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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Oct 31. 2021

한 편의 소설이 도달한 발작의 경지

#4. 네 번째 책)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몰상식이 한 사람의 총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정신은 무한하기 때문에.

<콧수염>은 오로지 문학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는 하나의 성취라고 생각됩니다.

네 번째 책,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프랑스, 1986.






"당신 내가 콧수염 깎으면 어떨 것 같아?"
"거 괜찮은 생각인데!"



이 어마어마한 비극이 이토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진정 가슴을 죄여오는 부분입니다.

수년간 한 번도 면도한 적 없는 콧수염을 완전히 밀고 나타나 아내와 친구들을 깜짝 놀래켜주겠다는 귀여운 발상에서 시작한 장난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가혹할 정도의 끔찍한 비극으로 귀결됩니다.

농담이 심각해지고, 장난이 음모가 되고, 가정은 현실이 되어 허를 찌르고, 끝내 몰락과 파괴, 상처와 피범벅의 결말로 치닫습니다.

정말로 섬뜩한 작품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고작 콧수염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콧수염을 밀고 나타난 주인공, 그러나 주변 인물들은 아무런 변화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마치 원래부터 콧수염 같은 건 없었다는 듯이. "콧수염이라니, 무슨 소리 하는거야." 처음엔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지만 이내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하게 될 첫 번째 행동은 분명 '의심하기' 가 될 것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의심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이지만, 사실 의심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의심은 다른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은 또다른 의심을 낳고… 종내에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에 이르며 의심의 바다 한복판에서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의심의 무한한 번식과 그 의심들이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이르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의 출발은 하나의 작은 의심이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한테 정말로 콧수염이 없었던 걸까?" 라고 의심하는 순간, 이미 그때의 '나'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저녁, 뭔가가 궤도를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그가 명백한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 구체적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막연히 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속임수 말이다.
-39p中


작가는 '명백한 사실을 의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라는 궁금증에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 어느 서평에 의하면, '허구가 현실을 능가하고, 이성이 상상 앞에서 흔들리고, 부조리 앞에서 논리가 굴복되며, 익살이 비극에 잠식당하는 정확한 지점, 그 경계 지점'을 날카롭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문제삼지 않는 것은 어떨까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웃어넘기는 방법도 있어 보입니다. 그냥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문장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더 이상,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그가 항복하고 "그래 좋아, 그래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난 한 번도 콧수염을 길러 본 적이 없어……." 하고 말한다면?
아니다. 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얘기해서는 안 되었다.
-67p中


주인공은 십수년간 콧수염을 기르며 살아 왔고, 그 자신조차도 이제는 콧수염이 없는 스스로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콧수염이란 자신의 일부이자, 자기 자신 역시 콧수염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콧수염은 세계입니다. 주인공의 세계, 그에게 콧수염이 속해 있는 게 아니라 차라리 콧수염에 그가 속해 있는 세계. 콧수염은 그의 세계입니다. 세계이고, 자아이고,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일 부인 아네스가 "당신은 한 번도 콧수염을 기른 적이 없잖아!" 하고 말한다면, 그녀는 단지 '콧수염' 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는 자아를, 그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 다시 말해 그가 살아온 세계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주인공은 콧수염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세계인 콧수염을 변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맞아, 난 한 번도 콧수염을 길렀던 적이 없어……." 라고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몰상식으로부터 콧수염을 지켜 내야만, 나 자신과 내가 살아온 세계를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싸워야 합니다. 그 밖에는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이제 소설은 하나의 싸움과도 같은 형태로 번지기 시작합니다.






콧수염이라는 그의 세계는 너무나도 쉽게 부정당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게다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그의 콧수염은 파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몰상식이자 부조리, 이 세계 속 하나의 결함입니다. 그 대신 아주 작은 결함. 티끌과도 같은 아주 사소한 결함이고 아주 미소한 흠집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결함에도 이 세계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것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아니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함꼐 보낸 과거와 연관된 어떤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다시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예감했다. 자신의 친구들과 직업, 하루 일과…… 그는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126p中


이 책에서 고작 콧수염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일은, 어쩌면 각자의 세계가 우리 생각만큼 그렇게 견고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주인공의 경우에는 그것이 콧수염이었다만, 사람들마다 다른 어떤 무언가를 통해 지탱되는 우리 각자의 세계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각자의 세계가 튼튼하고 공고한 발판 위에 안전하게 세워져 있다고 믿습니다.


이 소설, <콧수염>이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견고하고 안전하리라는 맹목적이고 순수한 믿음. 그 믿음에 대해 작가는 마치 이렇게 우리를 꾸짖는 것만 같습니다 :

'세계는 그렇게 견고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연약하고 위태로워서, 그 위에 선 인간은 늘 불안에 떨며 끊임없이 의심하는 수밖에 없다…….'

아주 사소한 몰상식이 우리 세계의 연약한 부분을 공략해 야금야금 뜯어 먹다가 이내 완전히 무너져 내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세계는 건실해 보이고 튼튼해 보이지만 실은 아주 유약한 지지대로 아슬아슬하게 지탱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콧수염 같은 것들이지요. 그래서 아주 작은 의심이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콧수염이 없었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 인간 정신이 무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생각하는 인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인간은, 생각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세계의 결함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합니다. 세계에 빈틈이 생기거나,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거나, 어느 한 부분이 결락되면, 인간 정신의 무한함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방으로 움직입니다. 모양을 바꾸고, 찢어지거나 합쳐지고, 뜨거워졌다가 차갑게 식고, 갑자기 사라지고, 견딜 수 없게 되고…….

정신이 날뛰기 시작하면 개인은 감당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한 사람의 총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콧수염이라는 아주 사소한 결함이 마치 산사태를 일으키듯, 한 개인을 집어삼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우리 각자의 세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 그 환상에 가까운 믿음을 깨 버리는 데 서슴지 않습니다. 아마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죽이려고 하는데 그는 도무지 갈 곳이 없었다. (…) 빨리 도망쳐야 했다.
-149p中


이 소설은 비극입니다. 세계의 불안정함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 불안정한 세상 위의 인간은 늘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깊숙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 아내도, 친구들도, 이 모든 게 단지 주인공이 정신 착란을 일으켜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반대로, 아내와 친구들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 중 어느 누구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미친 게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인물들 중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이냐를 따지기보다, 그들의 세계, 그들이 속한 세계 중 어느 곳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더 옳은 질문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세계에 결함이 생겼는지, 다른 인물들의 세계에 결함이 생겼는지.


아마 답은 명확합니다. 주인공의 세계, 콧수염으로 지탱되던 세계는 바로 그 콧수염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 아네스, 제롬,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쥐도새도 모르는 사이 세상의 질서가 교란된 것이다. 그 말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끔찍하게 교란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이 범죄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177~178p中


그래서 주인공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가 교란된 일종의 범죄를 목도한 '유일한 목격자'로서.

위태로운 세계 위에 어느 하나 의지할 것 없이 홀로 서서 외로운 균형잡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불안해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런 인간, 연약한 세계 위, '불안해하는 인간' 에 대한 탐구입니다.






카레르가 선사하는 결말은 잔혹과 충격의 결말, 공포의 결말, 그야말로 '끝까지 가 버린', 이른바 발작의 결말입니다.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말 그대로 '끝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극에 다다르는 순간, 카레르가 독자들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 넣고, 극단에 도달하게 만드는 순간, 이 작품이 발작의 경지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긴장해 있던 정신은 이제 모든 게 끝나고 제자리를 찾아다는 확신이 들자, 비로소 평정을 되찾았다.
-221p中


주인공의 싸움은 이렇게 끝납니다. 결코 이길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지만 무력하게 패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압도적 모순과 부조리……. 여기에 대항하여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자 궁극의 저항이란, 어쩌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뿐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소설 <콧수염>을 읽고 나면,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까마득한 어딘가를 갔다 온 기분이 듭니다. 무섭도록 생생한 여행입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이 작품에서 보여 준 카레르의 텍스트는 연극적입니다. 극적 과잉과 과장의 어법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극적인 발작성.

이 놀라운 소설이 한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열정적인 한 명의 독자로서는 정말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0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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