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인 삶의 태도라고요? 반만 맞습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명사 특강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조언이 있다. 책 읽기, 연애 하기, 메모 하기, 여행 하기, 제2 외국어 익히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십 대 초중반의 나는 팔짱을 끼고 명사들의 뻔한 인생 조언을 들으며 한 분야를 주름잡는 사람들이 이토록 예상 가능한 말만 늘어놓아서 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그걸 누가 몰라서?’
하지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조언은 사실 그것이 지닌 진정한 힘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평범하게 포장한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대를 초월하며 반복되는 당연한 소리들은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검증이 이루어진 ‘진리’에 가까운 말씀이란 걸 나는 하나하나 나이를 까잡수며 차츰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편으로는 뭔가 색다른 자극을 주는 명사의 신선한(?) 인생 조언을 기다렸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나의 굳은 머리와 가슴을 아주 박살 내 줄 사람이 돌연 내 눈 앞에 나타나길 바랐던 것이다.
"인생이란 건 굉장히 위험한 곳이에요. 부처님은 인생을 고해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의 바다.
인생은 위기가 너무 많아요. 꿈은 깨지기 마련이고, 일은 실패하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성공해야 된다! 이 생각부터가 잘못된 겁니다.
모든 사람이 실패하는 겁니다. 실패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실패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는 겁니다.
(중략)
실패의 철학을 가지세요.
인생이라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원칙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됩니다. 집에 원칙이라는 것이 있으면 집이 안전합니다. 원칙 없이 임기응변으로 살아가면 힘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삶은 실패를 먼저 상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실패가 계속되면 삶의 깊이가 나오고 진짜 인간의 의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김진명 작가의 말씀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정신 승리의 쾌감은 끊을 수 없다던데, 뭐지 이 정신 승리의 통쾌한 감각은?
김진명 작가의 인생 실패 상정론(?)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주 실망하고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실패가 아닌 성공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성공을 상정하는 삶을 살든 실패를 상정하는 삶을 살든 그것은 오롯이 개인의 자유이지만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하나씩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을 ‘실패’로 상정하고 살아가는 처세의 기술은 단순히 소극적인 태도로서의 패배주의나 비관주의가 아닌 내 마음을 소중하게 아끼고 배려하는 스마트한 인생살이의 비법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음, 실패를 상정하고 임하는 인생이라는 게임, 어떤가요?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