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앤 머시Love and Mercy'

비치보이스, 브라이언 윌슨, 펫 사운즈 그리고 스마일

by 스눕피

사람의 음악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앨범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나 싶다.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계속 손이 가는 앨범,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마음이 즐겁고 상쾌해지는 앨범 말이다. 물론 온종일 하나의 앨범만을 줄창 듣는 건 고역에 가까운 일일 테지만, 한번 자신에게 착 들어맞아 영혼을 나눈 앨범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좀처럼 그것의 고유한 빛을 잃지 않고 영롱히 반짝인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그런 앨범들이 있다. 힙합 장르의 경우, 그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려 열거하기 힘들 정도인데, 이건 자랑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나의 시간을 남의 음악을 듣는데 열과 성을 다해 쏟아 바쳤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도리어 나의 한심함을 뽐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감정이 인다.


힙합 이외의 장르의 경우를 놓고 말해 본다면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앨범’을 꼽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고교 시절, 나의 야자 시간을 통째로 바치곤 했던 전설의 레전드 Stevie Wonder의 ‘Hotter Than July’, 대학 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를 떠오르게 하는 Donny Hathaway의 ‘Donny Hathaway Album’, ‘JAZZ알못’의 크리스마스를 매해 따뜻하게 만들어준 Vince Guaraldi Trio의 ‘A Charile Brown Christmas’, 음,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헉, 정말로 중요한 앨범을 하나 빠트릴 뻔했다. 바로 미국의 전설적인 락 밴드 '비치보이스'의 베스트 앨범 ‘Endless Summer’다.



2분 전후의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그야말로 신나는 멜로디 라인, 유치하고 귀엽기에 더욱 소중한 감정을 일으키는 노래 가사들, 대단한 기교는 없지만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가며 우리의 귀를 뻥 뚫어주는 리드 보컬 마이크 러브의 담백하고 시원한 목소리, 건강한 청년들이 차곡차곡 힘차게 쌓아 올리는 기분 좋은 화음을 담아낸 비치보이스의 Surf Music은 2018년의 내게 '여전히' 질리지 않는 '여름 테마송'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어제는 영화 <러브 앤 머시Love and Mercy>를 보고 울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그야말로 엉엉 울었다. 브라이언 윌슨의 무표정이, 브라이언 윌슨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브라이언 윌슨의 흰머리가 나를 울렸다.


영화 <러브 앤 머시Love and Mercy>는 비치보이스의 리더이자 메인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윌슨을 둘러싼 두 시점(時點)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하나의 시점에서 영화는 서프 뮤직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발악하며 불후의 앨범 <Pet Sounds>를 제작하는 동안 브라이언이 느끼는 개인적인 고통과 가끔의 행복을 그린다.

다른 시점에서 영화는 미국 내에서 저조한 평가에 그친 <Pet Sounds>를 뛰어넘기 위해 앨범 <SMiLE> 제작에 뛰어드는 브라이언의 모습, 하지만 극심한 환청, 강박증 등의 정신 질환에 시달리며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는 브라이언과 그를 치료한다는 명분 하에 투입된 치료사 ‘유진 랜디’의 도를 넘는 통제와 억압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서 브라이언이 처한 불운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캐딜락 자동차 딜러 ‘멜린다 레드베터’의 진심 어린 사랑과 따뜻한 배려를 그린다.


영화는 브라이언 윌슨의 자전적인 성격을 띠는데, 와중에 선과 악의 구도가 대단히 분명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내 인생을 돌아보며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선’의 인물과 ‘악’의 인물을 떠올려봤다. ‘선’의 인물은 넘쳐났고, ‘악’의 인물은 단 한 사람도 기억해낼 수, 아니,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이건 내가 무탈하게 굴곡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브라이언 친아버지의 지독한 이기주의와 폭력, 치료사 유진 랜디의 잔인하고 극악한 통제는 보통 사람이 쉽게 상상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문제라고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찾아 즐기던 비치보이스의 라이브 영상 속에서 '브라이언 윌슨'은 늘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한번 왕창 찌끄러진 깡통은 좀처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새삼스럽게 당연한 사실을 나는 시종일관 그늘진 그의 불편한 얼굴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Wouldn’t it be nice’를 부를 때도, ‘Surfin’ USA’를 노래할 때도 그는 편히 웃지를 못했다.


언젠가 브라이언 윌슨은 ‘Pet Sounds’의 수록곡 ‘Wouldn’t it be nice’의 제작 당시를 돌이켜 보며 ‘A Great Feeling of Great Joy’를 찾아 노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아버지의 상습적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진 가슴 아픈 기억, 완벽주의의 틀 속에 자신을 밀어넣고 술과 마약에 흠뻑 젖어 분열되어 버린 자아, 그렇게 완전히 지쳐 버린 브라이언의 꿈은 인생의 순수한 사랑과 위대한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었을까. 러브 앤 머시 말이다.


"우리가 빨리 나이를 먹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럼 우리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거 아냐."

"우리 같이 살면 좋지 않을까? 너와 내가 사는 이 세상 속에서 말이야."

"우리 서로 잘 자~ 얘기하고 함께 산다면 더 행복해질 거란 걸 알잖아. 새 날이 밝으면 같이 일어나 하루를 함께 보내고 밤새 서로 꼭 껴안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우리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들, 이 모든 키스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 좋을 것 같지 않아?"

"어쩌면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바라고 기도하면 이뤄질지 몰라. 자기야, 그러면 우린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Beachboys 'Wouldn't It be Nice'



*잡설1_ 비치보이스의 서프 뮤직은 플레이하는 순간, 젊은이들이 득시글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바닷가 앞 햄버거 가게로 나를 ‘순간 이동’시킨다. 그곳에선 달콤하고 고소한 감자튀김 냄새와 미국산 소고기의 짙은 향이 진동한다. 그리고......

아, 집어치우자. 가보지도 않은 캘리포니아를 상상만으로 구체화하려니까 밑천이 드러난다. 감자튀김 냄새와 미국산 소고기의 짙은 향을 내뿜는 바닷가 앞 햄버거 가게라면 월미도의 롯데리아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잡설2_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여러 에세이에서 심심할 때마다 비치보이스의 서프 뮤직을 언급하고 때로 그것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그는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을 독자에게 알리고, 특정 행동-예컨대 음악을 들어보게 하거나 책을 읽어보게 하는 등의 은근하지만 강력한 권유-을 유발하도록 만드는 재능을 타고난 것 같다. 괜히 대문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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