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주>

오늘처럼 추운 날, 마음을 덥혀주는구나.

by 스눕피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 음악, 영화, 드라마, 소설, 장소와 만나는 일은 대체로 우발적이었다. 애쓴다고 성공한 적 없었고, 추천받아서 해결된 기억도 별로 없다. 주변의 평점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내게 와 닿지 않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심지어 진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미친 듯이 추운 날에 우연히! 그것도 지인이나 온라인 댓글러의 평점 하나 살피지 않고! 오로지 포스터와 제목을 보자마자 느낀 직감에 의존한 선택으로! 좋은 영화를 한편 만나 마음을 덥혀놓으니 묘한 충일감에 이리 뿌듯할 수 없다. 아, 영화 <영주> 이야기다.

동생의 일탈에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 영주, 그녀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원수의 본진에 침투해 이 난국을 해결할 방도를 마련함과 동시에 일종의 복수까지 행하려는 일타쌍피를 노린다. 하지만 복수가 그리 쉽게, 뜻대로 될 리는 없다. 심지어 원수는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기까지 한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는 원수의 따뜻한 마음에 긴장을 푼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는 원수가 좋아지려고 한다. 나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원수의 따뜻한 배려 그리고 나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밝히고 싶지 않은) 주인공 영주의 감정 대혼란. 영주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많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건 '인간이 본성적으로 지닌 선함에 대한 대책 없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은 '극악'을 이야기할 때도 기꺼이 '선'을 볼 줄 아는 존재이고, '선'을 이야기할 때면 한술 더 떠 '최선'을 바라보려는 존재이니까. 나는 영화 <영주>의 이야기 속에서도 물론 이와 유사한 맥락을 짚을 수 있었다(차성덕 감독님,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끝까지 ‘선’을 믿으며 영화관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생각’을 고쳐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스포일링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기에 영화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들은 소개하기가 조금 거시기하다. 하지만 스포일링이 되지 않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내 나름대로 '1줄'로 평해보자면(김밥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남녀 관계 말고. '


오래간만에 좋은 한국 영화를 만나 기분이 쾌하다.

술술술, 영화가 술술술.


* 영화 <신과 함께>는 투머치한 언플과 '감동을 쥐어짜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라는 친구들의 관람평 등을 통해 만들어진 막연한 내면의 거부감으로 믿고 거르고 있었는데, 배우 김향기 님의 연기를 보기 위해 어디 한번 볼까 생각 중입니다. <영주>에서의 좋은 연기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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