장된 앞코를 가진 부츠를 건네받았고, 그 모양에 크게 만족했으며, 새 신을 신고 곧장 클럽으로 향했다.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무대 위에 오른 남자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멋진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교회에 가는 꼬마 아이들부터 디스코에 나가는 청소년들까지, 정체불명 사나이의 패션에 감화한 많은 동네 남자들이 자기만의 DIY 뾰족 부츠(Pointy Boots)를 찾아 신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누구의 신이 더 뾰족한지를 서로 겨루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누군가는 정원용 호스로 직접 부츠를 만들었고, 플라스틱 폼을 이용해 신발 끝을 연장하면서 화려한 장식을 더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 과장되게!


더 기이하게!



이토록 개성적인 멕시칸 포인티 부츠의 진짜 이름은 과라체로 Guarachero 부츠다.



통제가 불가한 극단적인 추구미와 실로 엄청난 비율의 대담한 멋을 지닌 과라체로 부츠는 엘프의 신발마저 평범한 꼴로 격하시킨다.



이 부츠의 멋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단 두 가지다.


딱 붙는 바지와 착 붙는 음악.


스키니 진을 입은 남자들은 멕시코의 전통 댄스 음악과 일렉트로닉 비트를 믹스한 Tribal 뮤직 아래에서 포인티 부츠의 비정상적으로 변주되어 뾰족하게 솟은 앞코를 자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놀이(유행)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멕시코 이민자 공동체를 경유해 미국의 텍사스와 오클라호마를 찍고, 2014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최첨단 패션 런웨이에 당도했다.



뭐가 달라도 다른 그 이름, Comme Des Garcons.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SS15


그들이 만든 신발(Comme des Garcons Jugo Boots)과 오리지널 과라체로 부츠와의 차이가 있다면 '카우보이'가 아닌 '첼시'를 기반으로 뒀다는 것, 그리고 앞코 길이가 53cm로 다소 착하다는 점 정도가 될까(원본 부츠의 앞코 길이는 90cm에 육박한다).



우리는 종종 극단의 미학과 마주하고,

그것에 대한 감상 또한 극단으로 갈라진다.


우스꽝스러운 유머인가, 끝내주는 스타일인가.

전통에 대한 반발인가, 미래에 대한 기대인가.

제대로 미친 걸까, 완벽한 개성일까.


어찌 보면 한가한 말장난 같지만,

살다 보면 장난처럼 보이는 것과

진짜 장난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건 세상은 가끔 진짜 말도 안 되는 것을 필요로 하고, 그 필요에 투명하게 응답하는 일이란 매우 용감한 처사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놀림받을 용기, 아니, 어쩌면 미움받을 용기를 낸다는 건 진짜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니다.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It's okay, it's okay, it's okay, it's o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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