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시작과 끝에서, 2편의 패션 칼럼
올해 1월, 남성지 '맨 노블레스' 2월호에 패션 칼럼 <2025년 격변의 패션 시대>를 기고했고, 며칠 전에는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내다보며 <2026년 패션 트렌드: 격변의 끝에서, 옷 입는 즐거움을 다시>라는 패션 칼럼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패션 콘텐츠 사업부에 기고했어요.
블로그에 웬만해선 외고와 관련한 이야기를 잘 풀지 않는 편인데, 올해 <스눕피의 패션 이야기> 탭에 많이 소홀하기도 했고(밖에서 하도 딴짓하고 다녀서), 무엇보다 2025년의 시작과 끝에서 기고한 "비슷한 결을 지닌(수미상관의 간지로다가 하나의 연결점을 갖는)" 한 쌍의 칼럼을 함께 읽어보시면, 요즘 글로벌 패션 씬이 돌아가는 흐름을 가볍게나마 감 잡아보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소개해드립니다.
이런 홍보성 포스트는 새삼스럽고, 무려 지양하고 있지만, 이번 건은 해가 가기 전에 블로그에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커서요. 아무튼 2025 신년 칼럼은 바로 아래에 전문을, 2025 연말 칼럼은 관련 블로그 링크를 전달드릴게요.
내일은 2025년의 마지막 에세이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YI, 썸네일은 셀린느의 마이클 라이더이고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냥 간지가 뒤지는 바람에.
■ MEN Noblesse 2025년 2월호 칼럼 기고
<2025년 격변의 패션 시대>
2024년은 럭셔리 패션 산업의 유동성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급증하고 대표 브랜드의 매출 지원군이었던 중국 시장이 냉각하면서 뚜렷한 성장 둔화를 보였고, 이미지 포화의 시대에 까다로운 안목을 갖춘 고객의 선호 변화와 신중해진 소비 지출로 인해 패션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그러나 미묘하게 다른 혁신을 요구받는 역설에 직면했다.
이에 전통 패션 하우스들은 경직된 업계의 험난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보다 강력한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채용, 해고, 재협상이 연쇄적으로 어지럽게 일어났다. 대중의 시선을 몰고 다니며 브랜드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실제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의 행선지에 관한 가십과 추측 보도도 함께 쏟아졌다. 그들이 숭고하게 풀어내는 패션 비전이 투자자, 주주, 경영진의 이해를 넘어 세계 경제의 주요 기둥이 된 패션 산업의 흥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2025년은 혼란 끝에 어렵사리 새집에 안착한 유명 디자이너들이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의 발전을 위한 개성적 리더십을 펼쳐 보일 차례다. 올해를 관통하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바로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과 럭셔리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와 집중이다.
지방시는 정통 패션 배경이 전무한 매튜 윌리엄스를 대신해 CSM 출신으로 왕실 드레스부터 첨단 런웨이 의상 제작까지 두루 섭렵하며 탄탄한 기술적 배경을 지닌 맥퀸의 사라 버튼을 선택했다. 알라이아의 피터 뮬리에, 끌로에의 셰메나 카말리의 임명처럼 디자인 전문성과 경험에 대한 기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셀린느는 지극히 개인적 미학을 섞는 재창조를 통해 시장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지만 브랜드 유산과 멀어지며 늘 비판받는 디렉터 에디 슬리먼을 대체해 보다 전통적이고 학구적인 배경을 지닌 랄프로렌의 디자이너 마이클 라이더를 선임했다. 맥시멀리즘의 스타 디렉터 미켈레를 대신해 구찌에 합류한 데 사르노가 보여준 클래식 회귀와 차분한 절제의 미학이 2025년의 셀린느를 내다볼 약간의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티유 블레이지는 버지니 비아르의 후임이 돼 4월부터 샤넬에 합류한다. 그는 다니엘 리의 오른팔로서 변혁적인 ‘뉴 보테가’ 시대를 함께 열고 디렉터로 내부 승진한 실력자다. 절제된 가죽 패션 하우스를 세상 하입한 브랜드로 탈바꿈한 성공 경험과 가죽으로 만든 탱크톱과 데님, 인트레치아토 프린트와 캔버스가 상징적으로 증명하는 브랜드 코드의 감각적 재해석 능력, 화려한 과시보다는 세련된 디자인 본질에 집중하며 ‘조용한 럭셔리’를 재정의한 트렌드세터로서의 자질은 샤넬의 방대한 아틀리에, 세월이 스민 장인정신과 마법처럼 더해져 새 시대의 트위드와 진주를 탄생시킬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보테가의 디렉터로 임명된 루이스 트로터는 브랜드 역사의 첫 여성 디자이너로서 라코스테, 조셉, 카르뱅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세련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마르지엘라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낸 후 퇴사하는 존 갈리아노와 펜디에서 첫 여성복 디렉팅을 완수한 킴 존스의 후임 지목이 남았고, 로에베 12년 차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로 향한다는 특종이 매주 업데이트된다. 개인적으로는 여성복 출신으로 벨루티 하우스에서 현대 남성복의 태도와 아이디어를 수습한 하이더 아커만이 톰 포드에서 보여줄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대중문화적 연결 또한 중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 본다. 한 치 앞도 점칠 수 없는 예외와 반전이 도사린 고도의 전략 게임,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또 한 번의 신선한 디자인 관점이 시대정신을 포착해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불붙으면 이 세상을 한층 더 흥미롭게 만들 거란 점이다.
존 갈리아노는 마르지엘라 작별 인사를 통해 올해의 패션을 점치는 숱한 수군거림에 대한 최고의 현답을 이렇게 내놓았다.
“모두 알기를 원해요. 그리고 모두가 꿈꾸죠. 알맞은 때가 되면 모든 게 밝혀질 겁니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년 12월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