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를 바라는 삶은 피곤하다. 주는 만큼 받는다는 환상만큼이나 순진한 발상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주고 때로 받는 것을 인생으로 정의하고 세상살이 게임에 들어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꽤 괜찮은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주고받는 것을 하나로 이해하면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계산 아래에 놓여 숨이 막힌다. 그래서 한때 나는 의욕을 가지고 주는 일에 골몰했었다. 받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르고 어진 처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이 주는 것의 쥐똥만 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자서 세상을 배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갖고 나를 진지하게 돌아보니 나는 늘 받는 것의 쥐똥만큼을 남에게 주고 있었고,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받는 것만 기대하면서 산다.)
인상적인 묘비명과 함께 자신이 존재했음을 여실히 드러내며 생을 마감한 영국의 전설적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처세와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문인이나 예술가 패거리를 역병 취급하며 피했지. 그들에게서 간혹 초대를 받더라도 일부러 불같이 화를 내며 거절했어. 그쪽 세계와 거리를 두되, 나를 일류 미치광이로 여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호밀빵처럼 팍팍한 삶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겠으나,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으면서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는(심지어 자기의 멋까지 챙겨가는) 이런 cool한 생의 태도가 부럽기만 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어쩌자고 이러고 있는 걸까. 요즘은 통 교류가 없으니 줄 일도 받을 일도 없다. 잘 살고 있는 걸까? 잘 살 수 있는 걸까? 답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