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기억하도록 애써라.
폴 오스터의 희곡 <숨바꼭질>의 한 장면.
옛 기차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에 관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죠.
<이걸 잊지 않도록 애써라. 한 번밖에는 보지 못한다 해도, 영원히 기억하도록 애써라.>
하지만 기억할 수가 없었어요.
모든 게 너무 빨리 지나가서, 내 머릿속에 희미한 얼룩이 되어 버렸죠.
지금 그게 보여요.
아름다운 얼룩이.”
한 번의 인상을 영원의 기억으로 남기려는 노력은 정말 기특하다. 희미한 의식의 조각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매만지는 건 창조적이다.
그러나 현실감이 없다.
그래서 더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97년도 겨울이었나. 인천역으로부터 서울 송파구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할아버지가 연신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말하라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손이 나를 어루만지고, 장롱 속에 갇혀 있던 할아버지 잠바에 배인 구수한 곰팡내가 훅 끼쳐올 때, 나는 사랑받는 기분을 느꼈고, 그 안도감은 나를 참 편안하게 했다.
한쪽 귀와 눈이 어두운 할아버지에게 나는 크게 말했고, 다시 한번 초점을 맞췄다.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누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온다면,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과 괜한 노파심 그리고 포근한 옷 냄새를 이야기할 것이다.
저기 저 <숨바꼭질>의 대사처럼 ‘희미한 얼룩’ 같은 기억이지만, 돌아보니 결국 ‘아름다웠던 얼룩‘으로 내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 버렸으니 말이다.
어느덧 9월,
철없고 무례하고 치기 어렸던 어떤 기억들이 나를 간지럽힌다.
하지만 나도 보인다.
지금은.
모두 아름다운 얼룩이었음을.
■ 다음 주에 일본 가니까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