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10)
무성한 추측의 말이 난무하는 어떤 죽음의 뒤탈을 보고 있노라면 제아무리 힘이 센 진실도 그 지저분한 말들의 싸움에 제대로 기 한번 펴보지 못하고 쪼그라들어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새로운 말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 빈센트 반 고흐의 ‘말’ 많은 죽음을 추적해나간다. 영화는 그의 부쳐지지 못한 편지와 함께 95분의 여정을 시작한다.
반 고흐를 만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존재 또는 흥미로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것은 낭만적 추측이 아니라 현실적 호기심에 가깝다. 그림에 미쳐 있는 그가 보이는 모든 기이한 행동은 본능과 자유를 닮아있기 때문이리라.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은 차라리 담백하고 진실한 문학에 가깝다.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 그리고 작품에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입문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영화는 무려 100명의 화가가 동원돼 10년에 걸쳐 완성한 유화를 스크린에 옮겨놓았는데, 그야말로 색다르다. 약간의 이질감이 도리어 축복처럼 느껴진달까.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속에서는 연출자의 치열한 고민한 흔적(원작이라는 굳고 단단한 테두리 안에 얼마큼의 자유를 허락할 것인가.)을 엿볼 수가 있다. 더욱이 그 소설이 고전 명작이라면 그 고민의 무게와 질감은 더욱 분명하게 밀려 들어올 수밖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동명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신데렐라>와 <토르: 천둥의 신>을 감독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했는데, 영상의 미가 이야기의 긴박함을 압도한다. 다시 말해, 영화 자체는 심심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설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자연스러움처럼 이 영화는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그때그때의 대사를 옮겨 적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소설 속 단어나 문장 하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때로 압도적이듯이 영화 속 일견 사소한 듯 보이는 대사와 장치 하나도 신경 써야만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강박일지도 모르겠지만.
“로맨스엔 대가가 필요하다.”
“살인은 안된다. 아무리 쓸모없는 인간이라도, 우리는 짐승보다 나아야 합니다.”
“진실은 안에 있다.”
“당신의 감정은 불법이 아니야.”
“망치를 들고 다니면 못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