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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Oct 31. 2021

존재를 향한 비존재의 외침

#5. 다섯 번째 책)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글을 쓰는 사람은 소외하는 쪽이 아니라 소외받는 쪽에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희곡 <콘트라베이스>는 바로 우리의 나약한 편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누구든 소외되어 본 적 있다면, 이 작품이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다섯 번째 책,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독일, 1984.






저는 사실 종종 외롭습니다. ……
-50p中



한 남자가 말합니다. 그는 작은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입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작은 소극장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소박한 무대 위에는 그보다 더 소박한 옷차림의 한 남자가 있고, 그는 곧 몇 안 되는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합니다. 이 책 속의 문장들은 읽히기 전에 벌써 '들립니다'. 정말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한 남자가 무대에서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습니다.

비단 작품 형식이 희곡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는 진한 연극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독자들은 쉽게 관객이 됩니다. 등장인물은 단 한 명. 흔히 '모노드라마'라고 하는, 이 1인극의 대본을 읽고 있자면, 텍스트가 아니라 몸짓을, 글이 아니라 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놀라운 독서 경험입니다.






우선 차근차근, 이 남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9p中


화자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답게, 콘트라베이스가 얼마나 중요한 악기인지, 더불어 한 오케스트라 안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를 역설합니다.


그는 콘트라베이스와 그 연주자인 자신의 중요성을 너무도 강조하는 탓에, 자신의 말이 과하게 반복적이고 지나치게 과장되어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빠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9p中
"저는 다만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의 중추적인 악기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쉽게 설명해보려고 시도했을 뿐입니다."
-11p中
"1750년부터 20세기까지 2백여년 간에 걸친 기간에 일어났던 오케스트라 각 장르의 발전은 순전히 현이 네 개 있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저는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21p中


만연하게 이어지는 그의 독백을 듣다 보면, 남자의 어조에서 어쩐지 변명하는 듯한 느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콘트라베이스와 자기 자신을 애써 변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정리되지 않은 채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막 내뱉으며 횡설수설합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계속해서 콘트라베이스를 (억지로) 추켜세우는 모습은, 진짜 맹수 앞에서 겁먹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연약한 고양이가 괜히 발톱을 드러내고 이빨을 가는 안쓰러운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그렇게 화자의 말은 점차 권위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남자의 말에서 자긍심이 아닌 열등감의 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공무원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화풀이로 덩치가 최고로 크고, 손쉽게 쥐어지지 않으며, 독주가 안 되는 악기를 연주하기로 하였습니다.
-43~44p中


화자는 술에 취한 것처럼(실제로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만),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말합니다. 종잡을 수 없이 어수선 대는 독백은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나옵니다. 말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감정은 더 많은 말이 튀어나오게 합니다. 말의 홍수에 빠져 그는 길을 잃어버리고, 급기야는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자신의 가면마저 벗겨버리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애당초부터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한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다들 과정을 겪게 됩니다. 우연과 실망을 통해서지요."
-43p中
"콘트라베이스는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입니다. 악기의 돌연변이지요."
-53p中
"종종 저는 이것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톱으로 토막을 내고 싶기도 하고, 잘게 부숴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 제가 이 악기를 사랑한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53p中


누구든 이 말들이야말로 화자의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입니다. 콘트라베이스를 증오하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증오하고, 보잘것없는 존재, 쓸모없는 존재,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증오하고…….

나약한 모습을 감추려 해봤지만 가면 속 모습은 이내 무력하게 드러나 버립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 빌어먹을 악기 때문이었습니다!
-41p中


오케스트라의 중추적인 악기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자라는 그 '중요한 역할', '중요한 위치' 의 가면 아래, 콘트라베이스를 증오하는 '연애 한 번 못해본' 소시민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화자의 본모습이었습니다.






콘트라베이스는 크고 무거운 데다가 못생기기까지 했으며, 하나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데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못합니다. 화자는 콘트라베이스가 '음악 역사상 일종의 잡종' 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연주하는 데 힘도 많이 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듣기 거북한 소음으로 들립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볼품이 없는 악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
한 번 자세히 봐 주십시오. 꼭 살이 피둥피둥하게 찐 부인네같지 않습니까? 엉덩이는 축 쳐졌고, 허리 부분은 잘록하지도 못한 것이 위쪽으로 지나치게 길게 뽑아 올라져서 도대체가 못마땅합니다. 게다가 가늘고 축 늘어져 곱사등이 같은 어깨 부분 좀 보십시오. 정말 못 말립니다.
-52~53p中



결국 이 작품에서, "왜 하필이면 '콘트라베이스' 이어야만 했는가?" 가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 작품은 <콘트라베이스>일까요? 왜 <바이올린>이면 안 될까요? <팀파니>일 수는 없을까요? <클라리넷>도 아닌, <오보에>도 <플룻>도 <첼로>도 아닌, <콘트라베이스>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쥐스킨트는 많고 많은 선택지 중에서 왜 하필이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내세웠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습니다.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나약하기 때문에. 가장 소외받기 때문이지요.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 소리를 받쳐줄 뿐, 단 한 순간도 주인공이지 못합니다. 비중도 적고, 다른 악기 소리에 휩싸여 버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아 콘트라베이스구나!" 하고 알아차려 주지 않습니다. 독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어떤 곡도 연주해낼 수 없는 볼품없는 악기입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악기입니다. 항상 맨 뒷자리에 앉는 악기입니다. 없어져도 모를 존재,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선택하지는 않는 악기, "아, 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될 거야!" 가 아니라 "어쩔 수 없네, 콘트라베이스나 연주할 수밖에." 로 시작되는 악기. 다루기도 까다롭고 유별나며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악기… 오케스트라라는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가장 소외받는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인간 사회의 모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계에서나 그 세계에서나 쓰레기와 관련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기 마련이지요. (…)
여러분 절대로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
-63~65p中


이제 독자들은 '소외받는 존재' 로서의 화자를 발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화자에게는 돈도 없고 애인도 없습니다. 성취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사회에는 화합 대신 계급이, 관심 대신 소외만이 있습니다. 밑바닥에 자리한 사람들은, 화자의 말에 따르면, '멸시와 조롱을 받기 마련'일 뿐입니다.


맨 뒷자리에서, 들리지도 않는 낮은 음만 내는 콘트라베이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케스트라라는 하나의 계급제도 안에서, 콘트라베이스가 가장 낮은 을 내는 악기라는 사실과, 좌석 배치에서 항상  뒷자리에 앉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인간 사회의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기막힌 비유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이 작품이 반드시 <콘트라베이스>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쥐스킨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태도' 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훌륭한 이유는 그저 비판의식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모두들 잔뜩 긴장을 하고 숨소리를 죽였을 때, 음악당의 끝없는 고요와 침묵 속에서, 2천명이 넘는 관객들이 숨죽이고 있는 그 순간에, 그것도 수상과 각료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저명한 인사들이 자리한 와중에……, 큰 소리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외치겠다고 말입니다.


<소리를 크게 지른다.>

…… 세 - 라 !!!

엄청난 반응이 일어나겠죠! 내일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릴 겁니다.
-88p中


낮은 음만 내던 콘트라베이스가 큰 소리를 내는 순간입니다.


모두에게 들리도록, 모두가 알아차리도록, 모두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지요.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비존재가 여기, 이 순간, 떳떳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절실한 외침입니다. 존재를 향한 외침, 존재로의 저항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작가가 이 작품 <콘트라베이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 책은 -다른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한 소시민이 그의 작은 활동공간 내에서의
존재를 위한 투쟁을 다루었다.

ㅡ 파트리크 쥐스킨트



누구든 소외되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 소심하고 나약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부터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나약한 부분들을 조금씩 모아서 만든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소심하고, 외롭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투쟁합니다. ("세 - 라 !!!")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태도', 혹은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쥐스킨트는 우리의 나약한 부분들이 무력하게 주저앉는 대신, 큰 소리로 외치며 거세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외마디 외침으로 말미암아 비존재는 존재감을 얻습니다. 그것은 '힘을 갖게 되는' 최초의 순간, 미소한 존재가 '위력을 발휘하는' 엄중한 순간이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남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경찰서에 가거나 벌금을 물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투쟁의 시도 그 자체만으로 남자에게는 하나의 발전이라 할 만한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의 모습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 거는, 심지어는 자신의 존재조차 알리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은 기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혼신의 외침이 그것을 깨뜨릴 것입니다.






작품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제 가 보겠습니다. 음악당으로 가서, 소리를 지르겠습니다. 그럴 용기만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내일 신문에서 그것에 관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03p中



"세 - 라 !!!"


그가 정말로 이 말을 외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누구라도 그가 정말 그 외침에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큰 소리로 그 말을 꼭 외쳐 주기를 응원해 마지않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외된 존재의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쥐스킨트가 <콘트라베이스>에서 해낸 일은, 고작 100페이지짜리 가량의 짧은 글만으로, 독자들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편에 서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문학의 역할이란 바로 이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08.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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