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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Oct 31. 2021

우린 모두 죄인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소설

#20. 스무 번째 책) 임 성순, <컨설턴트>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그 재미 뒤에 씁쓸한 맛을 남기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 달콤쌉싸름한 맛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스무 번째 책, <컨설턴트>, 임 성순, 한국, 2010.






원한다면 날 킬러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난 이 일을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23p中



회사에서 '죽을 사람'을 지정해 주면, 자살처럼 보이는 완벽한 살인 시나리오를 써 주는 주인공.

그가 시나리오를 써 주면 회사에서는 그 대본에 따라 살인을 하고, 이 죽음은 완벽하게 자살로 위장됩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합니다.



소설 <컨설턴트>는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살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평범한 우리가 저지르는 평범한 살인, 살인이 얼마나 평범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하는 소설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죄인임을 일깨우는 소설입니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저지르는 모든 살인을 반추하게끔 하고 그렇게 우리의 숨겨진 죄를 끄집어내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독자들이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라고 고민할 때,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체념하는 소설입니다. 잘못은 우리가 아니라 시스템에 있는 게 아니냐며,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조용히 고개를 젓는 소설입니다.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남기는, 그런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참신한 점은, '원죄'라는 개념에 대한 이 작가의 독특한 시각입니다.

단순히 기독교적인 원죄 개념에서 벗어나, 이 작가는 모든 평범한 우리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에 지게 되는 죄의 무게를 아주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펀드에 가입하거나 저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인의 공모자가 될 수 있었다. 어제 먹은 커피믹스가 누군가를 찌를 칼로 변할지도 몰랐다.
-266p


작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중 가장 주요한 군수물자 공급처는 콩고였고, 2차 대전 중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우라늄도 모두 콩고에서 생산된 것이었으며, 수많은 콩고의 노동자들이 그저 명령을 이행하여 캐냈을 뿐인 우라늄이 단 한 번의 번쩍임으로 히로시마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던 것과 같이, 자의적이었든 타의적이었든, 혹은 의도적이었든 까맣게 모르고 있었든, 우리 모두가 미소하게나마 누군가의 죽음에 반드시 책임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말인즉, 우리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무한히 연결되어 있기에, 그것이 종내에는 누군가의 죽음과 반드시 결부된다는 주장입니다.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우라늄을 캐냈을 뿐인 콩고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이 어마어마한 살인에 기여하고 있음을 꿈에도 몰랐던 것과 같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우리의 일이 누군가의 죽음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가의 말대로 '펀드에 가입하거나', '커피믹스를 타 먹는' 일조차 하나의 암살행위가 될 수 있다는, 과격하고 비약적이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허무맹랑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주장입니다.


작가는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우리에게 '원죄'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존재만으로 생기는 죄',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반드시 어떤 죽음으로 귀결되기에, 우리는 가만히 숨만 쉬며 살아가지 않는 한, 존재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수없이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살인은 계속됐지만 이제 누구도 암살단의 죄를 물을 수 없다. 모두 공모자며 모두 종범이었고 모두 교사범이었다. (…)
너는 몇 명을 죽였지? 한때는 내가 죽인 사람의 수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존재만으로 생기는 죄. 나는 드디어 원죄의 의미를 깨달았다.
-267p


아마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작가가 '답'을 내려 주길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죄가 되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 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답을 내려 주지 않는다기보다는, 이 문제제기를 한 작가 자신조차 답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혹은 이 문제에 정답이란 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차라리 회의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어쩔 수 없다.' (…284p)



체념. 결국엔 어쩔 수가 없다,라는 무기력한 체념으로 이 작품은 끝납니다.

<컨설턴트>를 읽으면서 뭔가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체념으로의 마무리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체념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이다.
-285p


이 문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의 일종을 보입니다. 우리는 그저 체념할 수밖에 없으며, 수많은 죽음을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공모하고 있음에도 어쩔 방도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이것은 아마도 우리의 잘못이 아닐 거라는, '어쩔 수 없다' 라는 위안 삼는 말을 통해 그 원죄의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의 유일한 악역은 주인공도,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아닌, 이 세계의 구조, '회사'라는 메타포로 표현되고 있는 그 혹독한 시스템일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의 부조리 속에서 개인이 저지르는 모든 원죄들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희망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

'그렇다면 시스템을 개선하면 되는 것 아닌가?'

작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그 희망의 가능성마저 일축하며 완전한 체념의 정서에 도달합니다.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뿐이다.
-23p


이렇게 <컨설턴트>는 재밌게 읽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하나의 고발이 됩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두렵다.(285p)"고 말하는 이 소설.

정말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가장 평범한 우리들부터 달라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1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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