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평연습 Oct 31. 2021

그녀가 글쓰기를 대하는 방식

#21. 스물한 번째 책)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확실한 건 <단순한 열정>이 어떤 의견도 아니고 정당화도 아니며 설득이나 미화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혼란 속에서도 이 글은 그냥 여기에, 우리 앞에 있습니다.

스물한 번째 책,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프랑스, 2001.






나는 내 열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싶을 뿐이다.
-27p中



한 유부남과의 불륜 경험을 글로 쓴 프랑스 작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그야말로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그 남자와 헤어진 뒤에 그 경험을 반추하며 글을 씁니다. 글 속에는 남자와 어떤 통화를 했는지, 데이트할 때는 무엇을 했는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와 같은 사랑의 기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당시 자신의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아주 사려 깊게, 이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대면했고 <단순한 열정>은 그 결과입니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9p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작가의 고백은 읽는 이에게 커다란 혼란으로 다가옵니다.

여기 쓰인 모든 내용이 이 작가가 겪은 실제 경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외설적인 혹은 비윤리적인 고백을 독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은지에 대해 누구도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글을 읽기도 전에 <단순한 열정>이 어떤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변명이거나 옹호의 텍스트일 가능성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랬고 아마도 이 글을 쓰면서, 혹은 쓰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작가 역시 그 점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고민한 흔적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않는, 철저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66p


그것을 쓴 작가마저 혼란에 빠뜨리는 글을 읽고 과연 무어라 쓸 수 있을지,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위에서 말했듯이, <단순한 열정>이 어떤 의견도 아니고 정당화도 아니며 설득이나 미화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 작가가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이 글이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기록일 뿐이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아마 자신도 모르는 어떤 깨달음이나 통찰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이 작가에게 있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겠습니다.

이 글쓰기가 자신을 끝내 어딘가로 데려갈 거라는 믿음이, 이 작가에게 있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어딘지는 몰라도 아마 글쓰기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 예로, 우리는 이 책 속의 거의 모든 문장들이 '나'를 주어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와의 관계가 그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30p
나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떠올려보았다.
-51p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살고 있다.
-58p


-와 같은 문장들에서 알 수 있듯, 이 글에서 작가의 가장 큰 탐구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 남자가 어떤 모습이었지를 묘사하기보다, 그 남자의 모습을 본 자신의 감정이 어땠는지를 묘사하는 데 더욱 공을 들이는 작가의 태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요. 왜 이런 글을 써야만 했을까요.

이것을 고민하는 것이 <단순한 열정>의 열려 있는 독해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 존재하는 답의 수 만큼이나 <단순한 열정>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한 것입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본인만이 알고 있을 테지만 저는 그녀에게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어떤 이유가 반드시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쓴다는 행위를 넘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의 일환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저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글로 적는 게 아니라 종종 글을 쓴다는 행위 속에서 생각과 감정이 새로이 발생하기도 하는 아이러니도 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마 이 작가는 글쓰기라는 행위 속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발생시킬지 궁금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쓰다 보면 제 안에서 알아서 흘러나올 것들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알아채지 못했던, 반드시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한 번 더 반복하자면, 글쓰기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단순한 열정>에 대해서 쓸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뿐인 것 같습니다.

제목과는 반대되게 이 글은 단순하게 쓰인 것 같아도 생각해볼 문제가 많아 복잡합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어찌하기 힘든 혼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 작가의 고백은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서, 그리고 옳고 그름 사이에서 쓰인 것 같습니다. 정확히 그 둘 사이에, 어느 쪽이라고 단정짓기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말입니다.

제가 느끼기엔, <단순한 열정>은 아름다운 작품도 추한 작품도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옳지도 않지만 잘못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러한 미적/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서 비롯되는 어떤 혼란을 겪었다면, 그것이 이 글을 제대로 읽어 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작가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우리는 모르고,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미적인가 도덕적인가 하는 판단 역시 무의미해 보입니다.

확실한 건, 이 글은 이미 쓰여졌고 이미 읽혔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이 글은 그냥 여기에,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작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는 이 글을 어느 순간, 그냥 썼던 것입니다. 쓰기 위해 썼고, 쓰고 나니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글쓰기가 무언가의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글쓰기, 이를 '실존적인 글쓰기'라 해도 좋을까요?

이 작가에게 글쓰기란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한 열정>이 하나의 근거입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면, 그녀가 말하는 '단순한 열정'이란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글쓰기의 열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10.25.21.

instagram : 우리 시대의 책읽기(@toonoisylonelinesss)

naver blog : blog.naver.com/kimhoeyeon

작가의 이전글 우린 모두 죄인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소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