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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후임과 도니 해서웨이

“맹인에게 햇살을 전하려면, 그의 음악을 들려주세요.”

by 스눕피



도니의 추억


(안타깝게도) 딱히 그립진 않은 나의 군 시절,


음, 그러니까 2011년 여름,


생활관 내 몇 안 되는 에어컨 가동 공간이었던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은 뿔테 안경을 쓴 빡빡이 전우들로 언제나 북적였다.


적색 암막 커튼이 가둔 얼음장 같은 냉기와 대충 씻는 청년들의 물 비린내 그리고 거칠 것 없는 20대 남자들의 호르몬 쉰내로 가득하던 방.


그곳의 구석 자리엔 늘 같은 기이한 자세로 고물 컴퓨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헤드셋을 쓴 채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던 후임이 하나 있었다.


대충 이런 모습?


마이애미 히트의 드웨인 웨이드를 빼닮은 주제에 어쩌자고 농구까지 잘하던, 그야말로 꼴값하던 착한 동생, 지금은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14년 전) H공대 휴학생 장○○.


지금은 사라진 알소동(알앤비 소울 동영상)이라는 흑인 음악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 레전드 가수들의 각종 화질구지 라이브 동영상을 감상하며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장○○ 일병, 어느 날 조용히 스윽 다가가 나는 스티비 원더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을 건네니, 바보처럼 웃으며 흥분해 떠들던 그의 모습이 무척 생생한데, 아무튼간에 이 친구가 유독 좋아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남성 소울 뮤직 아티스트가 있다.


“스눕피 상병님도 도니 좋아하십니까?”


복음 가수의 외손자로 태어나 고향 세인트루이스의 교회에서 무려 3살의 나이로 가스펠 활동을 시작한(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최연소 복음 가수이자 미국 소울 음악의 초석을 다진 천재 뮤지션.



흐르는 음악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한 번에 파악하는 비범한 능력과 함께 작곡, 편곡, 지휘, 연주(키보드와 타악기), 보컬에 두루 능했던 전방위 아티스트, 도니 해서웨이 Donny Hathaway.



그리고 그를 설명하는 한 음악 평론가의 실로 아름다운 찬사,


맹인에게 햇살을 전하려거든,
해서웨이의 음악을 들려주세요.



1964년, 도니 해서웨이는 예술 장학생으로 하워드 대학교에 입학했고, 클럽 무대 활동을 거쳐, 커티스 메이필드와 The Impressions를 위한 연주, 작곡 및 프로듀싱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소울, 블루스, 가스펠, 재즈 등의 다양한 음악 장르를 아우르면서 맑고 강렬한 보이스와 함께 독보적인 감성과 깊이를 자랑하며 흑인 보컬의 전통 계보를 이은 도니 해서웨이는 의미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네 장의 예술 같은 연년생 솔로 앨범 <Everything Is Everything>(1970), <Donny Hathaway>(1971), <Live>(1972), <Extension of a Man>(1973)을 남겼고,



특히, 1972년, 로버타 플랙과 함께한 듀엣 앨범(Roberta Flack and Donny Hathaway)으로 이듬해 열린 제15회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1967년, 도니 해서웨이는 하워드 대학교 재학 시절 만난 율랄라 밴과 결혼했고, 슬하에 두 딸을 두었지만, 1978년 이혼했다. 그리고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세 번째 딸을 낳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로 인해 외할머니의 손에서 성장한 그는 평생 정서적 결핍 및 외로움과 싸웠고,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으로 힘들어했다.


그의 세 번째 딸 도니타 해서웨이는 아버지의 정신적 고통에는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와 외로움, 그리고 가족 내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1979년 1월 13일, 도니 해서웨이는 뉴욕 맨해튼의 Essex House 호텔 15층에서 추락 후 숨진 채 발견됐다. 공식적인 사인은 자살이었고,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3살이었다.



사망 전후, 심각한 우울증과 조현병을 앓던 도니 해서웨이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거나 녹음실이나 공연장에서 도청과 감시를 받고 있다는 망상을 반복적으로 표현했고, 이로 인해 그의 인간관계는 더없이 악화됐다.


하나님의 선물 같던 성스러운 복음 신동은 결국 극심한 정신적 불안 속에서 하늘로 덧없이 돌아갔다.



생전 도니 해서웨이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한 이들은 그의 음악을 들으면 ‘반드시 들어야 할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 든다거나, 너무나 진한 그의 감정선 때문에 바로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나고, 온몸이 전율한다고 말했다.


영혼이 부르는 음악(Soul)이 주는 어엿한 선물이었을까?



그의 음악은 말이죠,

“내겐 할 말이 있으니,
당신은 반드시 들어야만 해요!“
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같아요.

- 음악 프로듀서 조 마딘



어디로 갔는지 알길 없이 휭 사라져 버린 나의 20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마냥 행복하던 그때, 도니 해서웨이의 음악은 내게 달콤한 산들바람이었고,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 한없이 우울하던 그때, 그의 음악은 내게 적잖은 위로를 주는 든든한 치유제였다.


“A Song for You”, “Someday We’ll All Be Free”, “Little Ghetto Boy”,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 “I Believe in Music”, “Love, Love, Love”, “This Christmas” 그리고 “For All We Know”까지, 정서적으로 깊고 그윽한 그의 목소리는 언제고 의아할 정도로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더없이 감사하고 아름다운 나의 현재 30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의 여정,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부침과 관계의 어려움은 여전히 나를 시험하겠지만, 영혼이 담긴 좋은 음악이 곁에 있다면 또 한 번의 힘을 내어볼 수 있을 것도 같다.


10대엔 스티비 원더 옹을,


20대엔 도니 해더웨이 옹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고맙습니다!


P.S
내일은 잊고 살던 군대 후임에게 연락을 한 번 해봐야겠어요ㅜㅜ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An9z_y3CNvs?si=IN8Sadhx4yvmUSoJ

"사랑, 사랑, 사랑아, 왜 이토록 늦게야 내게 찾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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