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스웨 리Swae Lee의 해가 될 것이다.
Rae Sremmurd레이 스레머드의 Swae Lee스웨 리가 'No Flex Zone'을 외치며 신나게 뛰어다닐 때 그의 진가를 알아봤어야 했다. 그때가 2014년이었고 한국 나이로 스웨 리는 스물이었다. 나는 그의 흥미진진한 면상, 연체동물같은 몸매 그리고 변성기틱한(?) 목소리를 듣고 그가 한국 나이로 열다섯에서 열여섯 쯤 되었을 거라 생각했었고 그냥 한번 확 떴다가 사라질 친구 정도로 그를 평가해 감히 그를 믿고 걸렀다. 하지만 내가 사람을 잘못 평가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계기가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French Montana의 Unforgettable 라이브 무대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스웨 리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였다.
먼저 스웨 리가 우간다의 블랙 소울이 진하게 담긴 Unforgettable의 비트 위에서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흠잡을 곳 없는 보컬 실력으로 노래의 방점을 찍고 하늘을 찌를 듯한 에너지와 흑형 특유의 그루비한 바이브를 뽐내며 좌중의 시선을 끄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의 과장이 내게 허용된다면) 턱을 빼고 넋을 잃고 해당 영상을 여러 번 반복 재생하였다.
두 번째로 최근 스웨 리의 공식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실수로 공개된 그의 음경을 지켜보며 나는 그의 묵직하고도 튼실한 스타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8년을 휩쓴 Travis Scott의 타이틀 곡 'Sicko Mode' 히트의 숨은 공신을 나는 Drake의 피쳐링이 아닌 Notorious B.I.G.와 Swae Lee가 노래 중간에 던지는 "Gimme the loot!"와 “Someone said”라는 짧은 훅 라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 Ready To Die의 비기는 그렇다 치고(구태여 첨언하자면 트래비스 스캇의 Sicko Mode에서 중간에 들리는 비기의 목소리 "Gimme the loot!"는 사실 비기의 대박 앨범 Ready To Die의 수록곡 Gimme The Loot의 훅을 인용한 것이다.) 스웨 리의 사람을 묘하게 끌어당기는 라인 “Someone said”는 5분 12초짜리 곡에서 단 10초의 포션도 차지하지 않지만 이토록 매력적이다.
얼마 전 개봉해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주제곡 'Sunflower'에서 Swae Lee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폭발한다. 솔직히 말해서 노래를 다 듣고 났을 때, Post Malone의 허스키한 보이스는 죄송하지만 조금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다만 희망과 행복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아티스트만이 들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스웨 리의 감성만이 내 귓가를 오래도록 맴돌 뿐이었다.
미국의 프로듀서 Diplo가 프로듀싱하고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주제곡 Love Me Like You Do로 대박 친 영국 가수 엘리 굴딩이 부른 히트 싱글 'Close To Me'(이 노래는 지금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의류 브랜드 아베크롬비나 홀리스터 매장에서 울려 퍼질 법한 노래이다.)를 한층 더 돋우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역시 스웨 리였다.
2013년에 BET Awards 프로듀서상을 수상한 히트곡 공장장 Mike Will Made It은 이듬해인 2014년, 자신이 세운 프로덕션 컴퍼니 Ear Drummers Records에 Rae Sremmurd를 공식 영입했다(사실 Rae Sremmurd는 Ear Drummers를 역순으로 배치한 이름이다.)
Rae Sremmurd는 Swae Lee와 Slim Jxmmi라는 두 형제가 뭉쳐 탄생한 그룹이다. 자신들의 컴퓨터로 어설프게 노래를 녹음해 Dem Outta St8 Boyz라는 이름으로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유튜브 검색창에 Dem Outta St8 Boyz를 입력하면 약 10년 전 그들의 앳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홈리스로 잡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형제의 능력을 알아봐 준 건 Mike Will Made It 프로듀서 사단의 PNazty였다. PNazty의 사촌이 우연히 PNazty에게 들려준 레이 스레머드의 음악을 듣고 그는 형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네 일 관두고 애틀랜타로 넘어와라!"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인 형제를 직접 만난 Mike Will Made It은 그들의 열정에 감복했다.
"걔넬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완벽한 비전을 봤어. 걔넨 크리에이티브의 끝이었고 진짜 놀 줄 아는 놈들이었어."
레이 스레머드의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검색어를 집어넣고 구글링 하며 놀던 중 무척 공감이 가는 재미있는 인터뷰를 하나 보았다. 왠지 모르겠는데, 레이 스레머드의 음악을 들으면 다양한 색을 연상하게 하는 '컬러풀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 근데 정말이다. 그들의 최근 곡 Guatemala나 초창기 싱글 'No Type'을 들어보면 감이 확 온다. 여러분도 레이 스래머드와 함게 다채로운 힙합 음악의 디자인을 한번 느껴보시라.
레이 스레머드의 비비드하고 생동감 넘치는 음악적 색깔의 중심에는 스웨 리가 놓여있다. 물론 멤버 슬림 지미의 정공법에 가까운 섹시한 랩도 매력적이지만, 스웨 리의 자연스럽게 노래하듯 랩을 뱉어내는 플로우와 독보적인 음색은 듣는 이에게 또렷하고 분명한 인상을 남긴다. 이런 예시가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MIGOS에서 OFFSET과 TAKEOFF 모두 미고스라는 랩 브랜딩에 크게 기여하지만, 미고스 특유의 맛과 색깔을 책임지는 일에 있어서 QUAVO가 분명 압도적이란 주장을 두고 힙합 팬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고 그러한 맥락이 레이 스레머드에도 적용이 되지 않나 싶은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 일종의 저평가 우량주와 같은 아티스트를 스스로 발굴하여 즐기다가 시간이 흘러 해당 아티스트가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대박을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면 무척이나 행복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리고 한 아티스트가 그렇게 대중에게 잘 알려지고 대박을 칠 때쯤이 되면 늘 그 가수를 뜨기 전부터 좋아했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우쭐대는 팬들이 어김없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의 지나친 우쭐거림은 이해할 수 없으나 그 안타까운 심경만은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예시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혁오가 그랬고 빈지노가 그랬다.
반대로 남들이 어떤 아티스트를 두고 대단히 열광할 때 자기 혼자 그 매력을 모르고 지내다가 해당 아티스트가 인기의 최정점을 찍고 내려올 일만 남았을 때 혹은 단물이 다 빠진 껌처럼 내팽개쳐졌을 때 혹은 딱히 새롭게 주목받을 만한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해 잠잠해질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그 매력을 발견하고 뒷북을 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내게 스웨 리는 사실 후자에 가까운 아티스트라고 볼 수 있겠는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또 마음이 놓이는 것은 스웨 리가 정점을 찍기 딱 좋은 날씨와 계절은 이제 막 펼쳐질 2019년의 사계절일 거란 확신이 든다는 것이다. 조목조목 이유를 끄집어내어 설명하긴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 힙합을 오래도록 사랑한 팬의 어떤 경험칙을 적용해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감이다. 감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스웨 리는 2019년에 최정점을 찍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