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슨 자매와 더 로우

가장 시끄러운 삶이 만든 가장 조용한 럭셔리 브랜드

by 스눕피


과잉으로 시작된 유명세


1987년,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은 ABC 시트콤 <Full House>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다. 당시 둘은 생후 9개월이었다. 93년, 자매는 엔터사를 차렸고, 95년에는 장편 영화를 만들었으며,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3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둘은 18세에 이미 억만장자가 됐고, 엔터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과도한 대중의 관심은 줄곧 자매를 못살게 굴었다.



도망칠 수 없었던 일상


2004년, 올슨 자매는 일상의 회복을 위해 뉴욕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유명세가 공간의 이동(캘리포니아→뉴욕)만으로 해소될 리 만무했다. 열 대의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공공재의 삶이 뉴욕에서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자매는 Dior 선글라스와 스타벅스 벤티 컵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고,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대부분의 수업을 놓쳤다. 대학 입학과 맞물려 자매는 프라이버시 침해 및 미디어 압박으로 인해 힘들어했고, 특히 메리 케이트는 섭식 장애로 전문 치료 시설에 입소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결국 둘 다 대학을 중퇴했다.



의도치 않은 트렌드


그런데 당시 그녀들이 보여 준 오버사이즈 스웨터와 레이어드 옷차림은 “hobo-chic” 혹은 “homeless chic”로 불리며 어쩌자고 또 한 번의 소란스러운 패션 트렌드를 만들었다. 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눈에 보이는 옷을 닥치는 대로 껴입었을 뿐인데.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소음이 되는 삶을 상상해 보라. 끔찍하다.



보여지는 삶의 피로


보여지는 삶의 피로함과 통제할 수 없는 노출 그리고 사생활 파괴의 괴로움. 이러한 경험은 이후 올슨 자매가 선택한 인생의 방향, 다시 말해, 익명성과 침묵, 설명을 최소화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제가 된다.


연기 활동도 중단하고 “스스로 대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 자매는 ‘완벽한 티셔츠’를 제작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12살 무렵, 월마트와 협업하여 아동 의류 라인을 론칭해 본 실무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완벽한 티셔츠라는 가설


1년 반의 시간.


프렌치 심(French seam) 하나로 뭉침과 주름을 방지하는 티셔츠를 제작했다. 네크라인 안쪽에 로고 대신 섬세한 골드 체인을 매단 티셔츠. “이름이나 로고 없이도, 좋은 원단과 좋은 핏으로 잘 만든 옷이라면 팔릴까?"라는 가설을 검증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세를 지우고 싶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소량 생산이었지만, 실제 판매가 이뤄졌고, 제품의 완성도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었다), 자매는 앞으로 더 나아갈 이유를 찾았다.




우리가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라는 걸 알리고 싶지도 않았죠.
우리는 신중한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자랐어요.



과시를 거부한 선택


2006년, 패리스 힐튼과 니콜 리치의 시대. 과시적 소비가 넘실대던 그때, 올슨 자매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맞춤 양복의 성지, 런던의 세빌 로우(Savile Row)에서 브랜드 네이밍의 힌트를 얻었다. 티셔츠에서 시작해 탱크톱, 레깅스, 캐시미어 드레스, 블레이저, 카디건, 슬리브리스 스웨터 등 7가지 기본 아이템으로 라인업을 확장했다. 고급 소재와 완벽한 핏을 통해 “몸에 걸치면 바로 내 옷처럼 느껴지는” 감각을 추구했다. 단순한 제품 그 이상, 새로운 시대의 럭셔리에 대한 선언이었다.


The Row Fall 2010


조용한 제도권 진입


2010년, 더 로우 The Row는 뉴욕 패션 위크 첫 런웨이 쇼를 마쳤다. 19개 룩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고, 이듬해에는 첫 핸드백 컬렉션도 출시했다. 이후 2010년대, 자매는 CFDA(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 패션 어워즈 최연소 수상 등 제도권 성과를 확인하고, 가구와 예술품을 배치한 갤러리 같은 공간을 연출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차례로 오픈하며 비즈니스를 확장한다. 그리고 2018년, 남성복 라인을 론칭하고, 2019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다. 그리고 현재 더 로우는 37개국 160개 이상의 스토어에서 최상의 상품을 판매 중이다.


Los Angeles Store - The Row



말하지 않는 방식


급변과 성장 속에서도 브랜드의 운영 방식은 일관됐다. 패션쇼와 인터뷰는 최소화했고, 컬렉션에 대한 설명 역시 제한적으로 유지했다. 대신 품질과 정확성이 브랜드의 핵심 기준으로 작동했다. 그렇게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과 과장되지 않은 실루엣을 품은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 더 로우의 아이템은 결국 가장 정제된 럭셔리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


The Row Spring/Summer 2023



익명성이 곧 럭셔리입니다.



비용의 정직함


더 로우의 가격 정책은 일반적인 럭셔리 브랜드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기본 티셔츠 한 장에 450달러, 플립플랍이 690달러에 달하며, 캐시미어 코트는 약 1만 5천 달러, 악어가죽 가방은 2만 9천 달러를 호가한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 저항이 전혀 없다. 비싼 게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든 제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이러한 성공적 브랜딩의 근간에는 최고급 원단과 숙련된 장인의 정당한 공임비라는 운영 방식이 놓여있다. 화려한 미디어 플레이와 말뿐인 철학 그리고 막대한 마케팅 예산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의 결과물을
완벽이나 완성 혹은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제품으로
바라봐 준다면, 그건 기쁜 일이죠.


The Row Resort 2026



침묵이 만든 가치


2024년 기준, 더 로우의 기업 가치는 약 10억 달러에 이르렀다. 샤넬을 소유한 베르트하이머 가문과 로레알의 베탕쿠르 가문이 소수 지분을 투자했고(단순한 셀럽 브랜드가 아닌, 장기적으로 관리 가능한 럭셔리 하우스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현재 자매는 여전히 대주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애슐리 올슨은 브랜드가 매년 20~30% 이상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업계는 더 로우의 연간 매출 규모를 2억 5천만 달러에서 3억 달러 사이로 추산하고 있다.


2025년, 올슨 자매는 통산 7번째 CFDA 패션 어워즈 수상을 기록했다.



지속 가능한 럭셔리


자매가 선택한 결핍과 침묵, 그리고 익명성의 길은 단순한 취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과도한 노출과 설명의 시대에 대한 분명한 거리 두기였고, 브랜드를 단기 소비가 아닌 장기적 신뢰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방식이었다.


팬데믹 이후 '조용한 럭셔리'라는 말이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로 소비되기 이전부터, 더 로우는 이미 그 가치를 실천해 온 대표적인 브랜드였다. 가장 시끄러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기에, 무엇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던 셈이랄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미학적으로도, 비즈니스적으로도 유효했으며, 더 로우를 ‘지속 가능한 럭셔리’라는 드문 범주에 올려놓았다.


■ 오늘의 지속 가능한 명반(초록 머리 그 친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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