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장롱 속 퀴퀴한 노스 700은 꺼내 입지 맙시다.
카니예 웨스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옷 입는 일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적어도 노스페이스 눕시를 입고 외출할 때는 대한민국 스트리트 패션 감성 잔챙이들의 주머니 사정 정도는 미리 헤아려 적어도 왼팔에 초록 테이프라도 휘감았어야 하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물론 내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건 장롱에 처박혀있는 퀴퀴한 냄새가 진하게 베인 10여 년 전 노스페이스 700을 다시 꺼내 입으며 회심의 미소를 내비칠 아재들이지만 말이다.
"어이, 칸예! 그건 반칙이잖아!"
어디 카니예 웨스트뿐이던가. 퍼렐 윌리엄스도 위험인물이다. 최근 그는 Dickies디키즈 치노 팬츠에 꽂힌 듯 보인다.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 2018년 11월과 12월의 게시물을 보면 무심한 듯 거칠게 컷 오프된 디키즈 쇼트 치노 팬츠나 디키즈 레귤러 피트 베이직 치노 앵클 팬츠를 일본 의류 브랜드 Humanmade 그리고 샤넬 벨트PharrelXChanel와 조합하여 연출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와서 그는 정녕 디키즈 면바지 열풍을 다시 불러일으키려는 것인가. 그대들이여, 어서 장롱을 열어 디키즈 면바지를 꺼내어라.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름 자국과 얼룩을 지워내고 퍼렐의 감성을 즉각 이식하라!
"어이, 퍼렐! 그건 반칙이잖아!"
셀러브리티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중하고도 특별한 필살기가 하나 있다. 바로 브랜드 심폐소생술이다. 그것의 원리는 매우 간단한데, 셀럽의 인기와 명성을 활용해 셀럽이 특정 브랜드의 옷을 한 번 걸쳐드림으로써 멎어가는 브랜드의 심장을 다시금 세차게 뛰게 하는 충격 요법인 것이다. 셀럽의 브랜드 심폐소생술은 무척 힘이 세다. 하지만 기업과 돈으로 엮여 그것을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미약하게나마 뛰던 브랜드의 심장 박동마저도 멈춰버릴 수가 있다.
누구나 주지하듯 요즘엔 럭셔리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도 혁명에 가까운 혁신으로 부단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로이 확립하려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이제 과거의 유산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일만큼이나 시대적 특수성에 발맞춰 대척점에 있던 것들을 끌어안아 다시 해석하여 새롭고 참신하게 자신들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새로운 운명적 숙제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물며 디자이너 브랜드도 이렇게 열일(?)을 할진대, 과거 성공 경험의 테두리 안을 빙빙 돌며 안주하는 브랜드나 시장의 목소리를 쌩 까고 고집을 부리며 고루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사장되기 쉬운 환경이 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보통 이렇게 태생적으로 게으르거나 또는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목숨을 연명하는 브랜드들이 자주 써먹는 기술이 바로 셀럽을 활용한 브랜드 심폐소생술이라는 건 생각해볼 문제이다.
하지만 브랜드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셀럽에게 옷을 입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유도하고, 인천공항 횡단보도 앞에 세워 사진 찍히도록 권하고, 광고 모델로 세워 정당히 돈을 지불하는 브랜드와 기업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의 효과에 물음표가 하나 달릴 뿐이다.
셀럽의 브랜드 선택 그 이면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모종의 비즈니스 관계를 확실하게 알아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셀럽이 자발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이유로 간택하여 믹스-매칭한(이라고 믿는다.) 브랜드가 새삼스럽게 붐-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늘 패션 브랜드의 유행과 인기라는 것이 기실 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리고 셀럽이 없는 패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인 것인지, 패션과 셀럽 각각은 서로에게 얼마만큼을 빚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첨언)
G-DRAGON이 군에서 제대하면 어떤 브랜드의 어떤 상품이 뜬금없이 인기를 끌 것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높은 가격에 매물로 내놓아질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G-DRAGON의 제대가 몹시 기다려지는 건 나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